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안 튀기지만, 어머니는 튀긴다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무더위에) 강하다

by 글임자
2024. 8. 15.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오랜만에 우리 튀김 먹을까?"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튀,김, 이라니?

이 더위에?

부침개도 아니고, 네가 정녕 '튀김'이라고 했단 말이더냐?

우리 아드님은 참 잡수고 싶은 것도 많으셔.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없던 불쾌지수도 마구마구 올라갈 것 같던 무더운 여름날, 하루는 아드님이 오랜만에 식욕이란 걸 보이셨다.

평소 많이 드시는 편 이 아닌지라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될 뻔'도 했다.

다만 그 메뉴가 '튀김'씩이나 된다는 게 문제였다.

"엄마, 우리 튀김 언제 먹었지? 먹은 지도 오래됐는데 오랜만에 '튀김이나' 먹는 건 어때?"

'튀김이나'라고 했겠다?

말은 참 쉽구나.

튀김이나 먹자 = 엄마가 직접 이 더위에 손수 재료를 손질해서 새 식용유를 공수해서 즉석에서 바로바로 몇 가지만 간단히 얼른 튀겨 주시지요

평소 거의 음식을 집에서 만들어 주는 나는 아이들이 먹고 싶다면 대부분 해 주는 편이었다.

먹고 싶다는데, 남들은 안 먹어서 걱정이라는데, 너무 안 먹는 것도 고민이라는데, 그까짓 음식쯤이야, 했다가 이 사달이 났다.

가능하면 그때그때 음식을 만들어 먹어서, 가능하면 주문하는 대로 만들어 내서, 거절을 잘하지 않아서 오늘날 이런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방학이기도 하고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까(그렇다고 해서 학기 중이라고 집에 없는 것도 아니고 학교만 끝나고 오면 거의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까 별 차이도 없긴 하지만) 한 살이라도 내가 젊을 때, 조금이라도 내가 기운이 있을 때 '이왕이면' 맞춰주자 하면서 요리를 해 줬더니 말이다.

밖에서 해로운지 이로운지도 따지지 않고 아무 음식이나 사 먹고 다니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딱히 음식 타박을 하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한 거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 아이들이 앞으로 얼마나 나한테 음식 해 달라고 하겠어, 조금 더 크면 친구들끼리 어울리면서 바깥음식 지겹게 먹게 될 텐데 이 정도쯤이야,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나하나 조금 애쓰면 되는걸 뭐, 이런 마음이었던 거다. 게다가 아이들이나 나나 평소 식욕이 그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이 먹는 편도 아니었으므로 뭐라도 먹고 싶다는 말만 했다 하면 기회는 이때다 싶었던 거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따뜻한 한여름이란 말이다.

하루 세끼에 간식 해 먹이는 것도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국에 '튀김'을 운운하다니 아무리 아들이 사랑스러워도 살짝 무리한 요구라고 판단했다, 나는.

내가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우리 아들이 갑자기 튀김이 먹고 싶어?"

"응, 엄마. 고구마튀김 어때?"

"집에 고구마가 없는데"

"그럼 사면되잖아."

"튀길 기름도 없는데?"

"그것도 사면되지."

"엄마가 더워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튀김이 먹고 싶다는데 안 해줄 거야?"

또 '하나밖에 없는 아들 타령'을 시작하셨다.

"우리 아들도 하나밖에 없는 엄마가 더워서 힘들다는데 지금 튀김을 먹어야겠어?"

여기서 잠깐,

"엄마 힘들면 안 해도 돼. 안 먹어도 돼."

라고 평소처럼 말할 줄 알았다, 나는.

그러나 의지의 한국인 어린이는 그 뜻을 굽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난 튀김이 먹고 싶은데..."

"그렇게 먹고 싶어? 우리 아들이 먹고 싶다는데 해 줘야지 그럼. 하다가 더워서 쓰러지기밖에 더하겠어? 안 그래?"

"그럼 오늘 힘들면 내일은 어때?"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며칠이 지나자 아들은 이제 닦달하기 시작했다.

