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1 개인 과외받는 엄마

실력 있는 분들로만 모셔 왔어요.

by 글임자
22. 12. 10.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는 것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무슨 사과가 그래? 너무 성의 없잖아."

"아, 그래? 미안해."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지 건성으로 대충 하면 안 된다고 했어. 오늘 국어 시간에 배웠어. 사과를 할 때 대충 건성으로 하면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다고 했어. 엄만 그것도 몰라?"

"엄마가 모르긴 왜 몰라? 지금 이 엄마를 가르치려 드는 게냐 설마? 너 그렇게 살다가는 재미없을 줄 알아라. 사과했으면 된 거지 뭘 자꾸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거야? 적당히 해라.'

라고 되받아 치지는 못했다 물론.

속으로는 그런 마음이었지만 한 번 작정하고 사과받기를 결심한 아들은 쉽사리 물러날 기미가 안보였다.


차라리 아들이 원하는 대로 내가 행동하는 게 나았다.

그래야 금방 끝난다.

길어져 봐야 나만 피곤하다.

"정말 미안하다 우리 아들. 진심으로 미안해."

"알았어. 내가 엄마 사과받아 줄게. 다음에는 잘해 봐."

"그래. 엄마가 건성으로 사과해서 우리 아들이 기분이 많이 상했을 텐데 그래도 엄마 사과받아줘서 고마워."

과연 초등학교 2년을 거저 다닌 것은 아니었구나 느꼈다.

더불어 초등 저학년의 학습 효과는 이렇게나 대단하구나 또 느꼈다.

"그래. 엄마, 나도 2학년 때 배웠어. 그렇게 하면 안 돼. 앞으로 진짜 진심으로 사과해야 돼. 알았지?"

2년 먼저 그 교과 과정을 거친 딸이 원 플러스 원으로 나를 나무라고 나섰다.

어린 자녀들 앞에서 마흔도 넘은 엄마는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이러면서도 내가 어른이라고 아이들 앞에서 어른 행세를 할 수 있는 걸까?

어른이면서도 어린아이만도 못하다는 인상을 주었던 어른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사건은 이틀 전 청소를 하면서 발생했다.

밀대 끝으로 내 뒤쪽에 있는 아들을 살짝(정말 맹세코 살짝이었다.) 친 모양이다.

물론 일부러 한 일은 아니고 하다 보니 그리된 것뿐이다.

그러나 이를 눈감아줄 리 없는 아홉 살이다.

우연한 행동의 결과로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이 초래한 후폭풍은 집념의 아들에게 불을 지폈다.

"엄마. 사과해! 왜 나 때려?"

"엄마가 언제?"

"방금 나 때렸잖아. 저걸로!"

"아. 미안하다 미안해!"

살짝 친 거랑 때린 거랑 엄연히 차이가 있다고, 네가 사용한 그 어휘 자체가 지금 그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때에 맞는 적절한 표현을 하는 법을 더 배워야겠다고 아들을 걸고넘어지지는 않았다 물론.


평소 과민 반응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아들의 태도가 종종 못마땅했던 나는 그날도 괜히 아들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떠는 줄로만 알았다.

내가 일부러 한 일이 아닌데도(일부러 행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죄인이 되어야만 하는 나는 아주 가끔 억울할 지경이다.) 막무가내로 사과부터 하라고 따지고 들기 일쑤라 또 잘못 걸렸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의성 여부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 따위 변명 같은 것은 들을 마음의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아홉 살은 과정이야 어찌 됐건 결과만 따진다.

이렇든 저렇든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위기 모면식의 사과가 통할 리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아들에게 일장연설을 들어야만 했다.

"엄마는 초등학교 때 그런 것도 안 배웠어? 사과를 할 거면 진심으로 제대로 해야지. 어른이 돼가지고 그것도 몰라?"

잘못을 하고 선생님 앞에서 훈계를 듣는 학생마냥 나는 지은 죄가 있으니 할 말이 없었고,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아들과 딸은 번갈아가며 나를 정말 '가르쳤다'.


왜 안 배웠겠느냐.

멀쩡히 초등학교 6년 잘 다녔었다.

분명히 수업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배웠으나 이론과 실기 사이의 괴리에, 그 닿을 수 없는 막연함에 적용을 하지 않고 살았을 뿐이다.

어디 초등학교 때뿐이랴.

어려서 말귀를 알아들으면서부터 항상 교육은 받았을 것이다.

이래서 자식 키우기가 쉽지 않은 것이로구나.

하루에도 수 십 번을 깨닫고 느끼고 반성하면서도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처럼 무기력해질 때도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말하고 실천하고 가끔 부모에게 훈계(?)도 한다.


"담배 피우면 죽어요! 담배에는 니코틴이랑 타르랑 몸에 안 좋은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단 말이에요."

라고 한 번씩 너무 직설화법으로 순식간에 흡연자를 죽음의 문턱까지 데리고 가버리는 통에, 거짓 없이 사실을 전달하며 상대를 당황하게 할 때도 있지만 기특하기까지 할 때도 있다.

"알아, 니코틴에 중독되면 나중에 담배 끊기도 힘들고 결국 폐암에 걸릴 확률이 비흡연자보다 몇 배 더 많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배는 피우고 싶어."

라고 대꾸하는 어른은 없다 물론.

대신에

"그래. 알았어. 이젠 안 피울게."

라며 전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게 건성으로 대답하며 일단락을 짓는 일에 급급한 어른이 대다수다.


어른들도 모두 어린 시절을 거쳐왔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변해버린 거지?

변했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 아닐까?

가끔 정말 끈질긴 아이들의 사과 요구에 진심으로 내키지 않지만 연기라도 하면서 사과를 해야 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디 엑스트라 자리 하나 섭외 들어 올 곳도 없는데 엄마는 어설프게 연기 실력만 꾸준히 늘리고 있다.

'진심으로' 한다는 것, 살아보니 그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심인 마음이 있어야 진심이 전달되는 것임을.


속으로는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그러나 아들에게는 별 것이고 아주 중대한 문제라는 게 문제인 것이다.) 사람 귀찮게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외국인에게 보디랭귀지라도 해 가며 의사소통을 하듯이 사과하는 연기를 해야만 하는 나는 생각해 보면 아이들보다도 못하다.

아이들에게는 원칙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만 많이 먹고 어른 행세하며 원칙도 없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줏대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으며 초등생들도 다 실천하는 기본적인 인간 된 도리를 전혀 못하고 사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나부터도 부끄럽기 짝이 없는 행동들을 얼마나 자주 일삼고 있는지...

다행히 나태해지지 않도록 두 선생님들이 개인 과외를 잘해 주신다.


나는 참 운도 좋지.

어디서 저런 실력 있는 과외 선생님을 두 분이나 모셔왔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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