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의 붕어빵 돌려막기, 그 어린이의 사교방식
어떤 중독
22. 12. 15. 어쩌다 아들은 거기까지 가게 되었나.<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나 오늘 붕어빵 갚아줘야 돼. 천 원만 주세요."
"갑자기 무슨 붕어빵?"
"저번에 다음이랑 브런치가 나 붕어빵 사줬단 말이야. 그래서 오늘은 내가 사주기로 했어."
"그래? 붕어빵이 하나에 얼만데?"
"두 개에 천 원이야."
"그럼, 너까지 세 명인데 천오백 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정말 그러네. 나도 먹어야지 참."
그 옛날 무슨 동화였던가.
돼지 숫자를 세는데 자기만 자꾸 빠뜨리고 안 세서 한 마리가 모자란다고 그랬던 전설의 그 이야기 말이다.
아마 11월부터였을 것이다.
아홉 살 아들이 붕어빵의 늪에 빠진 것은.
시작은 늘 그렇듯이 미미하였다.
처음엔 금액이 적었다.
인원도 딱 두 명으로 소수 정예반으로 조촐하게 시작했던 것이다.
"엄마, 나 친구랑 같이 붕어빵 사 먹어도 돼? 학교 끝나고 말야."
"그래. 먹고 싶으면 네 용돈에서 사 먹어. 너무 많이는 사 먹지 말고. 집에 와서 엄마가 만들어 준 간식 먹고, 알았지?"
"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들은 일단 나를 안심시켰다.
"야, 요즘 붕어빵이 얼마 하냐?"
제 누나가 물었다.
"두 개에 천 원이야."
"그래? 물가가 많이 올랐네. 나 1학년 때는 천 원에 세 개였었는데."
4학년, 열한 살은 2년 좀 더 살았다고 치솟는 물가와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어느 정도 직시하는 듯했다.
"엄마, 나 오늘 붕어빵 사 먹어도 되지?"
"저번에도 사 먹었잖아."
"그땐 그때고 이번엔 다른 친구들이랑이야. 저번에 다른 친구가 나 붕어빵 사줬으니까 갚아줘야지."
"그래. 친구한테 얻어먹기만 하면 못쓰지. 친구가 사줬으면 너도 당연히 사줘야지. 그래도 우리 아들이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잘 사 먹네. 혼자만 사 먹지 않고."
내 무엇을 빌려주고도 제때 제대로 받지 못한다거나, 내 잇속만 챙기느라 친구도 나 몰라라 하는 그런 어른들의 세태를 떠올리며 나는 짐짓 흐뭇한 미소까지 지어 보였었다.
"우리 아들이 신세 진 건 꼭 잘 갚나 보구나. 그래. 그래야지. 공짜도 너무 좋아하면 못써요. 어차피 사람들은 서로 돕고 주고받고 그렇게들 사는 거야."
가끔 보면 너무 원칙대로만 사는 게 아닌가 싶어 답답할 때도 있는 아들이다.
하지만 '남의 것을 거저먹고 입 싹 씻고 모른 척하는 그런 어린이는 안 되겠다'라는 의지를 몸소 실천해 보이며 서 너 번 그렇게 붕어빵을 사주고 또 사주고 갚아주고 하는 생활을 한동안 이어나갔다.
"엄마, 오늘은 친구들이 5명이거든? 그럼 얼마가 필요하지? 이천 오백 원 맞지?"
"응? 무슨 친구들이 5명이나 돼? 그 친구들이랑 같이 붕어빵 먹었었어?"
"응. 처음엔 셋이서 놀다가 다른 친구 두 명이 더 와서 5명이 됐어. 그래서 같이 사 먹었어. 그때 먹었으니까 나도 친구들한테 사줘야지."
"그래. 그래야지. 근데 어째 점점 그 수가 많아진다 아들?"
"어린이들끼리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엄마는 참."
"그래. 우리 아들이 여러 친구들이랑 잘 노니까 좋다."
그로부터 또 며칠 후,
"엄마. 오늘은 어묵을 사야겠어."
"어묵이라니?"
"응. 저번에 OO형이 우리 어묵 사줬거든. 그래서 나도 사주려고."
붕어빵에는 붕어빵, 어묵에는 어묵, 계산 하나는 정확한 아드님이시다.
"그래? 그럼 어묵은 하나에 얼마야?"
"엄마. 어묵은 비싸. 하나에 700원이야."
제 누나가 잽싸게 끼어들었다.
"그러네 정말. 어묵은 200원 더 비싸구나."
"아무튼 엄마. 어묵 사 먹게 돈 좀 가져갈게요."
"그래. 네 용돈에서 쓰는 거니까 별말은 않겠다만, 근데 너 요즘 너무 과소비하는 거 아냐? 거의 매일 사 먹고 있잖아. 그러다가 용돈 다 써버리겠다. 용돈은 네가 정말 필요할 때 정말 사야 할 곳에 그때 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계획성 있게 용돈도 써야 하는 거야."
"괜찮아, 괜찮아. 그러라고 용돈 있는 거지 뭐. 아직도 많이 남았어. 그리고 또 설이 있잖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또 용돈 주시겠지?"
"글쎄다..."
아들의 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사업 규모를 확장해 가는 기업처럼 붕어빵에서 시작해서 어묵까지, 실은 몇 주 전엔 아이스크림까지 영역을 확장하게 된 사실을 알았다.
