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님아, 남편에게 바람을 넣지 마오.

너무 '야망이 큰'사무관님 옆에 '꿈이 소박한' (우유부단한)직원

by 글임자
22. 11. 19. 앞만 보고 달리는, 어떤 사람들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 도교육청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

"갑자기 왜?"

"아니 사무관님이 전부터 여러 번 말씀하셨잖아."

"절대 도에는 안 들어갈 것처럼 그러더니 왜 마음이 변하셨어?"

"어차피 다음에 인사이동 있을 거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지역교육청으로 갈 확률이 높거든. 거기 가서 고생하나 도에 들어가서 고생하나 별 차이 없을 것 같아서."

"저번에 내가 그 말할 때는 신경질 내고 뭐라 하더니 느닷없이 왜 그래?"


며칠 전 대낮에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집에 와서 차분히 해도 될 얘기 같았는데(아니, 집에서 차분히 해야 만 할 내용의 것이었다.) 그는 당장 급해서 내게 전화해 바로 결정을 해야 한다며 내 의중을 물었다.

아니, 이미 결정은 난 것 같았고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

조급증이 도진 것인가.

나는 헛웃음만 나왔다.


며칠 전, 지나가는 말로

"이젠 내가 집에 있으니까 도에 한 번 들어가서 일해 보는 게 어때? 전부터 미련이 좀 있었잖아?"

라고 흘리듯 말했을 때

"자기는 일까지 그만둬 놓고 나는 거기 가서 혼자 고생하라는 거야 뭐야?"

하면서 진심으로 내게 화를 내며 얼굴을 잔뜩 구겼기 때문이다.

그전부터 절대 도에 가서 일하지는 않겠다(맞벌이였을 때가 최고조였다.)는 그의 맹세 비슷한 다짐을 들어왔던지라 정말 별 뜻도 없이 입만 아프게 '괜히 해본 소리'였을 뿐이다.

그 후폭풍이 그리도 거셀 줄은 미처 몰랐다.

얼마나 길길이 날뛰던지(정말 이렇게 딱 알맞은 표현을 내가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내가 무안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이들도 어리고 나도 같이 맞벌이를 할 때 그런 얘기를 종종 했었다.

"요즘 7급들이 도에 안 가려고 해서 자리가 좀 있나 봐. 젊은 사람들이 다들 기피한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일이 많고 힘드니까 그렇겠지. 왜 가고 싶어?"

"아니! 여기도 일 많고 힘들어. 뭐하러 가?"

"근데 왜 그런 말을 자꾸 해? 또 누가 바람 넣었어?"

참고로 나는 남편의 귀가 얇다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사무관님이 도에서 오셨잖아. 나보고 자꾸 도로 가라고. 한 번쯤은 가서 해 볼만 하다고. 언제까지 학교에서만 일할 거냐고. 꿈을 크게 가지라고 자꾸 그러시잖아."

"원한다면 가는 거지만 억지로 갈 필요 있어? 그리고 애들은 어떡하고? 나도 언젠가 군으로 발령 날지 모르는데 둘 다 바쁘면 애들은 어떡해? 나 아는 직원은 남편이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온대. 주말도 없고. 혼자 일하랴 애 키우랴 죽어나더라."

"아무래도 조직이 크면 일이 더 많고 그렇긴 해. 눈치 봐야 될 윗사람들도 많고."

"가고 싶다면 안 말리겠지만 애들 생각도 해줘야지."

"그러게. 애들이 제일 걸리네."

"현실적으로 둘 다 직장 생활하면서 애 둘 기르는 거 쉽지 않아. 자긴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진짜 힘들어. 맞벌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밤늦게까지 학원으로만 전전하게 할 수도 없잖아? 뭐가 중요한지 알아야지. 물론 직장생활도 중요하지만 가정이 있는 사람은 애들도 나 몰라라 해서도 안 되는 거잖아. 둘 다 하는 거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어."

"그건 그런데..."


"내 동기 형도 거기서 고생 많이 하고 저번에 육아 휴직했다가 복직했잖아. 진짜 힘들긴 한가 보더라."

"그렇겠지.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어? 남들은 공무원 놀면서 일하는 줄 알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잖아? 더 복잡해지고 일도 많아지고, 사람들 눈은 높아지고, 요구사항은 끝이 없고."

"맞아. 옛날 같지 않아. 좀만 수 틀리면 바로 민원 넣네 어쩌네 그러고. 만만한 게 공무원이지 뭐."

