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건 대낮이 아닌 한밤중에(나는 해가 지고 캄캄해지면 무조건 한밤중이다, 게다가 10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합법적으로 한밤중이다) 갑자기, 그것도 급히 뛰쳐나가는 그 양반의 뒷모습은 못 봤지만 아이들의 말소리는 똑똑히 들었다.
아닌 밤 중에 외출이라니.
왜 하필 지금 이 시간인게지?
왜 다른 시간이 아니라 반드시 이 시각이어야만 하는 게지?
내가 이미 기절한 줄 알고 그러시는 건가?
하지만 나는 두 눈 부릅뜨고 절대 졸지도 않고 말짱한 정신으로 깨어있었다, 그 시각에도, 용케도.
과연 그 양반은 오래지 않아 다시 집으로 컴백하셨다.
그 옛날 '서태지와 아이들'은 '유 머스트 컴 백 홈.(You must come back home.)'이라며 줄기차게 노래 불렀지만, 나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 같은' 그 양반에게 '오, 유 슈든 해브(Oh, you shouldn't have.)'라든가 '유 돈 니드 투 두.(You don't need to do.)'라고 더 노래 불러 주고만 싶었다. 하루 종일이라도 말이다. 항상 내가 노동요처럼 부르던 그 노래처럼.
"나 갔다 올게."
라고 외출을 할 때마다 내게 말하고 나서는 그 양반에게
"가기만 하고 오지는 마."
라든가
"꼭 안 와도 되는데."
라고 말하면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라며 그 양반이 내게 핀잔을 주던 그때처럼 말이다.
"아빠, 이 밤중에 어디 갔다 왔어?"
딸이 제법 집요하게 물었다.
"차에."
"갑자기 차에 왜가?"
"응, 내일 누가 아빠 차에 탈 거거든."
"누구?"
"응. 아빠 회사 사람."
그러니까 그게 그 말이었다.
"나 월요일에 7시에 깨워줘. 출장 가야 돼."
"그렇게 빨리 가?"
"모시고 갈 사람 있어."
"팀장?"
하긴 한낱 일반직원이 모시고 가야 할 사람이라면 윗사람밖에 더 있겠나.
윗사람은 윗사람인데 여자 윗사람이다.
"근데 아빠 회사 사람 태워주는데 차에는 왜 간 거야?:"
딸이 끈질기게 물었다.
그래, 잘한다, 내 딸아.
"그래도 윗사람 모시고 가는데 차가 너무 지저분하면 안 되잖아."
그녀를 위해, 팀장인 그녀를 옆자리에 태우기 위해 그 양반은 한밤중에 그렇게 부산을 떨었나 보다.
미루다 미루다 일요일 늦게 일을 하더니 불현듯 다음날 스케줄이 떠올랐는지 자리를 박차고 집을 뛰쳐나갔나 보다.
"진짜 혼자 다니는 게 좋은데. 옆에 누가 타면 신경 쓰이고 불편한데. 꼭 나보고 모시고 가라고 한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 양반은 최선을 다하기까지는 안 했겠지만 그래도 청소하는 시늉은 했을 것이다.
일요일 밤늦은 시간에도 직장인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그녀, 그 양반의 속마음도 모르고 옆자리에 모셔질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