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대한민국 영토 안에 거주하고 살면서도 각자 자란 지역과 환경이 다르니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말이다.
특히, 고구마줄기 김치를 처음 먹어 봤을 때의 그 신선함이란.
친정에서는 고구마 줄기를 데쳐서 된장과 식초에 묻혀 먹은 적은 많았지만 어머님처럼 김치를 담가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므로 그 새로운 발상(어쩌면 나만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마는)이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놀라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맛은 더 놀라웠다.
어느 해 추석이었을 것이다.
"어머님, 이건 처음 보는 김치네요. 무슨 김치인데 이렇게 맛있어요?"
처음 그것을 맛보고 내가 한 말은 저거였다.
"응, 그거 고구마 줄기다."
"네? 고구마 줄기로 김치도 담가요?"
"그럼. 우리는 옛날부터 담가 먹었다."
"그래요? 저흰 한 번도 이렇게 안 해봤는데."
"거기서는 안 먹냐?"
"그냥 데쳐서 무쳐먹기만 해 봤어요."
"그랬어? 이거 김치 담가 먹어도 맛있단다."
"정말 그렇네요. 진짜 맛있어요, 어머님."
아삭아삭 한 것이, 풋내도 안 나고 적당히 씹히는 맛도 있고 전혀 자극적이지 않았으며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맛이었다.
내가 뛰어난 미각을 소유한 사람도 아니고,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도 아니지만(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 집 어떤 성인 남성은 나처럼 까다로운 사람도 없다고 줄기차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긴 하다) 고구마줄기 김치는 다른 김치들과 뭔가 달랐다.
그렇게 고구마줄기 김치에 눈을 뜬 나는 올여름에 중대한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먹고 싶다, 고구마줄기 김치가.
그러면 담가 먹으면 되지.
"어머님, 저번에 그 고구마줄기로 만드신 김치 정말 맛있던데 좀 담가 주실 수 있나요?"
라고 철없이 어머님께 주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잖아도 여기저기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께 요구하긴 뭘 요구한단 말인가.
내가 만들어서 갖다 드리지는 못할 망정(그동안 받아먹은 것을 생각하면 이제는 내가 김치를 담가서 어머님게 갖다 드려야 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어머님을 성가시게 할 수는 없었다.
사지 육신 멀쩡한 내가 직접 담그면 될 일이다.
영상을 뒤지고 뒤져 예습을 했다.
물론, 이론으로만.
잘하면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게다가 어머님의 조언도 있었으니 한껏 자신감이 생겼다.
다만 내가 두려운 것은 실패하게 돼서 아까운 양념만 버리게 되는 건 아닌가(물론 정말로 버린다는 말이 아니다)하는 마음에 선뜻 마음먹기가 쉽지는 않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첫 번째로 만들 때는 고구마 줄기를 데치지 않고 껍질을 벗겨서 그냥 만들었다.
그러니까 그건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
부드러운 맛은 덜 했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살짝 데치면 손쉽게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두 번째로 만들 때는 어머님의 의견(경험자의 노하우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을 적극 반영하여 살짝 데치고 나서 고구마 줄기 껍질을 벗겼더니 술술 잘도 벗겨졌다. 물론 우리 집 두 어린이들도 그 대단한 김치 담그는 작업에 동참했다. 자고로 방학이란 집에서 김치 담그기 체험학습에 적극 참여 하라고 주어지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