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딸을 원했다, 아들이 아니라

평양 감사 한 번만 부탁해요

by 글임자
2025. 8. 24.

<사진 임자 = 글임자>


"머리 좀 어떻게 해 봐. 앞머리가 눈을 다 가리잖아. 그러다 눈 찌르겠어."

"엄마, 나도 엄마처럼 머리카락 기부할 거라니까!"


정말 눈을 찌르기도 했다.

그러나 아드님은 단호했다.

그런 기부는, 아직, 안 했으면 좋겠다.

아니, 하더라도 일단 당장은 그 거추장스럽고 (물론 내 눈에만) 거슬리는 그 앞머리에 핀이라도 살포시

꽂아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좀 묶어 두든지 말이다.

일단 조치를 취하고 다시 토킹 어바웃 해보자꾸나.


내가 원한 멤버는 딸이었다.

새까맣고 윤기 흐르는 저 싱싱한 머리칼 좀 보라지.

어디 한 가닥 손상된 데 없고(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태어나서 10년 이상 살면서 염색 한 번 해 본 적 없고(그러나 순전히 내 손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이롱 빠마 한 번은 해봤고) 열기구를 이용해서 꾸불꾸불 꼬아 본 적도 없는 저 비단 같은 머릿결.

난 딸의 머리카락을 볼 때마다 탐이 났었다.

"합격아, 엄마가 앞으로 1년 정도 더 길어서 '어머나 운동본부'에 머리카락 기부할 생각인데 혹시 너도 해 볼 생각 없어?"

작년에 '입이 트이는 영어'사연을 들은 바로 그날 나는 결심을 했고, 하교한 딸에게도 적극 권장하기에 이르렀다. 권장이라고는 하지만 일단 밀어붙이는 식이었다, 물론.

"글쎄..."

딸은 시큰둥했다.

"소아암 환자들한테 기부하는 거야. 너도 엄마랑 머리 길이가 비슷하니까 한 1년 정도 같이 길어서 기부하면 좋을 것 같은데. 물론 강요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어차피 잘라서 버릴 건데 좀 길렀다가 기부하면 좋을 것 같은데, 엄마 생각에는.(그러나 이게 대놓고 강요하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난 별론데..."

"뭐 넌 따로 할 건 없어. 그냥 머리카락이 기는 대로 놔 두기만 하면 돼. 지금도 많이 긴 편이니까 1년 정도만 있다가 자르는 건 어때?"

"꼭 해야 돼?"

"아니 꼭 해야 되는 건 아니지. 근데 좋은 일에 쓰이는 거잖아. 그리고 머리를 다 밀어 버리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시간 지나면 길 머리 가만히 뒀다가 기부하자 이거지 뭐. 싫으면 안 해도 돼.(이렇게까지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며 나는 애원했었다.)"

나름 지극정성으로 딸을 설득하려고 살살 어르고 달래서 엄마랑 같이 좋은 일 한 번 하자고,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내가 생각해도 정말 끈질기게 딸에게 매달렸다. 아니 집착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맞을 것이다.

그러나 딸에게서 돌아온 건 청천벽력 같은 말 뿐이었다.

"엄마, 그냥 '엄마나' 해."

'엄마나' 하시란다.

아니, 그러지 말고 우리 좀 타협점을 찾아보자.

"근데 어차피 길면 나중에 잘라서 버릴 거잖아. 그냥 버리느니 기부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러지 엄마는."

"어차피 내가 꼭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

"그래. 그렇긴 하지. 근데 생각해 봐. 너한테 안 좋을 것도 없잖아?"

"그래도 난 별로야."

"그래. 알았다."

딸은 평양 감사가 하기 싫으시단다.

딱 1년만 평양 감사 해 주시라는데 너무 단호하시다.

자고로 포기할 때를 알았다면 과감히 포기해야 맞다.

그러나,

나는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어느 정도 머리가 많이 긴 상태였다.

그러니까 딱 1년 정도만 길어 보자 이건데.

저렇게 좋은 머릿결을 가지고 있으면서 기부 좀 하면 안 될까?

그냥 버리긴 너무 아깝잖아.

혼자만 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 엄마도 한다잖아.

같이 하자, 같이. 응?

제발, 이 엄마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좀 해 주면 안 될까?

"그럼 일단 알았어. 어차피 지금 당장 기부하자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을 계속 길어보고 나중에 또다시 생각해 보자."

쉽게 물러설 수 없었던 나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잠시 그 일은 보류하기로 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 딸의 마음이 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게도 딸이 일편단심의 마음을 고수할 수도 있다는 비극적인 결말 같은 건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모녀의 대화를 한참 듣고 있던 아드님이 느닷없이 나섰다.

"엄마, 내가 할까? 내가 할게. 그거 정말 좋은 일이다. 내가 해 봐야지!"

아니, 넌 그냥 빠져줬으면 좋겠다, 아들아.

삽살개 털처럼 긴 머리로 눈을 다 가린 채 아들이 나를 보며 말했다.

잘라 버리고 싶다, 저 머리.

자식은 정말 마음대로 안 된다더니, 정말 옛말 그른 거 하나 없네.

자식 머리카락 기부하는 것도 정말 내 마음대로 안 된다.

그냥, 아들 딸 구분 말고 하나만 집중공략하는 게 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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