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 좋아하지도 않잖아. 스트레스만 받으면서 하고 싶어? 그것도 근무 시간도 아니고 퇴근 후에?"
"그래도..."
"내가 보기엔 억지로 나갔다가 맨날 후회하고 그럴 것 같은데?"
"나도 진짜 싫어. 근데 일단 자전거부터 사래. 50짜리로."
"뭐?!"
남편은 번뇌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끝까지 못 할 것 같으면 처음에 그냥 확실히 선을 긋는 게 어때? 어정쩡한 태도 보이면 그게 더 안 좋지 않을까. 할 것처럼 하다가 중간에 안 하느니 사실대로 말을 하고, 안 끼고 싶다고 말하면 되지."
"자기도 일해본 사람이면서 어쩜 그렇게 말해? 어떻게 조직 생활하는데 내 마음대로 다 하고 살아?"
"마음대로 다 하고 살라고는 한 적 없는데? 정 안 내키면 스트레스받아 가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거지. 근무시간 중에 같이 일하는 건 당연하지만 (어쩌면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근무시간 이외의 시간까지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나도 그런 건 정말 싫은데 어쩌겠어, 조직생활이 다 그렇지 뭐."
"조직생활이 다 그렇진 않다고 생각해. 할 말이 있으면 하고 살아. 사람이 말을 해야 알지. 말도 않고 끙끙 앓고 있으면 그 속을 누가 알겠어? 오히려 말을 해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잖아. 그리고 그냥 한 번 해 본 말일 수도 있는데 혹시 혼자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하다 못해 '일단 한번 생각해 보겠다'라고 말이라도 해 보든지."
"어떻게 그래?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이미 남편은 상급자의 지위와 권력에 압도당해 버렸다. 고 느꼈다.
갑자기 사무관님께서 자전거를 같이 타자는 제의를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주 활달한 성격도 아니고 사교성이 좋은 편도 못 된다고 스스로 밝혔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밖에서 놀고 다니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각종 모임이 있으면 반드시(반드시 갈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도 반드시 간다. 나름 본인이 정한 기준이 있는 듯했다.) 참석하려고 한다.(그런 게 사회생활, 조직생활이라며.)
본인은 내키지 않지만, 주위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진심으로 싫지만, 그래도 간다고.
그게 조직생활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종종 덧붙인다.
"이젠 외벌이인데 난 잘 다녀야지.괜히 찍혀서 좋을 거 뭐 있어?"
나는 그건 어디까지나 남편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일지도 모른다고 늘 말해왔었다.
가만 보니 남편은 (밖에서는 지극히) 거절을 못하는 성격인 것 같았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내가 더 이상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이 상기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만큼 본인이 사회생활 힘들게 하고 있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누가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내가 말하는 본질을 아직도 파악 못한 것일까.
그분은 남편 보고 일단 자전거를 사라고 하셨단다.
'살래?'가 아니라 '사라'고.
지금 남편 자전거가 두 대 있다.
바깥에 하나, 실내에 하나.
둘 다 화석이 된 지 오래다.
남편이 자전거를 즐겨 타는 것도 아니고 그게 취미도 아닌데 난데없이 함께 자전거를 타자니.
아니 '타자'고 한 게 아니라 '같이 타야 한다'라는 그런 의미로 들렸다고 했다.
"자전거 타는 거 별로 좋아하지도 않잖아. 다른 취미 있으니까 안 한다고 하면 되잖아. 혼자 쉬는 게 좋다고 말하면 되지."
"어떻게 그렇게 말해?"
"어떻게 말하긴. 저렇게 말해!"
싫어요! 안 돼요! 하지 마세요!
- 남이 나를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할 때 저렇게 외치라고 (초등생 아이들도) 배웠다.
싫어요! 안 타요! 강요하지 마세요!
- 내가 주입시킨 거절의 말을 대입해 보았다.
같이 자전거는 타기 싫고, 안 타자니 찍힐까 봐 신경 쓰이고, 남편은 딜레마에 빠졌다.
"괜히 마음에도 없으면서 억지로 어울리면서 좋은척하다가 나중에 그만두고 그러면 그게 더 안 좋을 것 같은데? 아니면 진짜 타고 싶을 때만 합류하겠다고 그렇게 말을 해 보든지."
