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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ug 13. 2024

이게 다 시어머니 때문이다

그 며느리는 호강에 겨워서

2024. 8. 1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머님, 저번에 어머님이 주신 양념으로 열무김치 담갔어요."

"그랬냐, 잘했다."

"양념이 맛있어서 김치가 맛있게 됐어요."

"네가 맛있게 잘해서 그렇지."

"아니에요, 어머님이 김치 양념을 맛있게 잘 만들어 주셔서 그렇죠. 제가 만들어서 하면 이렇게 맛있게 안 될 거예요."

"그래. 우리 며느리 최고다."


물론 최고의 며느리는 아닌 나는,  우리 집 성인 남성이, 즉 어머님의 아들이 만에 하나 고부간의 대화를 듣는다면,

"어머니, 그건 어머니 오해랍니다. 이 사람 실체를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라고 발끈할 일이지만(언젠가 그 양반은 시가에 내 실체를 폭로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중이다) 사실과는 다를지라도 시어머니는 손도 안 대고 코 푼 격인 며느리의 행동에 칭찬 일색이셨다.


그러니까 내가 6월 말부터 일주일에 한 가지씩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건 순전히 시어머니 때문이었다.

"며늘아, 김치 양념이 많은데 가져가서 먹을래?"

올봄에 시가에 갔을 때 어머님이 '혹시 가져가서 먹을 생각이 있으면 가져가라'고 하셔서 나는 그 제안을 바로 수락했던 것이다.

아마 어머님 성격에 분명히 며느리에게 챙겨 주시려고 내 몫을 따로 떼어 놓으셨을 것이다.

어머님 김치는 맛볼 필요도 없이 맛이 있으니까, 김치 양념도 당연히 맛이 있을 예정이니까 내겐 전혀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주시면 좋죠. 그럼 김치도 편하게 담글 수 있잖아요. 어머님이 솜씨도 좋으시니까 저야 가져가면 좋죠."

그리하여 나는 어머님표 김치 양념을 챙겨 왔다.

자그마치 두 봉다리나 말이다.

일단 가져오긴 했는데, 이미 양념이 다 준비되어 있는데도 내가 직접 김치를 담그려니 솔직히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전에도 내 손으로 양념을 만들어서 김치를 담가 본 적이 있긴 했지만 워낙 우리 집 멤버들이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굳이' 김치를 담가 먹을 필요성은 딱히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그저 친정에서 엄마가 반찬을 조금씩 주면 그것도 먹는 데 한참이나 걸리니 더는 일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올여름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아마도 어머님표 김치 양념만 믿고 그랬을 테지만) 난데없이 새 김치가 먹고 싶었다.

시어진 김장 김치 말고, 한 번씩 만들어 먹는 겉절이 말고, 그냥 김치를 담가서 먹어보고 싶다는 갑작스러운 욕구가 판을 벌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얼갈이김치부터 시작했다.

한 단을 사다 얼갈이김치를 담가서 친정에도 조금 드렸다.

솔직히 한 단 담가봐야 얼마 되지도 않지만 앞서 밝혔듯이 우리 집 멤버들은 반찬을 많이 먹는 편이 아니라 한 단만 있어도 한참이나 먹을 양이 나온다.

"며늘아, 김치 담그면 엄마도 갖다 드려라. 엄마 힘드시니까 네가 많이 도와드리고."

이런 어머님의 당부도 있었고, 내 솜씨(인지 어머님 솜씨인지 딱히 구분하기 힘들지만, 지자면 어머님 솜씨가 8할 이상은 되겠지만, 어쩌면 거의 어머님 솜씨지만)를 검증(?) 받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친정으로 향했던 거다.

"먹을 만하다."

엄마는 저렇게 평하셨다.

그런대로 김치 흉내는 냈다는 뜻이겠지?

그 양반도, 아이들도 맛있다고 잘 먹었다.

다음엔 열무김치를 담갔다.

그다음엔, 무생채, 고구마줄기 김치, 배추김치, 나박김치, 다시 고구마줄기 김치, 깻잎 김치, 이렇게 거의 두 달간 매주 새로운 김치를 담갔다.

"어머님, 저 이번엔 무생채 만들었는데 애들이 맛있다고 잘 먹어요. 합격이 아범도 잘 만들었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보고 계속 김치 담그래요."

"그래, 잘했다."

"어머님이 양념을 맛있게 만들어주셔서 정말 편하게 김치 담갔어요. 고맙습니다, 어머님. 엄마도 맛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랬어? 양념 많이 있는데 또 줄까?"

"우선은 먹을 거 남았어요. 그건 어머님 두고 드세요. 양념 한 번 만드시려면 힘들잖아요. 이젠 제가 양념도 만들어 볼게요."

"그럴래? 나중에 필요하면 말해라."

"그럴게요."

"우리 며느리 대단하다. 김치도 다 담그고."

"어머님이 다 하신 거죠. 전 양념에 비비기만 했는데요."

"그래도 우리 며느리 최고다."

어머님, 자꾸 그러시면, 제가 양심상 찔려서...

(어머님 아들 없는 데서만 그 말씀하셔야 돼요.)

"어머님 덕분에 당분간 김치 걱정 없이 살겠네요. 정말 맛있어요. 양념을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나중에 저한테도 알려 주세요."

"그래. 그러자."

한동안 나는 매주 다른 재료로 소꿉놀이하듯 김치 담그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시어머니 때문에 여름 내내 김치만 담갔다.

아니, 내가 더위를 먹었나 보다.

호강에 겨워 허튼소리를 했다.

말은 똑바로 해야겠지?

시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이게 다 고마운 시어머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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