그것도 아이스바가 아니라 자그마치 '콘'으로.
아들은 바깥일에 대해선, 그가 소비한 품목에 대해선 일절 언급을 안 한다.
소소하게 단순히 붕어빵만 사 먹는 줄로만 알았었다.
제 누나의 제보가 없었다면 끝까지 모를 뻔했다.
그러나 점점 대범해지더니 아무렇지 않게 어묵에 손을 대고, 아이스크림, 과자, 빵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한 번은 포**빵을 사겠다며 헐레벌떡 들어와 돈을 챙겨서 후다닥 나간 적도 있었다.
한 봉지에 이 천 원도 넘은 것이 있었고 종류별로 가격이 달라서 비쌌다고 했다.
"아니, 얘가 정말! 그렇게 흥청망청 쓰다가는 용돈 다 탕진할라! 아무리 간식이 사 먹고 싶어도 그렇지. 사람이 절제를 할 줄 알아야지. 사고 싶다고 다 사고 먹고 싶다고 다 먹고살 수 있어? 벌써부터 이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살면 어쩌자는 거야? 뭐든 적당히 해야 하는 거야. 아무리 네 용돈에서 쓰는 거라지만 이건 좀 지나치다는 생각 안 들어? 넌 도대체 공부를 하러 학교에 가는 거야? 끝나고 붕어빵 사 먹는 재미로 가는 거야? 벌써부터 그렇게 무절제하게 돈을 쓰면 어떡해? 안 되겠다. 너 용돈 장부 좀 검사해봐야겠다. 그렇게 야금야금 가져간 금액이 얼만지 알기나 해? 일주일에 몇 번이나 군것질을 하는 거야? 엄마가 학교 끝나고 오면 간식도 꼬박꼬박 주잖아. 그리고 너 점심만 먹고 바로 집에 오는 건데 금방 밥 먹고 또 간식을 바로 사 먹어? 배도 안 불러? 붕어빵도 이미 실컷 많이 사 먹었잖아. 이제 그만 사 먹어도 될 것 같은데? 어묵도 밖에서 사 먹으면 많이 짜던데. 이젠 친구들이랑 붕어빵 돌려 막기 좀 그만할 수 없겠어? 그만하면 됐어. 너도 할 만큼 한 거야. 이젠 청산해. 새 출발하란 말이야. 앞으로는 먹고 싶은 사람이 각자 사 먹도록 해. 너도 친구들한테 기웃거리지 말고. 먹고 싶으면 엄마한테 말해. 그럼 엄마가 어련히 안 사줄까. 알겠지? 노름 뒤는 대줘도 음식 뒤는 못대준다는 그런 말도 못들어 본 게냐?하긴 네가 그걸 알 턱이 없지.친구들이랑 그만 사 먹고 앞으론 엄마한테 얘기해. 엄마가 사줄 테니까. 너 붕어빵 사 먹고 다른 간식 사 먹고 오면 배불러서 저녁밥도 잘 안 먹잖아. 그게 문제야. 어린이가 밥을 잘 먹어야지. 걸핏하면 군것질만 하고 그럼 되겠어 안 되겠어?"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아들. 아이스크림사 먹는 것도 좋지만 요즘 너 감기 기운도 있고 목도 아프다며. 기침도 좀 하잖아.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은 몸이 다 나으면 그때 먹는 게 어때? 여기서 더 아프면 진짜 아이스크림 한동안 못 먹어. 잘 생각해 봐. 조금 더 참고 먹을지 그냥 먹고 오랫동안 못 먹을지. 어떻게 행동하는 게 좋을지. 그리고 요즘 너무 춥잖아. 군것질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더 아플까 봐 엄마는 걱정이 돼."
"아니야 엄마. 아이스크림 먹으니까 목 아픈 것도 다 나은 것 같아. 진짜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어묵도 먹기 전에는 목이 아프고 그랬었는데 그거 사 먹고 나니까 몸이 따뜻해지면서 다 나은 것 같아."
"그럴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진짜야. 나 하나도 안 아파."
"너 아프면 우리집에서 제일 고생하는 사람이 누구야?엄마도 요즘 몸이 안좋다고.너까지 일 보탤래?엄마 말 좀 들어라!엄마도 요즘 힘들어."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기침을 콜록콜록하면서도 아이스크림을 포기할 수 없었던 나의 기쁨, 나의 번뇌.
엄마인 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홉 살의 '어묵 플라세보 효과', 정말 대단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어묵은 목감기도 다 낫게 한다니...
육체의 고통을 정신력 하나로 버티며 이겨내 버리다니, 장차 크게 되리라.
그렇게 거의 매일 붕어빵 돌려 막기를 하고 추운 겨울날 오들오들 떨며 30분이나 줄을 서서 어묵을 사 잡수고 거리를 배회하며 아이스크림이며 과자, 빵을 마구 잡수던 그 어린이는 얼마 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아마도 쌀쌀한 날에 찬 바람맞으며 군것질 한 과보를 톡톡히 받은 듯했다.
" 몸이 너무 안 좋은 것 같다. 너 혹시 독감 걸린 거 아니야?"
* 선생님, 그 어린이는 다만 붕어빵의 늪에 빠져 군것질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것뿐입니다.
단지 그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