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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19. 2024

그러면 엄마가 죽도 안 주실 걸요?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죠

< 사진 임자 = 글임자 >

2024. 10. 15.

"폿이 아니고 '팥'이라고!"

"폿이 폿이제. 폿이믄 어쩌고 '팥'이믄 어쩐다요?"

"팥을 팥이라고 해야제 왜 폿이라고 하냐고?!"


아빠도 참,

폿이면 어떻고 팥이면 어떻다고 그러시나.

그 팥, 푹 고아서 맛있게 죽 쑤어 먹으면 그만인 거지.

팥이 맛이 있으면 그 사명을 다 한 거지.(라고 나만 혼자 내내 생각했고 두 분은 한동안 열띤(?) 공방을 벌이셨다.

길을 가다가 들판에 팥인지 어쩐지 정확히 파악은 안 되는 작물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저기는 어째 녹두를 아직도 안 따고 저리 놔뒀구만."

처음 그 작물을 발견한 엄마가 먼저 말씀하셨다.

그리고 연이어 아빠가 반박의 말씀을 하시는 걸 잊지 않으셨던 거다.

"녹두를 지금까지 안 따고 있으믄 되나? 녹두는 진작 다 땄제. 저것이 녹두로 보여?"

농사 경력 수 십 년 째인 아빠는 확실히 녹두는 아니라고 확신하셨다.

"그러믄 저것이 폿일까나?"

"팥이믄 팥이제, 폿이 뭐여? 엄마가 폿이라고 한다. 폿이 맞냐, 팥이 맞냐?"

엄한 불똥이 내게 튀었다.

그러니까 그게 정확히 표준어로 따지자면 아빠 말씀이 전적으로 옳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방언이라는 게 있다. 지역 사투리는 사투리대로 인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팥이든 폿이든 그게 그거지. 왜 또 그러셔?"

나는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를 묻는 부모 앞에서 어리둥절해진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중 어느 한 분을 고르기엔 나는 너무 많이 커버렸다.

지금 내가 누구 편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편 들 일도 아니거니와 편 들 마음도 없었다.

이렇게 티격태격하신 게 어디 하루 이틀도 아니고, 결혼 생활 거의 5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엄마가 그런 분인 줄, 아빠가 그런 분인 줄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아실 텐데 또 '굳이' 저러신다.

가끔 보면 아빠는 엄마 놀리는 재미로 사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엄마가 발끈하면 그게 재미있어서 자꾸 그러신다.

평소에 아빠는 엄마의 그런 행동을 지적(?)하기를 좋아하셨다.

"폿이 아니고 팥이여. 그라고 운둥이 아니고 '운동'이여. 느이 엄마는 운동을 운둥이라고 한단다."

같이 사는 내내 국어 시간에 맞춤법을 공부하고 받아쓰기를 하는 학생처럼 엄마는, 잘못된 언어 습관은 기어이 바로잡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는 선생님처럼 아빠는, 그렇게 지내 오셨다는 걸 나는 아주 잘 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아빠는 굳이 '꼭' 지적을 하시며 엄마를 놀리시기도 한다.

옆에서 보는 사람(=나)은 두 어른이 좀 유치해 보이기도 하면서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나기도 하면서 매번 톰과 제리처럼 행동하는 부모님이 (어른들께는 이런 말이 실례라고 하지만) 귀엽게까지 보일 때가 다 있다.

"내가 언제 운동을 운둥이라고 했다고 그러요?"

엄마는 아빠의 말씀에 바로 반박했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바로 산증인이다.

그동안 엄마는 정말 아빠가 말씀하신 대로 정확히 '운둥'이라고 거의 매번 그렇게 발음하셨다.

나야 뭐 그런가 보다 하고 '운둥=운동' 이렇게 심상하게 넘겼지만 아빠는 그런 모습을 보면 절대 그냥 넘기지 못하시는 거다. 꼭 지적을 하고 바로 잡아야만 직성이 풀리시는 것 같다.

"아빠, 운동이든 운둥이든 하고 안 아프고 건강하면 그만이지 왜 그러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뿐이다.

"아버지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40년 이상 보아 왔으니 이건 변명의 여지조차 없는 일입니다. 어머니, 이쯤 되면 순순히 인정하시지요.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제가 듣기에도 확실히 '운둥'이라고 발음하셨습니다. 이제 받아들이세요."

라고 눈치 없이 두 분 사이에 끼어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집에 늙은 호박 있는 거 폿하고 고아갖고 폿죽 한 번 쒀 먹어야 쓰겄다. 맛나겄다!"

"폿죽이 아니고 팥죽이라니까 그러네."

마지막까지 아빠는 한 치의 양보도 없으셨다.

"내가 언제 준다고 합디여? 폿죽 쒀갖고 나 혼자 다 먹을라니까 걱정하지 마쇼!"

엄마도 소심하지만(물론 엄마 말씀대로 절대 그렇게 하실 리는 없지만) 반격을 하셨고 말이다.


새삼, 나는 깨달았다.

노부부를 티격태격하게 하는 건 사소한 단어 하나, 기껏해야 한 글자밖에 안 되는 그 하나가 이렇게나 막대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잘못하면 배우자의 한 끼 정도쯤은 가볍게 패스해 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맞춤법 검사를 하다 보니 '폿'을 '포세이돈', '포수'등으로 자꾸 바꾸라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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