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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벌써부터 웃음만 나와
그 생각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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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임자
Aug 7. 2024
2024. 8. 6.
< 사진 임자= 글임자 >
"나 8월에 워크숍 가."
"그래?"
"아무튼 알고나 있으라고.
"알았어."
"1박 2일이야."
"그래?"
그 양반이 중대발표를 하고 나자 나는 기쁜 마음에 절로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결혼한 지 10년도 더 넘은 부부에게 있어 (어쩌면 나한테만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래어는 '워크숍'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결혼한 지 10년도 더 넘은 부부에게 있어 (어쩌면 나한테만 해당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일정은 '1박 2일'이라고 다시금 나는 확신한다.
물론 그 일정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더욱 좋겠지만 한꺼번에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아니 된다. 자고로 욕심은 화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니까, 일단은 1박 2일로 만족하자.
쥐구멍에도 볕 뜰 날이 있고, 그 양반에게도 1박 2일 일정으로 워크숍 갈 날이 있으며, 내게도 찰나이긴 하지만 자유 시간이 주어질 날이 있는 것이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이게 웬 횡재냐'라고 한다지 아마?
그러니까 그 아름다운 외래어를 듣게 된 것은 약 한 달 전쯤이다.
"우리 또 워크숍 간다고 하더라. 가기 싫은데."
"그런 데 빠지면 못써.(= 당연히 가야지 = 안 가면 안 돼 = 반드시 가야만 해 = 내 생각도 좀 해주라 = 없는 워크숍도 만들어서 가줘, 제발~)"
"나 그런 거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
하지만 나는 그런 워크숍에 빠지는 당신을 더 안 좋아하는 거 잘 알잖아?
"알지. 그래도 어쩌겠어. 단체로 다 가는 건데 빠지면 안 되잖아."
'그런 거'에 질색하는 사람이 바로 그 양반이라는 것을 잘 안다.
물론 과거에 나도 그런 건 좋아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남의 워크숍이 더 좋아 보인다.
"맨날 출근하는 것보다 한 번씩 바람도 쐴 겸 가는 것도 괜찮잖아?"
눈치를 봐 가며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양반이 워크숍에 참석하도록 최선을 다해 거기에 참석해야만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읊어대기 시작했다.
"전에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워크숍 갔던 것 같은데? 그렇지? 다 필요하니까 가는 거겠지. 안 그래? 가서 뭐 하는데?"
"교육도 하고 이것저것 하지."
"그럼 당연히 가야지."
나는 행여라도 그 양반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워크숍에 불참하겠다고 사무실에 통보할까 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보내야만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코!
워크숍 일정을 내가 알게 된 후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다가도 자꾸자꾸 생각이 나서 그만 즐거워지기도 했다.
유치하게도 나는 친구에게까지 자랑을 다 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나는 이 대단한 일을 누구에게라도 알리고만 싶었다.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웠다.
아쉬운 대로 친구에게 '자랑'을 했다.
지금 당장 내게 자랑거리는 저런 종류의 것 말고는 별 다른 게 없었다.
"8월에 남편이 워크숍 간대. 그것도 1박 2일로."
내 말을 전해 들은 그녀는 이 한마디만 했다.
"부럽다."
이어 다음과 같은 부사도 한마디 덧붙였다, 진심을 다해서.
"진짜 부럽다."
이런 게 친구에게서 부러움까지 살 일인가 싶었지만, 부러움을 살 일이다.
워크숍은커녕 출장도 가지 않는( 그러나 1박 2일로 낚시는 꾸준히 다니시는) 남편을 둔 친구는 몇 번이고 내게 부럽다는 말을 했다.
"나 워크숍 간다고 하니까 당신은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게 말이지, '좋아하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심으로' 완전 좋아.
이럴 때만 눈치가 빠삭한 양반이라니.
나는 언제나 그 노래 가사를 떠올리곤 하는 것이다.
'Everybody needs a little time away I heard her say, from each other~'
이렇게 시작하는 그 노래(시카고- Hard to say I'm sorry)를, 특히나 그 양반에게 매일이라도 들려주고 싶은 그 노래를.
자그마치 1박 2일짜리 '워크숍',
나를 살게 하는 고마운 외래어.
그 외래어를 생각하면 나는 없던 힘도 불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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