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처음으로 부화기로 병아리를 만나고 아빠는 신생아(?)에게 적합한 주거 환경을 마련하고자 나름 열심히 사전 조사를 하신 모양이다.
"병아리, 그런 거 아무 데나 키우면 되제 또 뭘 사고 싶어서 그런다냐?(=딸아, 그런 건 필요도 없다, 알아볼 생각도 하지 말아라)"
엄마는 일단 아빠를 제지하셨다.
아빠는 아주 자주 무언가를 사고 싶어 하셨고, 엄마는 그럴 때마다 일단 제동부터 걸고 보셨다.
(어쩜, 우리 집이랑 똑같잖아?)
"이것들이 안 죽고 잘 살랑가 모르겄다. 닭이 품어서 부화를 해야 하는데 기계로 부화해서 시원찮다."
아빠는 무조건 엄마는 자녀에게 모유 수유를 해야만 한다고 맹신하는 분답게 생명이 있는 어미 닭이 품어서 부화를 했어야 마땅할진대 현대 기술의 힘으로 세상 구경을 한 그 작은 생명체들이 아직도 그렇게 미덥지 않아 보이던 부화기로 병아리가 7마리나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아무 탈 없이 삐약거리며 잘 걸어 다니는데도 여전히 뭔가 수상쩍어하셨다. 아빠가 보시기엔 기계의 힘으로 태어났으니 뭐가 다를 것이라고 믿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좀 더 약할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내린 특단의 조치가 병아리 전용 주거공간 마련이었다.
"거기에는 병아리 사료 주는 거랑 물 주는 것도 다 있어서 다른 건 필요도 없어. 온도도 맞출 수 있고."
정말 진지하게 알아보셨던 모양이다.
"그런 것이 뭣이 필요하다요? 그것들이 언제부터 그런 데 들어가서 살았다고?"
역시나 엄마는 완강히 반대하셨다.
"그래도 그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아빠는 미리 보아 두신 그 '물건'이 아주 마음에 드셨나 보다.
보통 때 같으면 적당히 추진해 보시다가 엄마가 반대하시면 그만두시는 편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환경을 살짝 중요시하시는 분이시다. 병아리에게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아빠 마음은 그동안 아빠가 병아리가 살 집으로 어떤 것이 좋겠는지 여기저기서 검색한 흔적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때는 어찌나 적극적으로 그 일을 추진하시던지 옆에서 보고 있던 나마저도 아빠를 거들고 싶을 지경이었다.
"엄마, 아빠 소원이라는데(물론 아빠는 소원이라고 말씀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한 번 사시라고 합시다. 병아리가 잘 커야 나중에 알도 낳고 그러지."
이렇게 나도 살짝 더 적극적으로 아빠를 지지했으나 돌아오는 건 엄마의 간단명료한 해결책뿐이었다.
"다 필요 없어. 그런 거 아니어도 된다. 저기밖에 나가서 상자 제일 큰 놈으로 하나 갖고 와라."
서, 설마? 인형의 집도 아니고 병아리에게 상자 집을?
그러나 엄마라면 충분히 그러실 분이다.
"병아리 그것들 금방 큰다. 내일모레 밖에 내놓을 것인디 뭐 하러 쓰잘데기 없이(엄마는 이 부분에가장 힘주어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런 것을 산다고 그런다냐?"
그렇다. 엄마는 처음부터 마음속에 집을 짓고 계셨다. 병아리들의 보금자리로 상자 집을 말이다.
어차피 병아리는 너무 어려서 바로 바깥에 놓고 키우기 힘들다. 그때가 4월 말이었으니까 밤이 되면 공기도 쌀쌀하고 잘못하면 그 달걀만 한 것들이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 어미 닭이 품어서 부화했더라면 잘 때도 품어줄 테지만 어디서 난데없이 어린것들이 나타나서 '나 좀 품어주시오' 한다고 선뜻 품겠다고 자원하는 암탉도 없을 것 같았다.
"엄마, 상자에 넣고 병아리를 키운다고?"
"그래. 그 정도믄 호강이제. 방도 따뜻하고 세상 좋제."
또 듣고 보니 그럴듯하기도 했다.
엄마랑 얘기하느라 아빠는 잠시 잊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아빠가 커다란 종이 상자를 들고 오셨다. 양쪽에 구멍까지 뚫린 놈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