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님아, 그 손톱을 기르지 마오~
봉숭아 물, 사기와 낭만 사이
22. 11. 14. 손톱 끝에 걸린 낭만< 사진 임자 = 글임자 >
"옛날에 엄마랑 아빠 사귈 때 엄마가 아빠 새끼손가락 두 개에 봉숭아 물을 들여줬었거든. 근데 아빠가 신규자 교육 가서 그거 사람들이 알아볼 까 봐 손을 자꾸 감췄대. 아빠가 처음에 하기 싫다는 걸 엄마가 날 사랑한다면 봉숭아 물을 들여달라고 한 번만 해 보자고 했어. 그랬더니 열 손가락을 다 하는 건 무리고 새끼손가락에 하나씩만 하자고 합의 봐서 엄마랑 아빠랑 새끼손가락에만 봉숭아 물들였었어. 아빠는 그때 손톱이 길면 기는 족족 바로 잘라 버리더라?
우리 아드~을, 손톱이 너무 긴 것 같은데 잘라야 하지 않을까?"
"안돼! 첫눈 올 때까지 자르면 안 돼!"
"그래도 지금 너무 길어서 지저분하고 불편하지 않아?"
"괜찮아 엄마, 난 하나도 안 불편해. 이거 봐. 괜찮다니까."
"그래도 남들이 흉보겠다, 그러지 말고 자르자."
"절대 안 돼!"
매미도 시끄럽게 울어대던 한여름밤에 나는 어쩌자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아들에게 봉숭아 물을 들여줬던가.
엄마 아빠의 기원전 연애담까지 주책맞게 들춰가며 나는 무얼 바랐던가.
<사건 발생 보고>
누가 : 성인 여성 한 명 포함 그의 자녀 2인 일당
언제 : 2022년 8월 9일 여름방학 중
어디서 : 다정한 그들의 보금자리 거실 바닥
무엇을 : 자그마치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기
어떻게 : 봉숭아 꽃과 잎을 채취해 5일 정도 냉장보관 후 미니 절구로 마구 찧어 비닐을 이용해 손톱에 친친 감음.
왜 : 첫눈 올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 물이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근거를 알 수 없는 말에 눈멀고 귀 멀어서(라고 추측됨).
아이들에게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줄 때마다 해묵은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뭐하러 그때 내가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줬나 몰라.'
봉숭아 물만 안 들여줬어도...
그 해에 첫눈이 유난히도 일찍 흩날렸었던가?
길어진 손톱을 자를 때마다 아들은
"엄마 어떡해? 손톱에 봉숭아 물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눈이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말이야."
"우리 아들 손톱이 유난히 잘 기는 것 같다. 먹은 게 다 손톱으로만 가나? 좀만 더 버티면 곧 첫눈 올 것 같은데."
"눈 올 때까지는 안자를 거야."
"그래도 손톱이 길면 잘라야지 못써. 손톱 밑에 때도 까맣게 끼고 위생상으로도 안 좋아."
"그럼 내 소원은?"
"응? 소원?"
"첫눈 올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 물이 남아있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면서?"
"아, 그랬지."
"손톱 잘라버리면 내 소원이 안 이루어지잖아. 남겨놔야지."
도대체 아들의 소원이 무엇인지 감이 오지도 않아 더는 설득의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설득당할 아들도 아니었거니와.
"야, 너는 그런 거 아직도 믿냐?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 물이 남아있으면 소원 이루어진 다는 게 말이 돼? 봉숭아 물하고 소원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그런 게 어딨어? 그럼 뉴스 보고 일기예보에서 첫눈이 온다고 할 때 사람들이 다 봉숭아 물들이면 되겠네. 그럼 그 사람들 소원이 다 이뤄지게? 으이구, 아직 어리구만."
이렇게 말하는 그녀의 손톱은 벌써 몇 주 전에 잘려나가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져 봉숭아 물이 자취를 감추었다.
봉숭아 물과 소원과의 터무니없는 상관성을 두고 진작에 현실을 직시하고 누구처럼 기는 족족 잘라내기 바빴다.
유전자의 힘이 이렇게나 무섭다.
2012년생, 올해 11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성격이) 실은 나를 똑 닮았다.
이상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첫사랑'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솔깃해하는 눈치였는데 말이다.
이래 봬도 나는 유효기간이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는 갔었다고.
"엄마가 소원 이루어진다고 했어, 분명히. 그렇지 엄마?"
"으응..."
"아직도 그런 걸 믿다니 쯧쯧."
"누난 왜 엄마 말을 못 믿고 그래?"
엄마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 내 아들, 내가 생각하기에도 잘 키웠다.
뿌듯하면서도 뒷입맛이 쓴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고?
잠시 흡족해하며 아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동시에 샘솟는 사이,
그러나 딸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덧붙였다.
"그냥 얼른 자르고 엄마한테 한 번 더 물들여달라고 해! 지금이라도 물들이면 첫눈 올 때까지는 확실히 남아있을 거 아냐?"
아니, 내가 저런 꿍꿍이로 미리 봉숭아를 공수해 온 걸 어떻게 알았담?
냉장고 홈바에 재워둔 봉숭아가 퍼뜩 생각났다.
"근데 너 이건 분명히 알아둬라, 그건 사기야, 사기. 그렇게 두 번 물들이면."
사기와 낭만 사이.
11살에겐 사기에, 9살에겐 낭만에 더 가깝다.
그 원흉은 남매의 엄마다.
아슬아슬하게 아찔하게 손톱 끝에 걸린 마지막 봉숭아 물이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만큼이나 위험에 처해 있다.
지금이라도 첫눈이 날리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그러한 내 소원이 이루어지기엔 애초에 봉숭아 물 하나 들이지 않은 내 손톱이 너무 황량하기까지 하다.
유네스코 손톱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턱도 없이, 손톱깎이가 한 번 쓱 지나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봉숭아 물에 대한 집착으로 아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결연하게, 마지막 멸종위기 동물을 구해내듯 꽉 진 두 손이 좀처럼 펴지지 않는다.
'손톱 밑이 까만 어미의 아들'이 지저분하다고 담임 선생님께 당분간 꾸중을 들어도 그 어미는 아들이 잠든 틈을 노려 열 개의 손톱을 홀라당 다 깎아버리는 야만적인 행동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나는 민주적인 엄마니까.
모순의 엄마는 갈피를 못잡고 있다.
담임선생님에게 그 비위생성으로 말미암아 칠칠치 못한 어미라는 인상을 주더라도, 내 아들의 손톱과 낭만을 지켜주겠다.
비록 이성은 손톱을 당장 자르라고 하고 감성은 며칠 더 시간적 여유를 달라고 말하긴 하지만.
9살, 아직 낭만을 더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