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고부 수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Sep 16. 2024

어머님, 저한테 다 주세요!

갖고 싶지만 온전히 가질 수 없는 것

2024. 9. 13.

< 사진 임자 = 글임자 >


"며늘아, 어쩌면 김치를 그렇게 맛있게 담갔냐? 오늘 낮에 네가 준 걸로 비빔밥 해 먹었다. 맛있더라."

"아, 그러셨어요? 어머님이 주신 양념으로 해서 맛있죠. 어머님이 워낙 맛있게 양념 만들어 주셨잖아요. 제가 했으면 그렇게 맛있게 안 됐을 거예요."

"아니야. 우리 며느리는 잘할 수 있어."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어머니표 김치 양념을 협찬받아 배추김치를 담갔다.

김치 담그는 일은 양념이 생명이고 그게 8할 이상인데, 그 양념이 맛을 보장해 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지난 주말에 시가에 갔다가 염치 불구하고 또 어머님께 김치 양념을 받아왔다.

결혼하고 올해 처음으로 김치 양념을 받아 와서 시험 삼아 김치를 만들다 보니 종류별로 거의 다 만들어 보게 됐다.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는지 모르지만 그 양도 많은 김치 양념은 누가 다 먹었는지는 확실하다. 내가 다 해치웠다.

김치 담그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솔직히 다 된 김치 양념에 무나 배추, 쪽파 이런 재료들만 섞어주면 끝이니 양손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며느리는 그깟 김치 담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가족들의 반응도 꽤 좋았으므로 나는 일종의 김치를 담가야만 하는 의무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기를 꼬박꼬박 어머님께 전화로 보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얼갈이김치 한 그릇과 무 생채 한 그릇 딱 두 종류만 아주 소량으로 시가에 갖다 드렸다.(고백하건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너무 시부모님 입맛에 안 맞아서 냉장고에서 방치되다가 저세상으로 가버릴지도 모르는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계획적으로 진행한 일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두 분만 계시니까 많이 가져갈 필요도 없었다.(그러니까 어머님표 양념은 썩 훌륭했으나 가령 간이 입맛에 안 맞는다든지 하는 정도의 결정적인 미숙함이 뻔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수 십 년 김치를 담가 오신 분 입장에서는 이제 겨우 김치의 'ㄱ' 정도나 흉내 내보려는 며느리가 성에 찰 리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담근 김치가 별로라는 식으로는 절대 말씀하지 않으실 분이라 두 분께 맛이나 보시라고 조금 드린 거였다. 어른들은 간을 좀 해서 드시는 편인데 나는 좀 싱겁다 싶을 정도로 음식을 해서 입맛에 안 맞기 십상이다.

"니가 해 준 것은 맛이 없어. 간이 안 돼 있어."

라고 친정 엄마는 항상 말씀하신다.

맛이 없다는 게 정말 맛이 없다는 게 아니라 싱거운 편이라서 맛이 별로 안 난다는 그런 의미다.

아무래도 간을 자극적으로 하지 않으니 내 음식은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시가에 갈 때 내가 담근 김치를 가져갈까 말까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맛이야 있든 없든,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만 먹다가 남이 만든 음식을 먹으면 맛있게 느껴질 때도 있으니까, 결정적으로 이렇게 쉽게 김치를 담글 수 있게 양념을 제공해 주셨는데 한 번 정도는 그 결과물을 내놓아야 마땅하다는 판단 하에 실천한 것이다.

보통 내가 하는 음식은 뭐든지 맛있다, 잘했다 이렇게 자동반사를 하시는 편이라 내 김치가 맛없어도 맛있다고 하실 분이다, 어머님은.

갖다 드린 김치 양이 워낙 소량이어서 두세 번에 나눠 드시면 다 드실 수 있는 정도다.

이렇게 적은 양을 드렸다는 사실이 친정에 알려지면 엄마는 분명히 한 말씀하실 거다.

"간사하게, 음식을 그렇게 적게 가져갔냐?"

순식간에 나는 간사한 인간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일단 음식은 푸짐한 걸 좋아하는 친정 엄마와 달리 어머님은 조금씩, 적당히를 선호하시는 편이라(그렇게 믿고 13년을 살았는데, 내 짐작이 맞겠지?) 내 딴에는 고객 맞춤형으로 김치를 선보인 것이다.

어머님이 거의 다 해주셔서 그렇지 양념을 만드는 일부터 나 혼자 다 해야 한다면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려면 하긴 하겠지만 절대 그 맛을 보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며느리는 김치도 이렇게 맛있게 잘 담그네."

"어머님 양념이 맛있어서 그렇지 전 한 것도 없는데요."

"아니다. 잘 만들었어."

"어머님, 나중엔 양념도 제가 만들어볼게요. 어떻게 하는지 알려 주세요."

"그래. 그러자."


연세도 있으시니 점점 어머님은 놓아야 할 살림이 늘어날 것이다.

어머님이 더 힘들어지시기 전에 그 솜씨를 배우고 싶다.

그동안 왜 그 생각을 전혀 못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다 갖고 싶다.

나는 감히 흉내도 못 낼 그 손맛,

결코 똑같아질 수는 없겠지만 시늉이라도 한 번 내 보게.

적어도 자식에게 김치 담가주고 싶은 모정과 담가 줘야만 한다는 그 부담감 사이에서 자유로워지시길 바라며...



매거진의 이전글 더 이상 어머님께 바랄 순 없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