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가져오긴 했는데, 이미 양념이 다 준비되어 있는데도 내가 직접 김치를 담그려니 솔직히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전에도 내 손으로 양념을 만들어서 김치를 담가 본 적이 있긴 했지만 워낙 우리 집 멤버들이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굳이' 김치를 담가 먹을 필요성은 딱히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그저 친정에서 엄마가 반찬을 조금씩 주면 그것도 먹는 데 한참이나 걸리니 더는 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올여름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아마도 어머님표 김치 양념만 믿고 그랬을 테지만) 난데없이 새 김치가 먹고 싶었다.
시어진 김장 김치 말고, 한 번씩 만들어 먹는 겉절이 말고, 그냥 김치를 담가서 먹어보고 싶다는 갑작스러운 욕구가 판을 벌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얼갈이김치부터 시작했다.
한 단을 사다 얼갈이김치를 담가서 친정에도 조금 드렸다.
솔직히 한 단 담가봐야 얼마 되지도 않지만 앞서 밝혔듯이 우리 집 멤버들은 반찬을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한단만 있어도 한참이나 먹을 양이 나온다.
"며늘아, 김치 담그면 엄마도 갖다 드려라. 엄마 힘드시니까 네가 많이 도와드리고."
이런 어머님의 당부도 있었고, 내 솜씨(인지 어머님 솜씨인지 딱히 구분하기 힘들지만, 따지자면 어머님 솜씨가 8할 이상은 되겠지만, 어쩌면 거의 어머님 솜씨지만)를 검증(?) 받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친정으로 향했던 거다.
"먹을 만하다."
엄마는 저렇게 평하셨다.
그런대로 김치 흉내는 냈다는 뜻이겠지?
그 양반도, 아이들도 맛있다고 잘 먹었다.
다음엔 열무김치를 담갔다.
그다음엔, 무생채, 고구마줄기 김치, 배추김치, 나박김치, 다시 고구마줄기 김치, 깻잎 김치, 이렇게 거의 두 달간 매주 새로운 김치를 담갔다.
"어머님, 저 이번엔 무생채 만들었는데 애들이 맛있다고 잘 먹어요. 합격이 아범도 잘 만들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보고 계속 김치 담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