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은 못하더라도 '적당히좀'

나는 소망한다, 더 이상 물건을 들이지 않기를.

by 글임자


22. 12. 19. 나눔 바자회계의 큰손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내가 뭘 가져왔는지 봐봐요~"

또 무슨 짐을 집까지 들고 오셨나 싶었다.

(아이들에겐 비밀인데) 언제부터인가 그들이 가져오는 오만가지가 짐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뭔데? 뭘 가져온 거야?"

제 누나가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자, 짜잔~"

아들이 가방에서 꺼낸 것은 '펭수' 인형이었다.

"우리 아들, 이게 웬 인형이야?"

"오늘 나눔 바자회 했거든. 근데 이게 다가 아니야."

"뭔데? 또 뭐가 있는데?"

제 누나는 기대감과 설렘으로 동생이 어서 빨리 다음 타자를 선보이기를 재촉했다.

짐이 또 있다고?

"이건 전룡이야."

"뭔 용? 그게 뭐야?"

태어나 40 평생 처음 보는 캐릭터였다. 이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뭐야? 무슨 '짐 대잔치'해 지금?

"자, 이건 팝잇, 이것도 팝잇, 이것도 팝잇."

'팝잇'이 아니라 자꾸만 튀어나오는 것이, '팝콘'인 줄 알았다.

"이걸 다 산 거야?"

"응, 엄마. 이거 다 해서 1,400원이야. 싸게 잘 샀지?"

과연 내 아들답다.

그 와중에 자신이 얼마나 합리적인 소비를 했는가(아니 저렴한 소비인가?)를 엄마에게 우쭐대며 보고하였다.


"엄마, 오늘 바자회 있었는데 난 하나도 안 가져갔어."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가 깜빡할까 봐 지난주에 미리 챙겨줬잖아. 기억 안 나?"

"아, 맞다. 근데 가방에 없던데?"

"가방에 있는 게 아니라 지난주 초에 가져갔으니까 학교에 있겠지. 미리 사물함에 갖다 놓으라고 엄마가 그랬잖아. 사물함에 뒀겠지."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그래."

"아무튼 이거 정말 싸게 샀지 엄마?"

"그래, 근데 너희 인형 잘 가지고 놀지도 않으면서 두 개나 샀어?"

"이게 얼마나 귀여운데."

싸면 사버리는 어떤 40세의 남성.

이에 뒤질세라 귀여우면 사버리는 아들.

역시 그 남성의 아들답다.

아들의 소비 행태로 그의 친자임에 틀림없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아들아, 엄마 말 똑똑히 잘 새겨듣거라. 물론 네가 처음 봤을 때 귀여워서 갖고 싶다는 소유욕을 주체하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물건이란 건 말이다. 살 때는 신중해야 하는 거야. 네가 지금 그게 귀엽다고 느끼는 건 허상이야. 순간의 충동일 수도 있어. 귀엽고 안 귀엽고가 어디 있다니. 그저 인형일 뿐이야. 네가 지금 그 인형들이 꼭 필요해? 그걸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 거야. 물건이란 자고로 필요에 의해서 적정한 가격에, 그만큼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됐을 때 비로소 돈을 지불하고 사는 거란다. 기분 내키는 대로 순간의 감정으로 사들여서는 결코 안돼. 조금만 더 생각을 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솔직히 너희 인형 가지고 노는 거 좋아하지도 않잖아. 게다가 저것들은 부피가 제법 되는구나. 우리 집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이런 식으로 자꾸 새로운 물건을 들이면 도대체 어쩌자는 게냐? 그리고 그게 너한테 꼭 필요한 물건이야? 싸다고 해서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살 필요는 없어.(=넌 누굴 닮아서 그러니? =넌 네 아빠를 빼다 박았구나. =어쩜 네 아빠랑 하는 행동이 똑같니.=물건을 사는 기준은 '싸다'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가 돼야만 해.)


그런 건 안 사느니만 못한 거야. 그리고 샀으면 애정을 가지고 소중히 다뤄야 하는 건 물론이고. 넌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느냐?생각을 해 봐. 새로운 물건을 볼 때마다 갖고 싶어서 다 사들이면 어떻게 되겠어? 사람은 자고로 신중히 생각을 하고 행동해야 하는 법이야. 그동안 네가 보인 행동을 미루어 짐작하건대, 며칠 가지 않아 찬밥 신세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구나. 이 엄마가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고 항의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엄마도 나름 축적된 데이터를 근거로 하는 말이니라. 너도 과거 네 행동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엄마가 이렇게 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란 걸 어느 정도는 수긍할 테지?


집에도 인형이 없는 것은 아니잖니. 있는 것도 잘 안 가지고 노는데 또 인형을 사 왔다고? 엄마가 오늘 나눔 바자회가 있다는 걸 깜빡하지 않았다면 미리 당부를 했을 텐데 이 모든 게 엄마 불찰이구나. 엄마는 저 인형들이 하나도 반갑지가 않은데 어쩌면 좋으냐. 사더라도 한 두 개만 샀어야지. 한꺼번에 이걸 다 사 오다니 대체 어쩔 셈인 게야?"

라고는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물론.

평소에 돈을 어떻게 가치있게 써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미 남편과 내가 아이들에게 틈틈히 가르쳐 왔으므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인형을 가지고 노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물려받은 인형이 있어서도 시큰둥했고 저희들이 인형을 사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내가 인형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세탁의 번거로움이 한몫했다.) 인형을(가지고 놀 만한) 한 번도 사 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를 제외한 세 멤버에게 비염기가 있다.

나는 먼지에 좀 (어쩔 때만) 예민한 편이다.

