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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14. 2024

더 이상 어머님께 바랄 순 없겠지?

이젠 내가 나서야겠어

2024. 8. 8.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옛날에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고구마줄기 김치 정말 맛있었는데..."

"그랬어?"

"그건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어머님 덕분에 전 태어나서 그 김치는 처음 먹어 봤어요."

"고구마 줄기 껍질 벗기고 하면 돼. 그래야 연하거든."

"그럼 한번 데쳐서 해야 돼요? 아니면 그냥 바로 해도 돼요?"

"한번 데치면 더 좋지. 데치면 껍질이 더 잘 벗겨진단다."

"아, 그래요?"

"양념도 많으니까 제가 한 번 만들어보려고요."

"그래. 우리 며느리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어머님께 비법도 전수받았겠다, 양념도 백 년 전에 받아 놨겠다.

이제 행동 개시만 하면 된다.


"고구마줄기로 김치도 다 담가 먹어? 거기선 그래? 난 태어나서 이런 김치는 처음이야."

그 양반과 결혼하고 나는 처음인 것들이 꽤나 있었다.

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 거주하고 살면서도 각자 자란 지역과 환경이 다르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말이다.

특히, 고구마줄기 김치를 처음 먹어 봤을 때의 그 신선함이란.

친정에서는 고구마 줄기를 데쳐서 된장과 식초에 묻혀 먹은 적은 많았지만 어머님처럼 김치를 담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그 새로운 발상(어쩌면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마는)이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놀라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은 더 놀라웠다.

어느 해 추석이었을 것이다.

"어머님, 이건 처음 보는 김치네요. 무슨 김치인데 이렇게 맛있어요?"

처음 그것을 맛보고 내가 한 말은 저거였다.

"응, 그거 고구마 줄기다."

"네? 고구마 줄기로 김치도 담가요?"

"그럼. 우리는 옛날부터 담가 먹었다."

"그래요? 저흰 한 번도 이렇게 안 해봤는데."

"거기서는 안 먹냐?"

"그냥 데쳐서 무쳐먹기만 해 봤어요."

"그랬어? 이거 김치 담가 먹어도 맛있단다."

"정말 그렇네요. 진짜 맛있어요, 어머님."

아삭아삭 한 것이, 풋내도 안 나고 적당히 씹히는 맛도 있고 전혀 자극적이지 않았으며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맛이었다.

내가 뛰어난 미각을 소유한 사람도 아니고,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도 아니지만(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 집 어떤 성인 남성은 나처럼 까다로운 사람도 없다고 줄기차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긴 하다) 고구마줄기 김치는 다른 김치들과 뭔가 달랐다.

그렇게 고구마줄기 김치에 눈을 뜬 나는 올여름에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먹고 싶다, 고구마줄기 김치가.

그러면 담가 먹으면 되지.

"어머님, 저번에 그 고구마줄기로 만드신 김치 정말 맛있던데 좀 담가 주실 수 있나요?"

라고 철없이 어머님께 주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잖아도 여기저기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께 요구하긴 뭘 요구한단 말인가.

내가 만들어서 갖다 드리지는 못할 망정(그동안 받아먹은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내가 김치를 담가서 어머님게 갖다 드려야 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어머님을 성가시게 할 수는 없었다.

사지 육신 멀쩡한 내가 직접 담그면 일이다.

영상을 뒤지고 뒤져 예습을 했다.

물론, 이론으로만.

잘하면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게다가 어머님의 조언도 있었으니 한껏 자신감이 생겼다.

다만 내가 두려운 것은 실패하게 돼서 아까운 양념만 버리게 되는 건 아닌가(물론 정말로 버린다는 말이 아니다)하는 마음에 선뜻 마음먹기가 쉽지는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첫 번째로 만들 때는  고구마 줄기를 데치지 않고 껍질을  벗겨서 그냥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

부드러운 맛은 덜 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살짝 데치면 손쉽게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두 번째로 만들 때는 어머님의 의견(경험자의 노하우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을 적극 반영하여 살짝 데치고 나서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겼더니 술술 잘도 벗겨졌다. 물론 우리 집 두 어린이들도 그 대단한 김치 담그는 작업에 동참했다. 자고로 방학이란 집에서 김치 담그기 체험학습에 적극 참여 하라고 주어지는 것이니까.

두 번 다 그런대로 맛있게 담가졌다.

당장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님, 제가 고구마줄기 김치 담갔는데 정말 맛있어요."

"고구마줄기로 김치를 다 담갔어?"

"네. 옛날에 어머님이 만드신 거 생각나서요. 양념이 맛있으니까 뭘 만들어도 다 맛있네요."

"그랬어? 잘했다."

"그래도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것보다는 덜 맛있어요. 어머님 김치는 진짜 맛있었는데."

"우리 며느리도 잘 하지."

"이번에도 어머님 덕분에 김치 맛있게 잘 먹겠네요."

"그래. 다 먹으면 양념 또 줄게."

어머님께 말씀을 듣자고 전화한 아닌데, 내가 새로운 김치를 만들고 경과보고를 할 때마다 어머님은 자꾸만 양념을 주겠다고 하신다.

맛있게 됐다고는 했지만 솔직히 어머님이 손수 담그신 것만은 못한 게 사실이다.

어머님 손맛을 따라잡을 수도 없고,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은 어머님이 계셔서 이렇게 시도 때도 전화하면서 호들갑 떨 수 있지만 나중에 안 계실 때는 어쩌지?

고구마 줄기가 나올 때쯤이면 난 언제나 어머님 생각이 날 것 같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자꾸 생각날 것 같다.

솜씨가 좋아 다른 음식도 다 맛있게 잘하시지만 김치를 특히 정말 맛있게 담그셨다고, 태어나 처음 먹어본 고구마줄기 김치에 단번에 반해서 직접 담가 먹게 됐다는 그런 얘기를 하면서 종종 그 맛을 그리워하겠지.

나는 아무리 흉내 내보려 해도 도저히 같을 수 없는 그  맛을,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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