"누가 아니래. 아무튼 신중하게 생각해."


전에 같은 지역교육지원청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을 어쩌다가 만나면 남편은 후일담을 고스란히 내게 전해 주곤 했다.

"정말 많이 힘든가 보더라. 다들 얼굴이 말이 아니야."

몸서리를 치며 도에 가서 일해 볼까 기웃기웃하던 마음을 접고 단념했다.

그러던 그가 며칠 전에는 도에 못 들어가 안달 난 사람처럼, 기필코 들어가고 말겠다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저렇게 사람이 돌변할 수도 있다는 말인가?

죽어서도 내생에서도 결코 잊지 못할, 나의 임신 기간 동안 서러움에 겨웠던 그 시절 못지않게 며칠 전 그의 불그락 푸르락하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한데 말이다.


"한 번 가서 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전입시험 한 번 봐 보려고."

라고 심상하게 말했지만 결의가 대단해 보였다.

단기간으로 노량진 고시원에 모셔다 줘야 하나?

"지금 아니면 다음엔 가고 싶어도 안 받아줘. 이번에 도전이나 해 보자."

이유는 단순했다.

"그래. 나쁠 거야 없지. 그리고 이젠 내가 집에 있으니까 애들 걱정은 말고 하고 싶으면 한 번 도전해 봐."


행여라도, 빈말이라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일만 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라는 저따위 정신 나간 소리, 허튼소리, 뒷감당도 못할 소리는 하지 않았다 물론.

올 초 의원면직하면서 저런 돼먹지 못한 소리를 내가 함부로 지껄이는 바람에 10개월 간 내가 얼마나 간헐적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누가 알기나 할까.


남편과 사귀는 동안 가장 놀라웠던 점이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다.

나는 '우유부단하다'라고 했고, 그는 '신중하다'라고 했다.

지금은 내일 당장 도로 출근할 것처럼 행동하지만 또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전입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진짜 이번에 한 번 해 볼까? 어차피 넣는다고 해서 다 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가서 일해보는 게 나한테도 좋은 경험이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도 될 테니까. 지역교육청은 가봤으니까 도에 가보는 것도 좋겠지 경험 삼아?"

"그거 좋지. 공무원으로서 한 번쯤은 큰 조직 가서 일해보는 것도 괜찮긴 하겠다."

"지금 아니면 다음엔 가고 싶어고 못가 어차피. 7급에서 갈 수 있는 기간이 다 돼 가거든. 자기 생각은 어때?"

"그럼 한 번 해 봐. 내 생각이 뭐 그렇게 중요해? 본인이 해 보고 싶으면 하는 거지. 내가 하란다고 하고 하지 말란다고 안 할 건 아니잖아."

"아니지. 그래도 자기 의견도 들어봐야지."

"내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할 거야? 하라고 해서 나중에 후회되면 나 원망하려고?(몇 차례의 전과가 있었다.) 본인 일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지. 어차피 결정은 당사자가 하는 거지. 하고 싶으면 못할 거야 없지. 전에는 나도 같이 일하니까 애들 때문에 좀 그랬지만 이젠 내가 있으니까 그건 걱정도 없고. 그럼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남편 뒷바라지라는 걸 해보는 거야?"

"될지 안될지도 몰라 아직. 근데 사무관님 자꾸 얘기하시고 그러니까."

남편과 사무관님의 사이, 그 애증의 관계라니.


아이들이 부모 말은 안 들어도 선생님 말은 충성적으로 잘 듣듯, 그는 내 말에는 콧방귀도 안 뀌지만 윗분의 말씀이라면 어찌나 새겨들으시는지, 화가 나다 못해 질투(를 느낄 성질의 것도 아닌데)까지 날 정도다.

"어차피 가려고 하는 사람도 없어서 경쟁률도 낮은 거 아니었어?"

"서로 안 가려고 해서 다들 걱정이래."

"누군가는 가서 일해야 할 텐데 말이야. 도교육청에서도 심란하겠다."

"진짜 심각해."


"알아서 결정할 일이긴 하지만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할 거야. 가면 워라밸 같은 건 물 건너가는 거지 뭐. 지금도 진작에 글렀고. 대신 워라벨(War-Label)은 보장될 거다."


닥치지도 않은 일이건만 뭔가 눈에 선하다.

'남편의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층층시하 윗분들,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직장생활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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