자고로 인형에 먼지가 날리는 걸 철천지 원수 보듯 하는 사람이 나였다.

나는 이번 바자회에 집에 남은 유일한 (부피가 커서 자리만 차지하고 몇 년째 가지고 놀지도 않는, 워낙 안 가지고 놀아서 새것 그대로인) 강아지 인형 하나를 과감히 보시할 생각이었다.

이런 때를 대비해 세탁도 미리 깨끗이 해 놨다.

있는 인형도 없앨 마당에 추가를 하시겠다고?

팝잇도 이미 집에 있잖아.


"엄마. 이거 나 잘 때 안고 자도 돼? 안고 자면 너무 따뜻할 것 같아."

아들이 한껏 들떠 물었다.

"맞아, 엄마, 너무너무 귀엽다. 아, 푹신해."

제 누나도 적극적으로 편을 들었다.

"얘들아, 잘 때는 이불을 잘 덮고 자면 되는 거야. 인형 같은 거 안고 자면 자다가 불편해서 깰 수도 있다고. 그거 안고 안자도 충분히 방은 따뜻하잖니? 추운 것 같으면 내복을 더 따뜻한 걸로 입고 자. 너희는 춥다고 하면서도 이불도 안 덮고 자고 덮어줘도 덥다고 다 차 버리잖아. 잠을 잘 때 보온기능을 해 주는 건 내복이나 이불이지 인형은 아닐 거야. 무슨 죽부인도 아니고 안고 자기는 뭘 안고 잔다고 그러는 게냐? 신중히 생각하거라. "

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물론.


대신에

"그래. 귀엽긴 하다. 안고 자면 정말 따뜻할 것 같다."

라고 맞장구쳐줬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 본 순간 나를 바라보는 펭수의 눈빛에 어쩜 그리도 귀여움이 묻어있는지, 하마터면

"그 인형 엄마 주라."

라고, 욕심이 난 나머지 그 말을 내뱉을 뻔했다.

불혹을 넘긴 엄마도 첫눈에 혹 하는데 질풍노도의 아홉 살이 그 유혹을 어찌 뿌리칠 수 있었으랴.

나의 기쁨, 나의 번뇌를 탓할 일만은 아니었다.

"그치? 엄마도 한 번 만져 봐. 진짜 부들부들해."

그러나 우리 집에 온 물건들(특히 세탁이 가능한 것들은)은 일단 세탁하는 게 우선이므로 나는 그렇게까지 그 촉감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아들이 인형을 보여 준 순간 얼른 세탁해서 건조기에 집어넣고 싶었다.

인형을 건조기에 마구 돌려도 괜찮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미 몇 번의 전과가 있었으므로.

별 탈 없이 무사했으므로.


"우리 아들은 그렇게 인형을 안고 자고 싶어?"

"응. 엄마 나 오늘 저녁에 잘 때 안고 자도 돼요?"

"아니. 오늘 저녁엔 힘들 것 같아. 일단 세탁부터 해야지."

"아, 그렇구나. 그럼 건조기에 넣고 빨면 되겠네?"

"아니지. 건조기로 말려야지."

"아, 그렇구나. 그럼 오늘 안고 잘 수 있겠네. 건조기에 넣으면 금방 마르잖아."

엄마가 건조기를 사용하면서 종종 부르던 노동요가 있었으니,

"아, 건조기가 있으니까 빨래가 금방 말라서 정말 좋다~"

건조기 찬양가를 기억해 낸 것이 틀림없다.

"아니야. 엄마가 전에도 해봤는데 속에 솜이 많이 들어 있어서 한두 번 돌려서는 잘 안 마르더라. 여러 번 돌려야 할 것 같아."


"그런데 엄마는 오늘 밤 여러 번 돌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천천히, 햇볕과 바람과 시간으로 과메기를 말리듯 아주 천천히 마르게 놔 둘 거야. 그렇게 몇 날 며칠 너희 눈에 안 띄게 놔뒀다가 너희가 인형들에 관심이 시들해질 때쯤 쥐도 새도 모르게 처분해 버리고만 싶어.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그 유명한 말을 들어보시기나 했을랑가 몰라? 이참에 엄마가 증명해 보이겠어! 두고 봐라. 도대체 이걸 왜 사 온 거라니?"

라고는, 혹은 그와 비슷한 말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물론.


아이들이 원하니까, 게다가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내가 좀 성가시고 불편하더라도, 일단 사건은 일어났으므로 잔소리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준비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걸로 받은 셈 치자고, 좋게 좋게 넘어가자고, 더 이상 머리 아프지 않게 마침 잘 됐다며 서로 합의를 보는 게 어떻겠냐고 강력히 제안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건 펭수와 전룡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서서히, 아무도 모르게 치밀한 계획 하에 그것들을 그들의 눈밖에 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엄마라고 해서 아이들 소유의 물건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는 없으므로 충분히 시간을 두고 기다려 볼 생각이다.

솔직히 어떻게 처리할지도 고민이다.

멀쩡한 인형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도 없고, 누가 원하면 기쁜 마음으로 문 앞까지 배달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처리할 수만 있다면.

전에는 근처에서 벼룩시장도 열리던데 그런 데라도 기웃거려봐야겠다.

물론 아이들이 인형을 오랫동안 가지고 놀지 않고 더 이상 찾지 않을 때, 간절히 '그날을 기다린 후'라는 전제 하에서다.


그리고 딸에게 단단히 일렀다.

"합격아, 동생이 인형 두 개나 사 왔으니까 넌 인형 안 사 와도 될 것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해?(=좋은 말로 할 때 인형 같은 거 절대 절대 사 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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