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를 닦으려고 튀김을 했어
나도 계획이 있었다
2024. 8. 15.< 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 아들, 바빠?"
"왜?"
"튀김도 맛있게 먹었는데 이것 좀 해 줄 수 있어?"
"뭔데?"
"엄마랑 같이 연마제 제거 좀 하자."
그러니까 나도 다 계획이 있었다.
달랑 튀김만 해 먹고 끝나면 섭하지.
'튀겨 먹은' 보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연마제를 제거하기로 했다.
"우리 아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연마제 제거하는 일을 같이 해 왔다.
새 냄비를 사면, 스테인리스 제품을 사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연마제 제거다.
아이들도 어차피(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알고 있어야 하고 해야 하는 일이니 가르쳐 주는 게 좋겠다는 판단 하에 기원전 3,000년 경부터 연마제 제거 조기교육을 실시했다.
내가 거의 다하고 남매는 그냥 '시늉만'하는 정도다, 물론.
그리고 이왕이면 튀김을 '맛있게' 먹고 난 후, 그 포만감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그 작업에 돌입했던 것이다.
한 번 튀김에 사용한 기름은 윗부분만 따라서 며칠 안에 쓰면 괜찮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왠지 안 먹게 되니 다른 용도를 찾아야 했다. 그렇다고 그 기름을 바로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물론 나는 폐식용유를 모아서 버리지 않고 빨래 비누 만드는 일에 쓴다.
친정에 갖다 주면 엄마가 만들어 주신다.
그동안은 갖다 쓰기만 했는데 이젠 내가 직접 해봐야겠다.
튀김은 자주 해 먹지 않으니 그 양이 얼마 되지 않아 한창 모으는 중이다.
재활용 빨래 비누를 만드는 일 말고도 튀김을 하고 남은 기름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게 바로 연마제를 제거할 때이다.
옛날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새 스테인리스 제품을 주방 세제로 여러 번 닦은 후에 바로 썼지만 '연마제'가 안 좋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그 일에 아주 지극정성이 된 지 오래다.
스테인리스 제품이 아니더라도 새 프라이팬을 산 후 기름으로 닦아 내고 주방세제로 씻고 달궈서 길을 들이는 등 새 주방용품을 들인 후에도 폐식용유는 요긴하게 쓸 수 있다.(고 남들이 그러길래 나도 따라 하는 중이다, 최소한 해로운 것은 아니겠지?)
최근에는 아이들과 그 양반과 함께 새 프라이팬 5개를 닦았으며, 사놓고 모셔두기만 했던 스테인리스 제품들을 하나씩 틈 날 때마다, 폐식용유가 생길 때마다 작업을 한다.
마침 얼마 전에 휴대용 전기 포트를 장만했는데 튀김도 해 먹었겠다, 폐식용유도 생겼겠다 작업에 착수할 때가 도래한 거다.
"우리 아들, 전에 여러 번 해 봐서 잘 알지?"
"알지. 이렇게 요렇게 고렇게 하면 되지?"
"그럼! 우리 아들이 정말 잘하네. 얼마나 잘 닦았는지 연마제가 하나도 안 묻어 나오네."
아들에게 넘겨주기 전에 더 이상 연마제가 묻어 나오지 않을 만큼 내가 몇 번 닦아 낸 후였다, 물론.
깨끗할 수밖에.
"오늘 튀김도 맛있게 잘 먹고 이렇게 엄마랑 같이 연마제 제거도 잘하고 오늘 하루 잘 보냈네. 어차피 이런 것도 다 해 봐야지. 나중에 너 혼자 살게 되면 결국 네가 다 해야 되는 거잖아.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해. 알아두면 좋잖아."
"알았어."
"그래, 우리 아들은 잘할 수 있을 거야. 다음엔 우리 튀김하고 남은 기름으로 빨래 비누 만들어 보자."
꿩 먹고 알 먹는 시대는 갔다.
바야흐로 튀김 먹고, 연마제 닦고, 빨래 비누 만드는 세상이 왔다.
일석삼조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