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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Sep 20. 2024

어머님 또 그러신다, 또

한결같은 어머님

2024. 9. 7.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거 어떻게 만든 거냐? 맛있게도 만들었다."

"그냥 설탕만 넣었어요."

"이건 무슨 과일인데 이렇게 맛있냐?"

"백향과인데요. 백가지 향이 난데요, 어머님."

"그래? 향도 좋다."

"더 많이 만들어 오려고 했는데 이젠 안 팔더라고요. 다음에 보이면 또 만들어 드릴게요."

"그래. 진짜 맛이 좋다, 며늘아."


정말 어머님 마음에 드신 건지, 그냥 며느리 듣기 좋으라고 하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어머님이 흡족해하셨다.(고 믿는다)

고작 몇 시간 들여서 만든 과일청일 뿐인데 어머님은 이번에도 그렇게 반응하셨다.


"이거 어머님 갖다 드릴까?"

그 양반에게 자몽청과 백향과청을 보이며 '그냥 예의상' 한번 물어봐줬다.

"저건 뭔데?"

자몽청은 기원전 5,000년 경부터 구경해 왔으나 백향과는 처음 보는 과일이다, 그 양반에게는.

"이건 백향과야. 본 적 없지? 이게 진짜 맛이 좋더라. 어머님이랑 아버님 한 번 드셔 보시라고."

"생긴 게 좀 그런데?"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 말랬지? 아무튼 먹어 보면 맛은 좋다니까. 내가 옛날에 교육받으러 갔는데 이 차를 주더라.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보는 거였는데 맛있었어."

한 오백 년 전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외국인 관련 업무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권역별로 담당자를 모아서 하는 교육이었는데 그때 백향과 차가 나왔었다.

교육 내용은 별로 생각나지 않았고(그러면 안 됐었는데 그때도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갔던 과거를 이제와 고백하는 바이다), 나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 맛본 차였다. 생긴 건 좀 그래도(?) 맛이 꽤 좋아서 아주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났다. 따뜻하게 마신 그 백향과 차가 어찌나 맛있었는지 (그날 받은 교육을 복습한 게 아니라) 교육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나는 내가 마신 그 차의 정체를 찾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백향과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것을 구입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쉽지 않았다.

일단 이름을 몰랐으니 찾기가 어려웠다.

그 후로 한참 만에 한 번 백향과청을 만들어 봤고 이번에 마트에 갔더니 보이길래 덥석 집어왔던 것이다.

이렇게나 맛있는 것을 시부모님께도 한 번 대접해 드리고 싶었다.

친정은 가까우니까 쉽게 자주 갈 수 있지만 시가에 가려면 큰맘 먹고 가야 해서 우선 시부모님 몫을 만들기로 했다.(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단한 효심을 가진 며느리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물론.) 어머님은 항상 좋은 것, 맛난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나도 맛있는 것을 보니 어머님 생각이 났던 것이다.(내 입맛에는 맛있지만 어머님은 또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 같은 건 그때 전혀 하지도 않았다.)

전에 자몽청이나 레몬청, 딸기청, 키위청 이런 것들은 몇 번 만들어 드린 적이 있었는데 맛있게 잘 드신 기억이 있어서 오랜만에 손을 풀었다.

"어머님, 아버님이랑 차로 드세요. 시원하게 드셔도 되고 따뜻하게 드셔도 돼요."

자몽청은 두 개, 백향과청은 한 개 이렇게  식탁 위에 올려놨다.

"그래. 색깔도 이쁘다. 이건 뭐냐."

"자몽청이에요. 나중에 형님 오시면 가져가라고 하세요."

시누이몫까지 지정해 주고 어머님과 차를 한 잔씩 마시는데 어머님이 계속 맛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진짜 맛있다."

정말 그렇게 맛있으신가?

"더 많이 만들어왔으면 좋았을 텐데. 더 이상 안 팔더라고요. 이게 가격이 좀 있는데 할인을 많이 해서 비싸게 안 주고 샀어요."

(엄마들 앞에서는 '할인을 해서 샀다'라는 말을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한다.)

백향과는 마트에서도 흔히 보기 힘들었고(내가 사는 곳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격도 절대 저렴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발품을 팔아도 그 귀한 건 눈에 띄질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평소 온라인 쇼핑이 특기인 내가 왜 그걸 주문할 생각을 못했는지 이제와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더 있었더라면 넉넉하게 주문해서 어머님도 더 많이 드리고 친정에도 만들어드리는 건데.


어머님은 또 그걸 자랑하셨단다.

아마 친한 멤버 분을 집에 초대하셨을 거다.

며느리가 만들어준 거라고 잔뜩 자랑하셨단다.

"형님은 좋겠수. 며느리가 이런 것도 만들어 주고."

어머님은 그 말씀도 들으셨다고 한다.

굳이 자랑까지 하실 건 없었는데, 그러시라고 드린 건 아닌데...

그래도 맛있게 드시고 손님 대접도 잘하셨으면 그만이다.

한창 과일청 만드는 일에 전부를 걸었던 때가 있긴 했다.

중간에 좀 시들해졌었는데 이번에 어머님 반응을 보니 다시 작업에 돌입해도 괜찮겠다.


"밖에서 사 먹어도 되지만 비싸기도 하고 제가 직접 만들면 더 나을 것 같아서 만들었어요."

"이렇게 맛있는데 밖에 뭐 하러 나가냐. 잘했다."

"너무 달지는 않으세요? 설탕은 유기농 설탕으로 했는데 다음엔 자일로스 설탕으로 한 번 해서 드릴게요. 몸에 흡수가 덜 된대요."

"그래. 우리 며느리는 이렇게 집에서 다 만들어 먹으니까 좋더라."

"애들도 잘 먹거든요. 제가 직접 만들면 그래도 사 먹이는 것보다는 낫겠죠? 덜 달게 조절할 수 있고."

"그럼. 그렇지."

다행히,

내가 그런 일을 좋아한다.

만드는 재미도 있고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또 다음 메뉴를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덥긴 하지만 이번엔 겨울 감기를 대비해서 대추생강차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우선 시부모님께 곧 시작될 독감 예방 접종 일정을 한 번 확인해 보시라고 전화부터 드리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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