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Jul 20. 2024

요즘 학교에서는 간헐적 과자 파티

그리고 라떼는

2024. 7. 6.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 맞다. 선생님이 내일 우리 과자파티 한다고 했는데 과자를 안 샀네. 지금 과자를 사러 나갈 수도 없고 어쩌지?"


며칠 전 딸이 화들짝 놀라며 아쉬워했다.

선생님이 반드시 챙겨 오라는 학습 준비물을 깜빡했을 때도, 다음날까지 제출해야 하는 숙제를 안 했을 때도 그처럼 어두운 표정은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교과서는 안 챙겨 가도 '과자파티'에 빠져서는 안 될 주인공을 미처 챙기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동시에 자신이 원하는 과자를 챙겨 갈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절망을 동시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딸에게만) 참담한 상황이었다.

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살 것이 아니라 과자를 샀어야 했다.


"또 과자 파티해?"

나는 별 뜻 없이 물었디.

"엄마! '또'라니?!"

딸은 발끈했다.

"아니, 과자 파티 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또 한다고 해서 그렇지."

"엄마, 보통 방학 하기 전에 과자 파티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반년만이지."

"그래. 그런 것 같다. 근데 너희는 과자 파티 자주 하는 것 같더라? 걸핏하면 하는 것 같던데?"

"어린이가 그런 거라도 있어야 학교 다닐 맛 나지. 영화 볼 때도 과자 파티 하긴 해. 또 다른 일 있을 때 할 때도 있고."

"아무튼, 그러니까 자주 하는 편이잖아. 너흰 참 좋은 세상 산다. 학교에서 과자 파티를 다 하고. 엄마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것도 없었는데 말이야."

"에휴, 엄마. 또 시작이네."

"또라니? 그냥 그렇다 이 말이지. 좋겠다 너희는. 학교에서 과자 파티를 다 하고."

"당연히 좋지. 날마다 했으면 좋겠다."

뭔가 망상에 빠져 있는 듯한 딸에게

"어마? 얘 좀 봐. 그게 무슨 말이야? 학생이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 거지? 과자 파티하러 학교 가는 건 아니잖아? 너 욕심이 너무 지나친 거 아니야? 너희가 아무리 빌고 빌어도 선생님은 절대 날마다 과자파티 같은 건 열어주지 않으실걸? 그러니까 일찌감치 꿈 깨. 올해도 벌써 몇 번은 한 것 같은데. 사람이 만족을 알아야지. 뭐든 지나친 것은 좋지 않아!"

라고 초치는 소리 같은 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딸은 벌써부터 흥분해 있었다.

누가 보면 평소에 과자 구경은 전혀 못하고 사는 어린이인 줄 알겠다.

나도 저만할 때 과자를 좋아했었나?

과자가 전부였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도 과자를 먹고 있는 걸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굳이 떠올려 보지 않아도 알겠다.

과자를 좋아하지 않는 어린이는 아마 없겠지.

가끔, 과자는 어린이의 전부, 어린이의 로망, 어린이의 존재 이유(너무 멀리 갔나?)이기도 하니까.

그때 만화책만 신나게 들여다보던 우리 집 가장 최연소자가 또 불쑥 한마디 하셨다.

"아! 맞다, 나도 금요일에 과자파티 한다고 했는데."

그제야 그 중대하고도 놓칠 수 없는 스케줄이 생각났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거실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난 무슨 과자로 가져갈까? 나는 아직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생각해 봐야지."

누나는 그만 깜빡하는 바람에 최애의 과자를 과자를 챙겨가지 못할 운명에 놓였지만(그때가 이미 밤 9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해가 떨어지면 어린이는 집에 있어야 한다고 나는 항상 주장한다) 아들은 마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와 비슷하게

"소자에게는 아직 과자를 준비할 이틀의 기간이 있습니다."

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고 나만 또 느꼈다)

과자 파티에 가져갈 과자를 고르는 일은 남매에게 세상에서 어느 일 못지않게 신중하고도 중대한 사안인 것이다.

그나마 집에 몇 개 있지도 않은 과자 중에 딸은 맛 같은 건 크게 따지지 않고 무조건 '양이 가장 많은 것'으로 골랐다.


그러나 목요일에 하교하고 집에 돌아온 딸은 다소 시무룩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엄마, 오늘 과자 파티 못했어."

"왜? 또 친구들이 말 안 들었어?"

"응. 그래서 영화도 안 보고 대신 영어 수업했어."

"그랬구나, 우리 딸 많이 아쉬웠겠다. 대신 그걸 집에서 먹으면 되지."

"그럴까?"

"그래.(=그래야 엄마도 과자 부스러기 맛이라도 볼 수 있지)"

"그럼 엄마랑 같이 먹을까?"

"좋지.(=오랫동안 나는 기다려왔어, 네가 그 말을 엄마에게 해 주기롤)"


파티라고 해봐야 거창할 것은 없다.

그냥 먹고 싶은 과자를 사서 먹는 단순하고도 일상적인 일이다. 그래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 자체로 '파티'가 다 되는 것이다.

그나저나 참, 요즘 애들은 좋은 세상 산다.

나는 그 옛날에 과자 한 봉지라도 들고 학교에 갔던 적이 있었던가?

느닷없이 하굣길에 사 먹던 인디언이 정말 먹는지 어쩐지도 모르는 밥과 사또가 그런 과자를 먹을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도 도통 이해되지 않는 그 밥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내게 그 시절 '과자는 밥'이었다.

어쨌거든 그 밥맛들은 꽤나 맛이 좋았다.



작가의 이전글 7월엔 월급도 받고 정근수당도 받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