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고 하죠.

마음이 하는 일들

by 글임자


22. 12. 22. 옛 이웃의 정성 한가득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는 그분들은 딱 한 번인가 만났다.

그것도 스치듯이 지나는 길에.

어디서 길을 걷다가 만난다 하더라도 피차 전혀 얼굴도 못 알아볼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인연이라는 것이 묘하다.


"이 양반들이 뭘 보냈을꺼나."

"누구?"

"작년에 옆집에 살던 사람들 말이다. 무슨 택배가 온다고 한다."

"아빠가 또 뭐 보내 주셨구랴?"

"저번에 농사지은 거 좀 보내줬제."

"그래서 이번에 뭐 보내 주셨나 보네."

우리는 단순히 자그마한 답례의 택배인 줄로만 알았다.

엄마와 이모 댁에 다녀오고 친정집에 도착하니 내 팔 길이만 한 택배 상자가 두 개나 와 있었다.

소소한 농산물을 받은 답례품 치고는 과하다 싶었다.

크기며 부피며 무게가 심상치 않았다.

열어보니 그것은 부모님을 향한 답례의 마음이라기보다 내 아이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고 나는 생각했다.


작년에 친정집 옆집에 반년 정도 살다가신 노부부가 계셨다.

외손자와 함께 반년 정도 거주하시면서 초등학교를 시골로 보내고 싶어 오셨다고 했다.

딸 내외는 저 위쪽에서 직장 다니신다고.

나도 다 부모님께 들은 얘기다.

마침 내 부모님과도 비슷한 연배라 제법 가깝게 지내셨나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있는 건 무엇이든 나누고 싶어 하는 부모님 성격에 어쩌면 상대방 입장에서는 귀찮을 만큼 챙기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내 딸과 동갑인 그 집 외손자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지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부의 외손자는 아들이었고, 나에게는 그보다 두 살 어린 아들이 있었으므로 처음엔 책 서너 가지, 옷 몇 가지 이런 것들을 물려주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셨던가 보다.


나는 주말에나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 갔고, 그분들은 주말이면 딸네가 있는 경기도로 올라가시곤 해서 통 얼굴 마주할 일은 없었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한 번인가 스치듯 만나고 인사 한 번 한 게 다였다.

게다가 솔직히 그 손자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작년 말에 다시 원래 살던 집으로 되돌아가셨지만 아빠는 간간이 농산물을 택배로 올려 보내셨었던 것이다.

한 번 맺은 인연은 어지간해서는 끊기 힘든 단단한 고리가 생기는 법이었다, 특히 아빠에게는.


정말 정성이다 싶을 만큼 신경 써서 챙겨 보낸 흔적이 역력했다.

겨울 점퍼는 세탁소에서 막 나온 듯 비닐 째 그대로 담겨 있었고, 운동화며 부츠, 여름 신발도 세탁 후 보냈는지 아주 깨끗했다.

사놓고 작아져 버려 못 신은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사서 보내신 건지 땅 한 번 내디딘 흔적도 없는 새하얀 실내화도 들어 있었다.

엄마에게 보냈음이 틀림없는 화장품 샘플들과 가방과 에코백과 패딩 조끼, 그리고 편히 입을 수 있는 넉넉한 옷들, 그건 정성을 넘어 애를 쓴 보따리였다.

어떻게 썼길래 이렇게나 깨끗할까 싶은 책가방 두 개가 눈에 띄었다.

설마 일부러 사서 주신 것은 아니겠지?


나도 아이들이 입던 옷이며 장난감, 신발 이런 것들을 고르고 골라 깨끗한 것들로만 추려서 다시 세탁을 해서 조카들에게 전달해 주려고 할 때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아무리 물려주는 것들이라지만 마르고 닳도록 사용한 흔적이 있는 것들이나 얼룩이 손톱만큼만 있어도 주는 마음이 편지 않아 자꾸 거르게 된다. 급기야 그런 일조차 귀찮아지고

'새것도 아닌데 받고 좋아할지 어쩔지도 모르는데 그냥 관두자.'

이런 마음이 들기 일쑤다.

그만큼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다.

새언니들은 그래도 일단 받고 알아서 거르겠다며 무조건 달라고 하는 바람에 친정집에 갖다 놓고 각자 알아서 골라 가라고 한 지 오래다.

그래서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이는 날이면 거실에 온통 옷을 늘어놓고 서로 옷을 고르느라 벼룩시장 저리 가라다.


