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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12. 2024

정작 우리집 큰손은 아빠였어

이제 사돈 남 말 금지

2024. 10. 11.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 혼자 계시는데 무슨 찌개를 이렇게 많이 끓이셨수?"

"건더기가 많은 것 같아서 물 좀 넣고, 물이 많은 것 같아서 또 건더기 넣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이렇게 대답하시며 아빠는 멋쩍어하셨다.(고 나는 진심으로 느꼈다. 멋쩍어야 할 상황이기도 했다)

엄마가 며칠간 집을 비운 사이 아빠 혼자 끼니나 드시고 계시나 싶어 점검차(?) 친정에 들렀던 어느 날이었다.


"반찬 안 만들어 놔도 돼. 이거 다 먹고 가. 나는 내가 알아서 해 먹으면 돼."

엄마가 떠나시기 전에 잔뜩 만들어 놓은(정말 엄마는 그날 양으로만 승부를 보셨다) 반찬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신 아빠는 '아내표 반찬'을 죄다 해치워 버리고 싶어 하시는 눈치였다.

"반찬은 그때그때 조금씩만 만들어 먹어야 맛있는 것이제. 며칠 놔두면 맛도 없어!"

라고 덧붙이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그냥, 아쉬운 대로(정말 아빠가 엄마가 없어서 아쉬워하실지 안 하실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 드시기만 하던 분이니 갑자기 혼자 밥부터 반찬하고 설거지하는 일 전부를 다 하게 되면 그것도 평소에는 안 하시던 일이니 그나마 일거리 하나라도 줄여주고 싶어서(그렇게 믿는다) 엄마는 반찬이라도 만들어 주고 가시겠다고 며칠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셨던 거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게 아빠는 못마땅했고 말이다.

"엄마, 이제 아빠가 다 만들어 드실 건가 보네. 이번까지만 반찬 만들고 다음부터는 아빠보고 직접 반찬 만들어 드시라고 하셔."

살짝 도가 지나친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아빠가 워낙 완강하셨으므로 '아내 없는 설움(?)' 한 번 느껴 보시라고 (그래야 엄마가 비록 반찬을 잔뜩 만들어놓기는 하지만) 아쉬운 대로 엄마가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드시면서 엄마에게 고마움을 느낄 거라고 (나만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아이고, 어디 반찬 만들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시오? 날마다 해 주는 반찬 먹기만 하믄 모르제."

엄마는 아빠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는 눈치였다.

"걱정하지 마. 나도 다 해 먹을 줄 알어!"

아빠가 도대체 뭘 해 드실 줄 안다는 거지?

이제 겨우 밥통 사용법을 익히신 것 같던데 말이다.


그랬는데,

그랬던 아빠가,

내가 알던 아빠가 아니었다.

아빠가 그러실 줄 몰랐다.

찌개를 한강으로 만들어버리시다니.

"아빠, 엄마한테는 날마다 반찬 많이 만든다고 뭐라고 하시면서 아빠도 이렇게 많이 만드셨어? 이걸 누가 다 먹어? 아빠 혼자 언제 다 드시려고?"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지."

엄마는 안 그러셨을까?

하다 보니 양이 늘었을 거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을 거다.

하지만, 어쩌면,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리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럴 리도 없지만 아빠가 혼자 계시면서 맨밥만 드실까 봐(?) 같은 반찬이라도 없는 것보다야 살짝 지겹더라도 곁들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판단하셨는지도.

엄마와 아빠의 차이는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이다.


"아빠, 엄마가 반찬 해주시면 그냥 고맙다고 하고 드셔. 내가 날마다 와 보지도 못하는데 아빠 걱정돼서 엄마가 반찬도 많이 만드신 거지."

아빠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잠시 후 아빠는 내게 조심스레 제안하셨다.

"너도 좀 가져가서 먹을래? 좋은 것만 많이 들어가서 맛있게 됐다."

아빠는 이제 내게 대놓고 도움을 요청하셨다.

하지만 아빠의 첫 찌개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몇 날 며칠 지겹도록 아빠 혼자서만 그 어마어마한 양의 찌개를 드셔야 하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아무리 자식이라도 그런 도움은 줄 수 없었다.

 "아니, 난 안 먹을라네."


아빠의 첫 찌개 사건이 있은 후 그 일은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엄마가 다시 돌아오시는 날에 내가 모시고 친정에 갔다.

간 김에 부모님 점심이라도 차려 드리려고 냉장고를 연 순간 나는 익숙한 비주얼의 그것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아빠의 찌개, 한 두 번만 드시고 안 드셨는지 냄비에 있던 양하고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아빠, 이게 아직도 남았었어?"

"내가 엄마 줄라고 아껴 놨다! 내가 기가 막히게 맛있게 끓여 놨으니까 한 번 먹어 봐."

라며 엄마에게 그 커다란 반찬통을 들이미셨다.

과연 아껴 두신 건가, 안 드신 건가, 질리신 건가...

"아이고, 날마다 나보고 많이 만든다고 잔소리해 놓고 혼자 있음서 무슨 찌개를 이렇게 많이 끓였을꺼나, 인자는 나한테 잔소리 하지도 마쇼!"

라는 엄마의 핀잔을 아빠는 피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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