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길에서 돌아온 병아리
< 사진 임자 = 글임자 >
"하마터면 이참에 병아리 초상 치를 뻔했다."
친정에 갈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서 따끈따끈한 소식을 많이 듣는다.
대개는 부모님 신상의 변화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번에는 병아리 신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동안은 대개 좋은 소식이었는데 이번에는 큰일 날 뻔 한 소식이었다.
가장 최근에 기계로 부화한 병아리 3기들은 마당에서 바깥생활 적응 훈련 중이다.
이제 부화한 지 한 달도 넘었으니 더 추워지기 전에 밖에 내놓고 키우다가 다 큰 닭들이 있는 곳으로 넣어 줘야 했다. 올해는 늦더위가 10월까지 심했으므로 그동안은 선뜻 마당에 내놓지도 못했었다. 10월이 다 뭔가, 최근까지도 한낮에는 반팔을 입어도 될 만큼 뜨거운 볕이 내리쬐는 날도 있었으니 그 작고 연약한 병아리들이 땡볕에서 견디기는 힘들 것이었다.
햇볕만 무서운 게 아니라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뉘 집 고양이인지도 모르는 얄미운 것들과 하늘을 나는 매를 비롯한 날짐승도 경계해야 했다. 전부터 우리 병아리들에게 눈독을 들이는(눈독을 들이고 있는 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도 때도 없이 친정집 마당을 들락날락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고양이 몇 마리 들을 자주 만났다.
그래서 아빠는 아주 튼튼한 것으로 병아리들이 머물 곳을 장만하셨고 그 귀여운 것들은 그 안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중이었다. 불량한 고양이가 지나다니면서 얼마나 놀라게 했는지 내가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병아리들이 안절부절못하며 푸드덕거리고 날아오르려고까지 했다. 말이라도 통하면 나는 병아리들에게 이렇게라도 말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얘들아, 난 고양이가 아니라 인간이고 이 집 딸이야. 난 고양이들과 달라. 난 너희를 해치지 않아."
라고 말이다.
인간 된 도리로 그들을 보호해 줬으면 보호해 줬지 병아리 털끝 하나라도 건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나는.
한 번씩 친정에 전화를 할 때 병아리들의 안부를 묻는 것은 어느새 필수 사항이 되었다.
"엄마. 병아리는 잘 크고 있어?"
그러면 보통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잘 크제. 요새 날이 따숩고 해서 잘 먹고 잘 큰다. 좀만 더 크믄 인자 옮겨야 쓰것다."
내 자식도 아니고 내 병아리도 아니지만 잘 먹고 잘 크고 있다니 그것만큼 흐뭇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지난번에 친정에 갔을 때 뜻밖의 말을 들었다.
"인자 밖에서 키운다고 내놨는디 밤에 비가 좀 왔더라. 다른 것들은 멀쩡한디 쬐간한 거 하나가 안 움직이더라. 그것이 첨부터 시원찮더만 손 대도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어. 그래서 아이고 하나 초상났다 이러고 있었는디 느이 아빠가 그것을 방으로 갖고 와서 살렸다."
아무리 동물이라도 생명은 다 귀한 것인데 그대로 생을 달리할 뻔했다는 얘기에 내가 다 깜짝 놀랐다.
"비 온다고 했으면 병아리를 안에 들여놨어야지. 우리도 밤에 춥던데 병아리는 얼마나 춥겠어?"
"내가 비가 올 줄 알았냐. 인자는 잠도 밖에서 자고 적응을 해야제. 그란께 그랬제."
딴에는 맞는 말씀이었다.
어차피 병아리들이 평생 저 좁은 공간 속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언젠가는 더 넓은 바깥으로 나가 살아야 했다.
"하긴 그렇긴 하네. 근데 어떻게 살렸어?"
이미 다 지난 일 들춰봐야 아무 소용없으니 어떻게 용케도 병아리가 죽었다 살아났는지 얘기나 들어보고 싶었다.
"그것이 몸이 얼었는가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도 못하고 있더라. 그래서 아빠가 그것을 갖고 와서 드라이기로 계속 몸을 말려줬제. 방 따뜻한 데다 놔두고 수건으로 살살 닦아줬제. 그러니까 그것이 다시 살아나더라."
"신기하네. 그렇게 한다고 살아나?"
"그러제. 그것이 처음에 부화했을 때도 쬐깐해갖고 시원찮더만 지금은 언제 그랬냐 하고 멀쩡히 잘 돌아다닌다."
여러 마리의 병아리 중 유난히 몸집이 작은 병아리가 한 마리 있었다.
아마 그 병아리가 그 참변을 당할 뻔했던 그것인가 보았다.
나는 친정에 갈 때마다 마당에 있는 병아리의 숫자를 센다.
무조건 8 마리여야만 한다.
열 마리도 안 되는 그 숫자를 세는 것도 어쩔 때는 하도 고놈들이 활개치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마당에 헷갈려서 일곱이 됐다가 여덟이 되기도 한다.
항상 같은 숫자인 걸 확인하고야 안심을 한다.
그동안 다들 무사했구나.
얘들아, 다음에 내가 또 갈 때까지 무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