"엄마, 튀김 해준다고 해놓고 왜 안 해줘?"

"엄마가 해 준다고는 했지만 언제 한다고는 정확히 말 안 했잖아.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엄마도 모르겠어. 지금 엄마 몸도 별로 안 좋은데."

"그래도 해 주긴 해 줄 거지?"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저럴까 싶다가도, 왜 느닷없이 튀김 타령을 하면서 나를 성가시게 하는지 만사가 귀찮아졌다.

"엄마, 벌써 며칠이나 지났어. 이젠 해 줄 때도 됐지 않아? 한다고 했으면 해야지, 안 그래?"

"그래. 맞다."

"엄마 힘들면 내가 할게. 알려줘."

얼씨구, 말은 잘해요.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그 양반이 아들에게 한마디 하셨다.

"날도 더운데 엄마 힘들게 갑자기 왜 튀김을 해 달라는 거야?"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 양반이 내 역성을 다 드는 날이 있다.

참고로 그 양반은 전날 내가 준비해 준 안주에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다음날 내가 끓여준 해장국까지 다 드셨다.

과연 술이 덜 깬 것인가 아니면 일종의 양심의 회복인가?

"너희들, 엄마가 직장 생활했으면 이런 튀김 꿈도 못 꿨을 텐데."

갑자기 무슨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지?

어쨌거나 결국 나는 해냈다, 튀김을.

자꾸 아들이 말하니까 나도 물들었는지 갑자기 튀김이 먹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같았다.

가지 튀김을 시작으로, 새송이 버섯, 밤고구마, 단호박, 새우튀김까지, 일단은 날도 덥고 힘드니까 간단히 다섯 가지만 했다.

할 때는 성가셔도 해 주면 우리 집 멤버 모두 잘 먹으니 해준 보람은 있었다.

시작하기 전에는 귀찮다가도 연신 맛있다는 말을 남발하며 오물오물 먹고 있는 그 입을 보고 있으면 그저 예뻐서 다 해주고만 싶다.

사서 줘도 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직접 해 주는 게 더 좋다.

깨끗한 새 기름에 바로 만들어서 따끈할 때 먹이고 싶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사서 고생한다.'라고 한다지 아마?


집에 있는 재료를 다 튀긴 후 마지막으로 아들을 불렀다.

"우리 아들이 튀김 한다고 했잖아. 얼른 와. 마지막은 네가 직접 해 봐. 이런 것도 다 해 봐야지. 그리고 나중엔 네가 직접 해 먹어."

튀김, 그게 뭐 대수냐는 얼굴로 아들은 내 곁으로 왔다.

주의를 주고 또 주의를 줬지만 결국 아들은 손을 살짝 데었다.

"엄마, 힘들어."

"이제 몇 분 했는데 벌써 힘들어? 엄마는 재료 준비부터 두 시간 가까이하고 있어, 지금."

"튀김 하는 게 쉬운 게 아니네."

"그치? 옆에서 먹기만 할 때는 몰랐지? 조심해도 이렇게 손도 데고 말이야."

"엄마, 나 속이 안 좋아. 기름 냄새 계속 맡으니까 이상해. "

"엄마 속은 오죽하겠어."

"엄마 힘들었겠다."

"그렇지. 힘들었지."

고작 5분 정도 기름 냄새 맡고 고구마튀김 한 번 뒤집어서 꺼내는 것으로 생애 첫 속성반 튀김에 도전했던 어린이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급기야 소파에 드러누우셨다.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자몽 에이드 만들었어.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저것도 아들이 좋아해서 자몽청을 만들어 놨다가 가끔 요긴하게 먹이고 있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그래? 그런 의미에서 개학하기 전에 엄마랑 같이 또 자몽청 만들자. 너 잘 먹잖아."

"알았어."


"우리 아들, 오늘 튀김을 해 본 소감이 어때?"

"생각보다 힘들었어."

"그래? 그리고 또 뭘 느꼈지?"

"앞으로 무리한 요구는 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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