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건 팔아 치워야 해

by 글임자
2024. 12. 2.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다음 주에 바자회 있어. 기억하고 있어!"

학교는 아드님이 다니시는데, 당사자는 아드님이신데 나보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우리 아들, 그건 우리 아들이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무조건 아드님께 떠넘기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다만, 공과 사(?)는 구분을 확실히 하자 이거다.

내가 언제까지 너의 모든 것을 기억해줘야 하는 거라니.

내가 언제까지 너의 모든 것을 기억해 줄 수는 없는 거란다.


"누나도 그날 바자회 한다고 하던데 여태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그러네."

매년 바자회가 이맘때쯤 열렸기 때문에 올해도 나는 은근히 그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물론 나와는 직접적으로는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절호의 기회다.

없애 버릴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특히 딸에게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중학교에서도 바자회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남매 몰래 작성해 온 나만의 '블랙리스트'가 있긴 있었다.

"너희 이번에는 뭐 가져갈 거야? 제발 안 쓰는 것 좀 이 기회에 정리하자. 응?"

나의 말투는 거의 애원조에 가까웠다.

사놓고 거들떠보지도 않다시피 하는 인형, 집에 이미 있는데도 또 새로 들였던, 도대체 내가 보기에는 아무 재미도 없는 것 같은 팝잇들, 작은 가방, 나무로 만든 옷걸이, 장난감, 스티커 등등. 설마 아이들이 문방구를 차리려는 건 아니겠지?

있는 인형도 다 치워버리고 싶은데 자꾸만 인형을 사 들이고 있다.

인형은 먼지도 잘 앉고 관리를 잘 못하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기 때문에 그건 하나도 반가운 물건이 아니다, 내게는. 하지만 아직 초등학생인 우리 집 어린이들은 나와는 생각이 많이 다르시다.

"엄마, 귀엽지?"

이러면서 크고 작은 인형들을 벌써 몇 년째 사 오시는지 모른다.

인형하고 무슨 원수가 진 것은 아니지만 관리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어쩌면 나의 취향과는 상관없다는 이유로(내가 사용할 것도 아니니 내 취향이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만서도 말이다.) 인형을 역병 보듯 해 왔었다.

세탁을 해 주겠다는 핑계로 아이들 눈에 안 보이는 곳에 격리시켜 놓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에게 발각되고 말았고 격렬한 원성의 말을 들어야만 했다.

"엄마, 왜 인형을 숨겨 놓는 거야?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건데."

하지만 말은 똑바로 해야 한다.

좋아한다면서 눈에 안 보인 지 몇 달이 지나도 찾지도 않았단 말이다.

"너희가 관리를 좀 잘했으면 좋겠어. 세탁도 자주 하고 먼지도 털어주고 그래야지. 인형에 은근히 먼지가 많아. 놀고 나면 자주 털어주기도 해야 하는 거야. 너희 기침 자주 하잖아. 이왕이면 잘 관리하고 놀면 좋잖아."

나도 나름 핑곗거리는 있었다.

먼지 한 번 터는 것을 못 봤다.

좋아하고 잘 가지고 노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물건을 들였으면 책임감 있게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는 집에서 너희가 안 쓰는 물건 제발 정리 좀 하자. 인형 어때? 안 가지고 노는 인형 바자회에 가져가도 될 것 같은데?"

"인형을 왜 팔아?"

남매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내게 발끈했다.

"너희 가지고 놀지도 않는 것 같던데."

"우리가 왜 안 가지고 놀아? 엄마가 안 주니까 그렇지."

"엄마가 왜 안 줬겠어? 놀다가 아무 데나 던져 놓고 정리도 안 하고 먼지 뒤집어쓰고 방치돼 있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랬지. 엄마가 미리 말했었잖아, 관리 안 되면 치울 거라고."

"우리한테 줬으면 우리가 관리했지. 엄마가 안 주는데 어떡해?"

"너희가 감당 못하니까 그랬지."

"우리한테 주면 우리가 잘하지!"

"줬는데도 잘 안 돼서 그런 거잖아. 한두 개도 아니여 여기저기 널려 있어도 치우지도 않았잖아."

"있어야 치우지."

"너희가 제대로 관리 못하니까 그렇지."

난데없이 남매와 나는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 돌고 돌았다.

강강술래도 아니고 어린이들과 뫼비우스의 띠라니!

결론이 안 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몰래 인형을 싹 쓸어 담아 처분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 정도로 매정한 엄마는 아니었으므로.(물론 남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박하지 모르겠으나 굳이 들어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엄마, 내가 바자회 때 특별히 엄마를 위해서 하나 사 올게."

"아니야, 우리 아들. 엄마는 괜찮아."

"엄마는 식물을 좋아하지? 내 친구가 씨앗 가져온다고 했어. 그거 사 올까?"

"아니야, 지금 집에도 많잖아."

"그래도 엄마 것은 하나 사줘야지."

"괜찮다니까. 필요하면 엄마가 살게."

"그래도! 아무튼 기다려."

아침마다 호기롭게 아드님은 등교하셨다.


줄여야 하는 마당에 자꾸만 늘어난다.

부피는 더욱 커져만 간다.

그나저나 인형, 저 물건들은 한 10년 정도 잘 숨겨 두면, 그때는 내놔도 거들떠보지도 않으려나?

지금 이 순간 행여라도 남매가 인형 비슷한 거라도 사 오실까 봐 몹시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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