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삽질한 날

바야흐로 '분급'의 시대, 금 따는 땅콩 밭에서

by 글임자
22. 11. 12. 분급을 탄생시킨 땅콩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이것 좀 봐! 내가 금을 캔 것 같아!"

9살 인생이 말했다.

충분히 호들갑스러웠다.

"어디? 어디? 진짜 금이야?"

11살 인생이 격하게 반응했다.

"누나 봐봐. 이거 진짜 반짝거리지? 우와, 우리 이제 부자야."

"음, 이건 금이 아니야!"

"잘 봐봐. 여기 이렇게 노랗게 반짝이잖아. 이거 잘 묻어 둬야지. 나중에 내가 다시 찾으러 올 거야."


누나는 11년 인생살이에 축적된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철없는 동생이 발견한 것이 금에 가깝지도 않으며, 반짝이지도 않고, 결코 금일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과연 그것은 한낱 누리끼리한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밭은 우리 밭도 아니며(정확히는 부모님 소유의 밭도 아님) 단지 임차인 자격으로 경작하고 있을 뿐이거늘 어쩌자고 기약 없는 돌덩이와의 만남을 아들은 기약하는가.

아들아,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거라.

진정 그것은 누가 봐도 돌이니라.



백날 땅을 파 보아야 10원짜리 하나 안 나온다는 전설이 있었지만, 땅콩을 심은 밭은 단 5분만 파도 알알이 여문 땅콩이 풍년이었다.

벌써 몇 년째 친정에서 땅콩 농사를 짓고 계신다.

물론 판매용이 아니라 나눔용이다.

작두콩을 심고 수수를 심고 가장자리엔 아로니아 나무가, 인도에선가 건너왔다는 외국 감자가, 태어나 처음 보는 보라색 콩과 메주콩과 팥이 대다수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땅콩은 달랑 이랑 하나만 차지했다.

외손주들의 체험학습을 위한 외조부의 사랑이다.


"우와~ 엄마 땅콩이 진짜 많이 달려있어! 이거 정말 잘 뽑힌다."

"그러게. 좀 가물었는데 진짜 잘 됐다."

"땅콩버터 빵 맛있는데."

"나중에 말려서 땅콩 잼 만들어 줄게."

"정말?"

"정말이지. 비 오기 전에 얼른 캐자."


오전에 한 시간도 넘게 엄마와 외할아버지가 밑 작업을 해 놓은 걸 알 턱이 없는 아이들은 삼손이라도 된 양 으스대며 손쉽게 땅콩 줄기를 잡아당겼다.

요즘 가문 날이 많아서 돌덩이처럼 굳은 땅은 호미 가지고는 턱도 없었다.

나는 삽질을 했다, 제대로.

어른 힘으로도 잘 안 뽑히는 것을 조막만 한 손들이 감당하긴 힘든 일이었다.

무엇보다 끈기가 좀 부족하다 싶은 한 멤버가 금세 포기하게 될지도 몰라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다시 땅 위에 얹혀 놓기만 한 형상으로 완전범죄를 꿈꾸었다.


"엄마, 너무 힘든데 좀 쉬고 합시다."

9 살이 말했다.

일 시작한 지 5분 정도 지난 시각이었을 것이다.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공벌레를 잡는다, 달팽이 집을 찾는다, 지네를 찾아본다 하며 해찰을 시작했다.

"땅콩 캐는 것도 잘 도와주는데 이따가 할머니가 용돈 줘야겠네."

외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아들은 복귀했다.

아이들의 순수한 체험학습 현장에 '물질만능주의 사조'가 침범하는가 싶어 나는 경계했지만, 아들은 없던 힘도 끌어내는 것 같았다.


"엄마, 자꾸 그렇게 애들한테 용돈으로 혹하게 하면 안 돼!금전적인 보상을 조건으로 걸어서 교육적인 효과를 노리는 건 요즘 시대엔 금기시해야 할 잘못된 교육관이라고.그런 식으로는 지속적으로 효과를 보긴 힘들어. 주객이 전도된 셈이나 마찬가지야. 일을 돕는다는 데에 의의가 있는거지, 잿밥을 노리고 하는 일이 그게 어디 제대로 된 거라고 할 수 있겠어?할아버지 할머니 힘드시니까 도와드린다는 마음으로 해야지.그리고 우리가 제일 많이 갖다 먹을 건데 애들도 당연히 같이 해야지."

라고 물론 나는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10분도 채 안 되어 이탈자가 생겼다.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멤버 중에서 땅콩보다는 토양계의 생물체에 더 관심을 많이 보이던 한 명이 있었다.

신변보호를 위해 인적사항은 밝힐 수가 없다.


나머지 멤버와 나는 두 시간이 넘게 땅콩을 땄다.

나는 100KG은 족히 될 것이라 했고 아빠는 콧방귀를 뀌셨다.

"저까짓 거 50KG이나 될까 모르겠다."

나의 터무니없는 가늠에 혀를 끌끌 차셨다.

내가 못 들면 무조건 100KG인 거다.

50KG이든 100KG이든 어차피 내가 들지도 못하는 거 뭐.

이 정도면 '땅콩 상회'를 급히 개업해도 될 것 같다.


"우리 합격이랑 오늘 땅콩 캔다고 고생했다. 자, 용돈 받아라."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멤버에게는 2만 원의 거금이, 중간 이탈자에게는 1만 원의 거금(일한 양에 비하면 정말 거금이다.)이 돌아갔다.

"할머니, 이건 불공평하지. 나는 끝까지 일했고, 동생은 조금밖에 일 안 했는데."

"그래? 그럼 얼마를 줘야 되겠냐? 5 천 원?"

"그것도 많아."

"그럼 얼마?"

"500원!"


그러나 문제의 장본인은 귀를 닫았고, 1만 원을 움켜 쥔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바야흐로 시급을 넘어 '분급'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따지고 보면 정말 5분 정도밖에 일하지 않은 자의 분급은 100원이다.

그러나,

그 500원도 지급받지 못한 서글픈 한 사람이 여기 있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다음 번에 생강 캘 날을 또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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