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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6. 2024

아버지는 미역국에 소고기를 넣지 말라고 하셨어

세상은 상극 천지

2024. 11. 15.

<사진 임자 = 글임자 >


"미역국에는 소고기 넣는 거 아니야."

특별히, 엄마가 미역국에 소고기씩이나 넣어서 끓였는데 아빠는 기껏 하신다는 말씀이 저거였다.

"또 잔소리 시작한다."

아빠가 그렇게 말하시든 저렇게 말하시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묵묵히 미역국을 드셨다.

"아빠, 또 어디서 뭘 보고 그러셔?"

이제 앞으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질 게 뻔해 보이자 나는 대뜸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필시, 또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으신 게야.


"너는 그 소리 못 들었냐? 미역이랑 소고기랑 상극이라잖아."

난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본 소리였다.

미역이랑 소고기가 언제 싸우기라도 했었나?

원수지간이라도 됐었나?

둘이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았었나?

대관절, 아빠는 왜 느닷없이 미역국에 빠진 소고기가 못마땅하신 거람?

"그런 소리는 아직 한 번도 못 들어봤는데?"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너무나 뜻밖이라 오히려 아빠의 말씀이 더 의심스러웠다.

만약 아빠가 보신 그 영상이 어떤 종교와 관련된 무엇이라면 그것은 필시 사이비 종교라고 단정 지어도 모자라지 않을 거라는 확신마저 있었다.

수 십 년 간 소고기 미역국을 아무 탈 없이 잘 드셔 놓고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란 말인가.

솔직히 친정 부모님이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건 아니다.

그건 나도 그렇다.

더군다나 소고기는 특히.

그러니까 소고기 미역국을 먹어 봤자 많아야 일 년에 서 너 번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아빠는 그 정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아이고, 느이 아빠 또 뭐 봤다, 봤어. 날마다 그런 것만 보고 와서 나한테 잔소리만 한단다."

"느이 엄마는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다. 내가 다 봤어. 미역국에는 소고기를 넣으면 안 좋다고 했다니까."

누가 그랬을까?

잠잠한 부부 생활에 난데없이 미역과 소고기는 서로 상극이라고 듣고도 믿기 힘든 말을 한 이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하긴 기원전 5,000년경부터 아빠는 그런 이슈에 살짝 민감하시긴 했었다.

이를테면 김밥에 오이와 당근과 단무지가 모두 들어가 있으면 한 말씀하시던 분이다.

오이랑 당근이 상극이라던가, 단무지랑 당근이 상극이라던가?

그 이후로 엄마나 나는 감히 김밥에 저 세 가지 재료를 넣은 날은 아빠의 애정 어린 훈화말씀을 피할 길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 옆에는 항상 굳이 저 세 가지 중 어떤 재료를 골라 빼시는 아빠가 계셨고 말이다.

"이때까지 몇십 년 동안 소고기 미역국 잘만 먹어놓고는 인자사 그런 소리 하요?"

"그때는 몰랐으니까 그랬지."

"소기기 미역국을 날마다 먹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 먹는 것이 안 좋으믄 얼마나 안 좋다고 그러요?"

"그래도 그게 아니라니까."

"나는 모르겄소, 그냥 소고기 미역국 먹을라요."

"어허, 상극이라니까. 궁합이 안 맞다고 했어."

"상극이고 뭐고 이때까지 먹어도 아무 이상 없습디다."

"나는 안 먹어."

아빠는 미역국을 멀이 밀어내셨다.

이쯤 되면 아빠가 너무 유치하게 나오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빠는 당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도 이제 소고기가 들어간 미역국은 아니 드시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셨다.(고 나는 느꼈다.) 이에 반해 엄마는 그냥 선량한 미풍양속에 따라서(?)아빠 보란 듯이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 나도 자동적으로 엄마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이미 끓여 버린 것이니 어쩌랴. 먹어서 없애는 수밖에. 그렇다고 멀쩡한 음식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요즘 들어 아빠는 '상극'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내가 친정에 가서 별생각 없이 어떤 음식을 먹을라 치면 어김없이 출동하신다.

"그거랑 이거랑은 상극이다. 같이 먹으믄 못써."

라고 제법 진지하게 나를 제지하시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심을 담아 간곡하게 말씀드린다.

"아빠, 집에서는 이렇게 하셔도 나중에 아들 며느리집 가시면 그런 소리 하지 마셔. 그냥 주는 대로 잡수셔야 돼요."

"내가 그런 소리를 뭐 하러 하냐."

하긴, 아빠는 그런 분이 아니시지.

그러니까 엄마 말씀이 딱 맞네.

아들, 며느리한테는 못하고(해서도 아니 될 일이고),

엄마만 성가시게 하신다는 거, 정말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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