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안 온다는데 억지로 끌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젠 좀 컸다고 잘 따라다니지도 않는다.
자식인 나보다도 외손주들을 더 기다리시는 눈치다.
하지만 살살 구슬려도 보고 은근히 협박도 해 보았지만 내키지 않은 아이들에게 언제까지고 그런 저급한 유혹으로 버틸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육아 휴직했던 시절 2~3년 전 온라인 수업을 할 때는 수업을 오전에 마치고 매일 외가에 가서 놀던 때도 있었다.
어딜 가나 마스크를 써야 했으므로 숨이라도 편이 쉬고 마당에서 뛰놀라고 일부러 자주 데려갔다.
남들은 키즈카페를 가고 일부러 시골로 체험활동도 참가비까지 내가면서 다닌다지만 근처에 외가가 있어 아이들에게는 더없는 최상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래서 어린이집 다닐 때도 농산물 수확 체험활동을 간다거나 소나 닭 같은 시골에서 기름직한 동물을 보러 가는 그런 때에도 아이들은 별 감흥이 없어했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호강에 겨웠다'라고 한다지 아마?
이미 배냇저고리 시절부터 선행 학습과 조기 교육이 이루어졌던 셈이다.
엊그제 밭에 철없는 수박 하나가 느지막하게 열려 있어서 하나 따오셨다고 했다.
"이것이 늦게사 열어가지고 하나 달려 있더라. 우리 애기들 갖다 줘라. 익기나 했는가 모르겄다."
새것, 맛난 것, 좋은 것, 귀한 것, 그 모든 것의 종착지는 외손주들에게로 였다.
"아휴, 그거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데 집에서 드셔, 그냥."
"우리 애기들이 수박을 얼마나 좋아하는디. 갖고 가서 주라니까."
"됐어. 그냥 놔둬."
"누가 너 먹으라고 그러냐. 애기들 갖다 주라고 그러제."
아차차,
내가 아니라 애기들이 당첨된 거란다.
그렇게나 수박 좋아한다고 소문난 애기들은 요새 외가에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나도,
"수박 그냥 나가서 하나 사 먹으면 되지 그걸 뭐하러 또 들고 가라고 그래? 놔둬!"
이렇게 말하기엔 시장에서도 요즘은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물건이 되었으므로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출산 후 복직하고 난 후부터 줄곧 몇 년간을 친정에서 외손주들을 돌봐 주셨다.
각별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자꾸 수박을 가져가라 하시는 걸 한사코 거절을 하고 그냥 왔는데 어제 기어코 챙겨 주셨다.
"오늘은 잊어버리지 말고 꼭 가져가라. 가져가서 우리 애기들 줘라."
이번에도 모른척하고 은근슬쩍 놓고 가버리면 부모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았다.
"너도 같이 먹어라."
하는 그런 말씀은 역시나 전혀 없으셨다.
나는 원 플러스 원에도 못 끼는구나.
내일모레 일흔을 앞둔 엄마, 팔순을 향해 가는 아빠, 세상엔 둥근 수박만 있는 줄 알고 사신 분들이다.
수박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크기가 그대로여서 처음엔 모종을 알선해 주신 이모님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찔렀었다.
"어째 수박이 안 크고 날마다 저 모양이다냐?"
"그러게. 종묘상에서 속아서 샀나 보네."
'가물어서 그런가' 하시며 아빠는 매일 줄기차게 물을 주셨다.
나도 작년까지 집에서 동그랗고 커다란 수박 모종만 사다 심었기 때문에 올해 심은 수박이 애플수박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었다.
"벌써 열린 지가 언젠데 그대로만 있는 것이 수상하다. 종자가 안 좋은가 보다. 아이고 먹지도 못하는 거. 닭이나 갖다 줘야쓰겄다."
하고 쪼개 봤는데 웬걸?
이미 익을 대로 익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닭들은 올여름 원 없이 수박을 쪼아 먹을 수 있었다.
클래식 듣고 자란 한우, 유황 먹인 오리, 이런 소리는 들어봤어도 애플 수박 먹고 자란 닭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진정한 동물 복지란 이런 것이다.
여남은 마리의 닭들은 부지런히 수박을 흡입하고 착실히 살구빛 달걀을 퐁퐁 잘도 낳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외할아버지 집에 맛있는 거 있는데. 너희 오면 주려고 사놓으셨대."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엄마. 우리 가서 먹자."
이러면서 아이들이 먼저 옷을 챙겼다.
물론 한오백년 전이다.
"얘들아. 할아버지가 너희 먹으라고 수박 따 놓으셨다는데?. 주말에 갈까? 가서 먹자. 너희 좋아하잖아."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젠,
"엄마. 그냥 엄마 혼자 갔다 와. 올 때 엄마가 챙겨 오면 되잖아. 우리까지 다 갈 필요 있을까?"
이렇게 대꾸한다.
철없는 것들, 철없으니 그러려니 한다.
외손주들이 보고 싶어 유치하지만 그런 끄나풀로라도 당겨보고 싶어 하는 외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턱이 없지.
지난번에서 오래간만에 아이들과 같이 친정에 갔을 때 아이들을 보자마자 아빠는 마당에 있는 무화과를 한 줌 따서 아이들에게 안겨 주셨다.
"할아버지가 너희 오면 주려고 안 따먹고 애껴놨다. 얼른 먹어라."
고맙긴 하지만 먼지도 많이 묻어있을 텐데 한번 씻어서 주시지 그걸 그냥 주시냐고 한마디 하려다 꾹 참았다.
아들이 맛나게 베어무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빠의 검게 그은 얼굴이 차라리 애처로워 고개를 돌렸다.
애끼다 x 된다고, 그런 말도 못 들어보셨냐고 그런 걸 뭐하러 애끼시냐고, 그래 봤자 새들 좋은 일만 시키는 거라고
(나무꼭대기에 주렁주렁 열린 것만으로도 당분간 새들은 보릿고개를 넘길 수 있을 터였다.) 턱 밑까지 올라오는 말을 억눌렀다.
아귀아귀 먹는 아들을 보며 또 하나 무화과를 쪼개고 있는 아빠의 거친 손을 보고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렸다.
"얘들아.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희 오면 주려고 아껴놨는데 너희가 안 와서 갖다 주라고 주셨어. 같이 갔으면 좋았을 텐데. 너희 기다리셨나 보더라."
"아 그래? 맛있겠다. 엄마, 수박 먹자."
구구절절 세세한 사연을 열거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수박 내리사랑은 그리하여 희멀건 씨만 남기고 쓸쓸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젠, 어쩌면 한글은 몰라도 주시는 대로 넙죽넙죽 뭐든 맛나게 받아먹던 아기 때의 아이들이, 용돈을 주면 제법 어른스럽게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는 야무진 초등학생보다도 '하버지, 하머니' 이렇게 제대로 된 발음조차 못하던 유아기 때의 아이들을 나의 부모님은 더 그리워하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