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갈아 뛰기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 아들과 남의 아들에 대하여
22. 11. 4. 아들의 상장<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이거 얼른 찍어."
"응? 뭐하게?"
"이거 찍어서 올려. 아들이 상 탔어요~ 이렇게."
아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한참을 안고서 큰소리로 웃었다.
"엄마 웃음소리가 너무 크다. 항의 들어오겠어. 좀 조용히 웃어."
내가 낳은 적이 결코 없는 남의 아들이 저쪽 방에서 소리쳤다.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내가 낳은 아들이지만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울꼬?
내가 안 낳아서 그런가 어쩜 저리도 얄미울꼬?
어젯밤 방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데 아들이 웬 불량 동전 초콜릿 과자 같은 모양을 목에 대롱대롱 걸고 종이 한 장을 들고 자랑스럽게 방문을 열어젖혔다.
'지난주에 합기도 학원에서 승급 심사 있었다더니 합격했나?'
심사비만 내고 시험만 보면 다 합격하는 것 같은 시험이었지만, 알면서도 눈 감아주고, 아이들이 승급했다고 자랑하면 한껏 호들갑을 떨며 기뻐해 주리라 마음 단단히 먹었다.
아들을 사랑해 마지않는 엄마는 아들 얼굴을 보자 입이 자연스레 방긋 벌어졌다.
"아니, 우리 아들. 이게 다 뭐야? 우리 아들이 또 이번엔 무슨 상을 타 오셨나? 저번 승급 시험에 통과한 거야?
"에헴! 엄마 이건 다른 상장이야."
"그럼 뭔데?"
"저번에 줄넘기 대회했거든. 거기서 상 탄 거야."
"우와 우리 아들 정말 대단하다. 줄넘기 연습 열심히 하더니 상을 다 받았네. 역시 노력한 보람이 있었네. 엄만 우리 아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엄마가 우리 아들 엄마라서 정말 좋네. 축하해 우리 아들."
그러나,
그 와중에 거실 한쪽에 시무룩한 얼굴로 슬라임만 만지작 거리는 어린 생명이 하나 또 있었으니.
아, 깜빡했다.
딸을 잊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항상 원 플러스 원인데, 어째 아들 혼자서만 신이 났다 했다.
"근데 누나는 혹시 상 안 받았어?"
아들 귀에 대고 속삭이듯 최대한 소리 죽여 물었다.
"응, 누나는 상 못 받았어. 엄마."
아들이 당당히 온 집안 식구가 다 들을 정도로 큰 소리로 또박또박 대꾸했다.
"히잉."
딸이 바람 빠진 풍선 소리로 살짝 반응했다.
"괜찮아 합격아. 상을 안 받았다고 해서 네가 못했다는 건 절대 아니야. 너도 알잖아. 그럴 때도 있는 거지 뭐. 상을 꼭 받아야만 의미 있는 건 아니잖아? 우리 합격에는 글쓰기, 그림 그리기 , 독서 이런 상도 많이 받잖아. 우리 딸도 엄마는 항상 정말 자랑스러워. 너희가 엄마 딸, 아들이란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라고 책에서 가르쳤으므로 배운 대로 실습을 충실히 했다.
몇 년을 하다 보니 이젠 자연스레 말이 술술 나온다.
역시 주입식 교육이 이렇게나 무섭다.
꼭 책에서 시켜서였겠나.
진심으로 내 아이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귀엽다.
갑자기 아들이 말했다.
"엄마 이거 얼른 사진 찍어 놔. 그래서 나중에 엄마 글 쓸 때 올려. '우리 아들이 상 탔어요' 이렇게 하면 되잖아."
그 말이 얼마나 우습던지 아들을 꼭 껴안고 요란하게 웃어댔다.
잠깐 시무룩해하던 딸도 덩달아 웃음보가 터졌다.
항상 엄마에게 관심이 지대하신 9살 아드님이시다.
언제나 엄마에게는 무조건적이다.
가끔은 엄마를 미치게도 만들지만 미치도록 사랑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줄을 잘 모르지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안다.
그리고 관심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엄마. 오늘도 엄마가 쓴 글 사람들이 많이 읽었어?"
학교 갔다 돌아오면 알림장을 보여주기 전에, 학교에서의 일을 재잘대기 전에 먼저 저렇게 묻곤 한다.
벌써 아이들이 속세에 물들어 버린 건 아닐까?
염려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들이 찰나의 기쁨에 넘쳐 이성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며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냥 조금. 만 명 정도. 몇 안돼."
"우와. 엄마 정말 대단하다. 누나, 만 명이래 만 명!"
이렇게 호들갑을 떨 때 보면 꼭 제 아빠를 닮았다.
물론 며칠 간의 통계를 합산해서라거나, 앞으로 기대되는 독자 수를 가불 해서 셈에 넣었다는 것은 나만 아는 비밀이다.
범죄에 해당되지는 않겠지?
사문서 조작혐의 정도에 해당되려나.
잡혀가더라도 광복절에 쉽사리 가석방되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거야.
엄마도 생각 못했던 부분을 아들이 챙겨주다니.
나는 번갈아 뛰기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2단 뛰기인가? 아니면 교차해서 X자로 줄넘기하는 것인가?
그것이 무어냐고 물어보면 당장에 아이들이 내게 시범을 보이며 따라 해 보라고 할 것이 뻔했으므로 궁금하지만 참기로 한다.
전교 1등을 한들 이리 기쁠까.
그런 역사가 없어 봐서 그 기쁨을 가늠할 수 조차 없기에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영재 교육원에 합격한들 이리 기쁠까.
작년에 딸이 불합격해서 합리화하느라 그러는 것도 결코 아니다.
남들은 하루가 모자랄 만큼 넘쳐나는 학원 투어에 진이 빠져 집에 돌아온다지만 내 아이들은 유일하게 취미 삼아 다니는 합기도 학원에 정을 붙이고 착실히 다니며 재미를 느낀다.
지금 이대로, 아주 좋다.
탈이 없다.
남의 아들이 가끔은 기분 상하게 하고 내가 낳은 아들 덕에 치유가 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