아이들에겐 새것들도 필요하지만, 먼저 착용한 사람이 있고 시간이 지났어도 낡은듯해도 편히 입을 옷들도 분명히 필요하다, 고 나는 생각해 왔다.

받는 사람이 알아서 판단을 해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면 된다.

일단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그런 참사만은 피하고 싶었다.


당연한 일이겠지만(버리라고 일부러 바리바리 싸서 챙겨주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 그날 내가 받은 택배에서 버릴 건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시간을 들이고 신경을 썼을 거란 생각에 그 마음이 고마운 것이다.

정말이지 갸륵한 정성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보답을 하기로 했다.


평소에 수제청 만드는 일이 취미인데 종종 주위에 선물할 일이 있으므로 비상약 모셔놓듯 미리 만들어 둔 게 있었다.

시가에서 보내주신 생강을 적극 활용했다.

한 병은 갈아서, 한 병은 레몬 속만 잘라 얇게 저민 생강과 같이 청을 만들었다.

마침 자몽청은 만들어 둔 게 있어서 챙기고, 미리 사둔 레몬 으로 급히 레몬청도 만들었다.

올해 아로니아가 풍년이라 주체할 수 없어 청으로 만들어 둔 것도 꺼냈다.

2년 숙성시킨 매실청도 많은 양은 아니지만 나눠먹기로 했다.

"꼭 많이만 먹어야 맛이냐. 적어도 그냥 조금씩 나눠 먹는 맛이지."

평소의 저런 아빠 말씀을 그때 떠올린 건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시가에서 협찬받은 농산물이 제법 있어서 검정콩과 깨와 들깻가루를 상자 빈틈 사이사이에 넣었다.

애증을 감, 그걸 따느라 목 디스크가 걸릴 뻔한 가을날 잘 말린 감말랭이와 친정에서 처음 수확한 수수며 통들깨까지 이렇게 한 상자의 로컬 푸드가 완성됐다.

나는 보내는 사람이지만 꽉 찬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내 배가 다 불렀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 쓴다는 것은 이렇게나 배부른 일이구나.


금요일엔 폭설이 내려 불안 불안했지만 그래도 운 좋으면 주말에 받아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갖고 눈길을 뚫고 우체국에 갔다.

미리 연락을 드리고 보내야 하나, 말도 없이 무작정 택배를 보내면 그것도 실례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연락을 하면 부담스러워하며 거절하실 것 같아 눈 한 번 질끈 감고 일단은 행동을 먼저 하기로 했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 간단히 문자를 보냈다.

그냥 있는 것들을 나눠먹는 것뿐이니 전혀 부담가지실 것 없다고, 신경 써서 택배 보내 주신 거 정말 정말 고맙다고.

건강하고 따뜻한 새해맞이하시라고.

정성껏 챙겨주신 따님께도 고맙다고 꼭 전해 주시라고.


오늘 아침 10시가 조금 넘자 그분들께 택배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다.

혹시라도 상자 안에서 내 자식 같은 그것들이 난리가 나지는 않았는지 심히 걱정되었다.

"꼭 친정 엄마처럼 많이도 보내주셨네요."

그분께서 전화를 주셨다.

"달리 드릴 건 없고, 그냥 저한테 있는 거 나눠 먹으려고 조금씩 보냈어요."

그 맛난 것들을 나 혼자 다 먹으려면 한참이나 걸릴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만 먹고 싶은 마음도 물론 전혀 없다.

그분들은 어차피 저런 음식들은 사서 드셔야 하는데 (지극히 내 생각에는) 서로 좋은 일 아닌가 싶었다.

사람이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지, 내 생각은 그렇다.

사람 사는 게 별다른 큰 게 있을까?

세상에 또 별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주는 마음을 고맙게 받고, 받은 마음에 또 고마움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그렇게 사는 게 사람 사는 일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어려울 게 없어 보인다.


지금 친정 옆집에는 올해부터 다른 가족이 일 년 가까이 살고 있다.

남매와 엄마다.

더 주지 못해 항상 안타까운 부모님은 종종 문 앞에 밭에서 갓 수확한 것들을 무심하게 두고 오시곤 한다.

그 집 아이들과 내 아이들은 비슷한 또래라 어울려 논 적도 여러 번 있다.

서울 아이들과 시골 아이들, 그들에게 어디에서 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친화력이란...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우리가 낯선 이들을 만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인연이 왔을 뿐이다.

때가 왔으므로.

시절 인연이 지금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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