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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24. 2024

2024 신체발부수지부모

무조건 갖다 붙이기

2024. 5. 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도 이발할 건데 우리 아들도 같이 이발하는 게 어때?"

"난 괜찮아."

"머리가 많이 길었어."

"얼마 안 길었어."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고 주장하는 자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맞서는 자,

2,3 주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앞모습이랑 옆모습만 봐서는 얼마 안긴 것 같이 느낄지 모르겠지만 뒷머리가 많이 길었어."

"괜찮다니까."

"네가 뒷모습을 안 봐서 그렇지. 자를 때가 됐는데."

"내가 왜 뒷모습을 안 봐? 거울 두 개를 이용해서 보면 돼. 하나는 앞에 들고 있고 하나는 뒷모습을 비추면 뒷모습까지 다 볼 수 있다고요."

아니, 그 일급비밀을 어떻게 알게 된 거지?

그것만은 모르길 바랐는데...

하긴 초등학교 4학년이면 예사로 그런 말을 할 나이이긴 하지.

하지만 아무리 아들이 아직 때가 아니 되었다고 우겨도(내 눈에는 우기는 걸로밖에 안보였다) 정말 머리카락이 많이 길어서 들쭉날쭉 지저분해 보였다.

또 나일론 이발사의 이발 본능이 꿈틀 했다.

어떻게 하면 이발을 하게 할 수 있을까?

아들은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지만 사실 내가 괜찮지 않았다.

평소 나는 엄청 깔끔한 성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머리카락이 길면 볼성사납지 않을 정도로 유지하도록 그 양반과 아들을 3주 안짝으로 내가 직접 이발을 해주고 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들의 머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물론 내 눈에만 그렇다는 걸 잘 알지만, 당사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점점 어수선해지는 아들 머리를 보고 있자니 당장 가위부터 집어 들고 싶었다.


"어머니,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말도 못 들어봤습니까?"

어라?

문자까지 쓰시네?

"우리 아들이 그런 말을 다 알아?"

"그럼, 내가 다 알지."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들으셨을까?"

"내가 책에서 다 봤지."

가만 보면 아들을 키우는 데 8할은 책이 다 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단하네. 그럼 그게 무슨 말인지도 '혹시' 알아?"

"당연하지. 신체는 부모님이 주신 거니까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된다!"

"아니 우리 아들! 최익현이 부활하신 거야 뭐야?"

"최익현이 누군데?"

이런, 아직 거기까지는 진도가 안 나갔군.

"옛날 옛날에 단발령이 내려지니까 '내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카락은 자를 수 없다.'이렇게 말했던 사람이야. 단발령은 한마디로 머리카락을 자르라고 나라에서 명령한 거고. 옛날에는 남자들도 머리카락을 길어서 상투 틀고 그랬잖아, 안 자르고."

"그래? 아무튼 난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이 머리카락을 자를 수 없어."

어쭈?

계속 이렇게 나오시겠나 이거지?

이러다가 현관 앞에 척화비라도 세울 어린이잖아?

"우리 아들, 머리카락이 자라서 지저분해지니까 그래서 자르라는 거지. 무조건 자르라는 게 아니잖아."

"신체발부수지부모!"

얘가 갑자기 느닷없이 무슨 소린고? 여태 이발 잘해 놓고서?

"하지만 우리 아들이 간과한 게 하나 있는 것 같다. 그 머리카락이 있게 한 사람이 엄마잖아. 그러니까 엄마 허락 하에 살짝 잘라도 괜찮지 않아? 어떻게 생각해?'신체발부수지부모'니까 그 부모가 알아서 할게."

아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설마 이러다가 상투까지 틀겠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날은 점점 더워지는데 시원하게 이발했으면 좋겠는데 도대체 왜 자꾸 머리를 기르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스타일도 앞머리가 이마를 다 덮는 수준이라 (나 보기에만) 너무 답답해 보였다. 그렇지만 아들은 그 스타일이 좋다고 한다. 본인이 좋다는 데에야.

이번 주말이 고비다.

원만히 합의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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