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의 헤어스타일

그 머리 얼마주고 했어?

by 글임자
22. 11. 27. 누가 내 머리를 이렇게 했어?

< 사진 임자 = 글임자 >


"너 머리가 평소랑 좀 다르다. 무슨 일이야?"

"어? 엄마, 나 꿈에서 미용실에 갔다 왔나 봐."

"머리가 왜 그래?"

"응. 나 사실은 밤에 엄마 몰래 미용실 갔다 왔거든."

"어린이가 돈이 어디 있어서?"

"엄마 돈을 가지고 갔지."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그리고 엄마 돈도 없을 텐데?"

"엄마가 자니까 말 안 했지."

"그나저나 얼마 주고 했어?"

"오천 원."

"그래? 싸게 했네."

"응."

"근데 헤어 스타일이 맘에는 들어?"

"아니. 별로야."

"그럼 다음에는 거기 말고 다른 미용실 가서 해라. 못쓰겠다."

"알았어."


일요일 아침 모자는 멀쩡히 새로 밥을 잘 지어먹고 모닝 만담 시간을 가졌다.

딸이 거실 소파에 앉아 우리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3주에 한 번씩 아들과 남편의 이발을 집에서 내가 직접 해 준다.

3년 되어 간다.

물론 자격증이 있다거나 미용실 같은 곳에서 실습을 해 본 역사라고는 전혀 없다.

하다못해 미용실 바닥의 머리카락 쓸어내는 일조차도 한 번 해 본 과거도 없다.

그렇다.

무면허, 무허가 업소다.

2019년 이미용을 3개월 배운 게 전부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무난한 성격의 남편이기에, 아직은 질풍노도가 본격적으로 닥치지 않은 어린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름엔 내일 당장 출가를 하거나 군 입대를 해도 좋을 만큼 훈련병의 헤어스타일로 일관했으나 어느 절에서 동자승으로 받아줄 리 만무하기도 하거니와 (간절히, 지금이라도 군대에 갔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미성년이라 입영날은 멀기만 하고 최근엔 날씨마저 쌀쌀해져 윗머리와 옆머리를 조금씩 기르고 있는 중이다.


머리카락이 점점 길어지니 짧을 때는 생기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요즘엔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곤두서기 일쑤다.

전날 샤워를 하고 머리도 다 감고 자기 때문에 아침엔 굳이 다시 한번 머리를 감고 학교에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집에서 흙먼지 뒤집어쓰고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이다.


하교 후에 집에 와서 샤워를 다 했어도 잠깐이라도 바깥활동을 하고 오면 머리 감는 일만큼은 꼭 다시 하고 자는데 일단 씻고 난 후 다음날까지 집안에서만 생활하면 학교 갈 때 또 감을 필요가 있으랴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들에게 심경의 변화가 생긴 듯했다.

아니,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고 해야 하나?


"엄마, 내 머리가 왜 이래? 누가 이렇게 했어?"

"엄마는 안 했다."

"근데 머리가 왜 이래?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라 자다가 여기저기 굴러서 그렇게 된 거겠지. 일부러 그렇게 세우려고 해도 못하겠다."

한쪽은 완전히 납작하게 눌리고 반대쪽은 머리카락들이 집단 봉기라도 일으킨 것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한껏 치솟아 있었다.

자유분방한 잠버릇의 결과물이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엄마, 머리가 계속 서 있어."

"괜찮아. (그럴리는 없지만)밖에 나가면 다시 가라앉아."

"정말?"

"그럼. (그럴 리는 없지만) 학교 가서 공부하고 있다 보면 다 가라앉아 있을 거야."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데?"

"걱정마. (그럴 리는 없지만) 빨리 걷다보면 다 내려와 있을 거야."

밤새 요란한 헤어스타일을 완성하느라 8시가 다 되어 일어나가지고 얼른 학교 갈 준비를 해도 모자랄 시간에 9살 남자 어린이는 밤사이 제게 일어난 제3세계 음악 같은 난해한 헤어스타일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몇 번을 욕실에 들락날락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대충 물만 묻히지 말고 아예 머리를 감아버려. 그렇게 임시방편으로만 대충 때우려고 하다가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단다. 좀 번거로워도 길게 보고 한 번쯤 과감히 수고를 하는 것도 괜찮아. 그렇게 왔다 갔다 하는 시간에 머리를 열 번도 더 감았겠다."

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물론.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럼 엄마가 머리핀 하나 줄까? 이걸 하고 가면 머리가 좀 가라앉을 거야."

그러나 아들은 별 해괴망측한 소리를 다 듣겠다는 듯이 발끈했다, 고 느꼈다.

"싫어. 내가 핀을 왜 해? 그거 누나거잖아!"

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누나 거면 어떻고 엄마 거면 어때? 이게 누구 것인지가 중요해? 지금 네 머리를 가라앉히는 게 중요하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상 너무 원칙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필요하면 다양한 방법을 써보는 것도 좋지. 그 수단이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볼만도 하단다 얘야. 너무 '이건 이거다'라고 고정관념을 가지고 세상을 살면 힘들 때도 있는 법이야.(=계속 그런식으로만 살다가는 재미 없을 줄 알아라.) 그렇게 살면 피곤할 수도 있어."

라고도 말하지 못했다 역시.

경험상 저런 대화는 딸 하고나 가능한 것이었다.

아들은 아니었다.



그날 아침 아들은 모자가 달린 잠바를 걸치고 옷에 달린 모자를 쓰고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최대한 아래로 당기며 중력의 힘을 빌려 아우성치는 뒷머리를 진정시켰다.

"엄마 어때? 이러면 머리카락이 내려오겠지?"

"정말 그렇겠다. 어쩜 그런 생각을 다 했어?"

"이 정도는 기본이지. 엄만 몰랐지?"

"진짜 엄마는 그럴 생각도 못했는데 대단하다."

"꼭 머리를 다시 감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요. 후훗."


누구 아들인지 정말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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