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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씩이나?
의뭉스러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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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임자
Dec 22. 2024
2024. 12. 16. 인어공주 종이접기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가 다시 운동화 주문했어."
갑자기 그 양반이 일방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다.
새 운동화를 산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니까 순식간에 나는 새 운동화가 두 켤레나 생긴 것이다.
"자꾸 신어야 길이 들어서 편해지지. 신어서 길들여 봐."
"그렇긴 한데..."
"안 되겠다. 내가 하나 더 주문해야겠다."
"아니야. 됐어!"
"가만있어 봐."
"이미 새 운동화 샀는데 뭐 하러 또 산다고 그래?"
"당신이 그 운동화 진짜 좋아했잖아."
언제부터 그 양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 사 주셨던고?
새 운동화 산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일을 벌이려고 그러시는고?
설마설마했던 일이 결국에 일어나고야 말았다.
"결제했어. 근데 녹색은 없어서 그냥 흰색으로 했어."
끝내 해내셨구나.
"새로 운동화 산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사?"
"번갈아 신으면 되지."
"그럴 거면 처음부터 그 운동화를 찾아서 샀으면 될 거 아니야?"
"그냥 두 켤레 두고 신어."
솔직히 내가 전에 신던 운동화를 정말 좋아하고 잘 신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럴 거였으면, 결국 기존에 신던 운동화와 같은 것을 찾아낼 거였으면, 처음부터 그냥 그 운동화 하나만 샀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젠 운동화고 옷이고 자꾸 늘어나는 것이 하나도 반갑지 않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자꾸 물건을 들이는 일이 지겨워진 탓도 있다.
전에는 철없이 자꾸 사들이고 쌓아두는 재미로 살기도 했는데 이제는 철이 좀 들었는지 그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그런데 자꾸 그 양반이 찬물을 끼얹는 느낌이다.
"당신 것도 샀으니까 나도 그걸로 하나 더 살까?"
결국 속셈은 그것이었나?
그러나, 최근 내 운동화를 사면서 그 양반도 새로 본인의 것을 하나 장만한 사실이 있다.
그러니까 내 것을 두 켤레 산 셈이 되었으니 자신도 한 켤레 더 사겠다는 의미인가 보다.
애초에 그 양반 앞에서 입을 뻥끗하는 게 아니었다.
"근데 어떻게 찾았어? 저번엔 없다고 하더니."
"내가 또 다 알아봤지."
사뭇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냥 이번에 산 거 신고 다니면 되는데."
"놔두고 신으면 되지. 당신 생일 선물이야."
아, 그러니까 처음엔 그냥 내 운동화가 낡아서
선물로
새로 사 준 거고 나중 것은 내 생일 선물이라는 거구나.
일단 샀으니까 받긴 받아야겠지?
"당신 신발 안 왔어?"
출장까지 가신 분이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운동화의 도착 여부를 확인하셨다.
"지금 도서관인데 이따가 집에 가 볼게."
내 신발인데 본인이 더 간절히 기다리는 느낌이다.
과연 집에 도착하니 그것은 문 앞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왔네. 딱 맞아. 고마워. 앞으로 100년은 신어야지."
당장 신어보고 사진을 찍어 그 양반에게 전송했다.
어찌 보면 이중 쇼핑을 한 셈이 되고 말았지만 나중에 산 운동화는 정말 내가 좋아했고 잘 신었던 거라, 게다가 생일 선물로 받으니 기분이 좋긴 좋았다.
이 양반이 웬일이람? 생일 선물을 다 사 주시고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런데 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신발이다.
선물로 내게 준 것이 하필이면 두 켤레다.
그것도 운동화씩이나 된다. 정확히는 러닝화라고 했던가 워킹화라고 했던가?
어쨌거나 신발이다.
의뭉스러운 양반 같으니라고!
예로부터 신발을 선물하면 상대방이 달아난다고(물론 미신에 불과할지 모를 일이지마는) 신발은 잘 선물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왜 하필 그 양반은 나에게 신발을 사 준 것인가?
그것도 운동화로.
그것도 생일 선물로.
걷듯 뛰든 어떻게든 그것을 신고 나보고 도망가라는 뜻인가?
내가 도망갔으면 좋겠다는 뜻인가?
십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서 다시 컴백홈 할까 봐 번갈아 신으면서 도망치라고?
이쯤에서 나를 보내주려는 건가.
아니면 보내버리려는 건가.
그 신발을 신으면 달나라까지도 뛰어갈 수 있을 것 같다.
최대한 그 양반에게서 멀어지도록.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마음만 먹으면(?) 맨발로라도 이 집을 뛰쳐나갈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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