나라면 그렇게 말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조직생활 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고 또 같은 말만 했다.
남편이 나라면 어떻게 할 것 같냐고 묻길래 대답해 준 것뿐이다.
그는 어차피 내 의견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다만 자신이 그만큼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음을 내게 알리고만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면에서는 같은 상황도 정반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부부였으므로.
가끔 그는 상황을 너무 복잡하게만 생각하는 것 같다.
솔직한 마음을 사실대로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아닐 테고, 그분이야말로 조직생활을 20년도 넘게 하셨을 텐데.
솔직히 말한다고 해서 세계 경제가 무너지고, 인류 평화가 깨지는 것도 아니잖아.
뭐, 그 행정실의 평화는 깨질 수도 있겠지.
그래도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잖아.
물론 나도 안다,
사회생활하는 데 모든 걸 사실대로 말하고 솔직하게 행동하는 게 능사가 아니란 것을.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내내 신경이 쓰여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유독 그런 쪽으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다.)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이해 안 될 때가 많다.
남편과 10년 이상 살아보니 남편은 저런 일이 있으면 온통 신경이 거기에 집중돼서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많이 받는 성격이다. 그리고 우리에게까지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첫 번째 화살을 된통 맞았는데 두 번째 화살을 또 같은 자리에 맞으려고?
조직생활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 않은가.
때론 맞춰주고 조율할 필요도 있지만 근무 시간 이외의 시간까지 스트레스받아 가며 남에게 맞춰주고 그 사람의 의지대로 움직여 줄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그분은 그게 좋아서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남편은 그게 내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을 못 해서 억지로 거기 낀다고 해도 그 시간들이 본인에게는 괴롭기만 하지 즐거울 수가 있을까.
혹시 모르겠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매일 날밤을 새울지도.
좋은 사람은 하고 싫은 사람은 안 하면 그만 아닌가.
사모님은 섬에 근무 중이시라 주중엔 사무관님 혼자만 계시니까 심심해서 그러시는 것 같다.
동행하는 차석은 아직 미혼이라 (기혼자보다는) 더 자유로워서(꼭 그렇지도 않을 수 있지만) 두 분이 종종 어울려 자전거도 타고 술도 한 잔 하고 식사도 한 번씩 하는 눈치였다.
여기에 새 멤버를 추가하고 싶은 신 거다.
"나 같으면 솔직히 말하겠다. 자전거를 즐겨 타지도 않고, 이미 자전거가 집에 두 대나 있는데 거기다 또 수 십만 원(그분은 구체적으로 50만 원짜리를 언급하셨다고 한다. 나도 남편도 그 정도 금액을 굳이 지불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자전거를) 들여 새로 사는 건 무리이고 그럴 필요도 못 느끼고, 가장 중요한 건 있는 자전거도 안 타는데 무슨 자전거를 새로 들이라는 건지 말도 안 된다고, 현재 내 상황에서는 살 필요도 없다고."
정말 나는 또 다른 새 자전거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비싼 천덕꾸러기를 그만 샀으면 한다.
사놓고 제값 못하고 화석이 되어 자리만 차지하는 그런 물건, 정말이지 그만 사고 싶다.
자전거를 산다면 차라리 내가 탈 자전거를 사고 싶을 지경이다.
"그리고 자전거를 같이 타는 게 목적이라면 지금 있는 자전거를 타도 되는 거 아냐? 새로 살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걸 어떻게 타? 오래돼서."
"오래됐다고 못 타는 건 아니잖아? 고장 났으면 고쳐서 타면 되고. 그리고 아예 안 탈 거면 버리든지. 타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고 그게 뭐야?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이사하고 6년 동안 한 번도 안 탔다는 건 탈 마음이 없다는 거 아니야?"
은연중에 내 속마음이 나와버렸다.
그렇잖아도 흉물스러워 치워버렸으면 했었다.
이사 오기 전부터 있던 거니까 10년 까지는 아니어도 꽤 오래되긴 했다.
그런데 6년 전에 이사 오고 난 후 남편은 바깥에 있는 자전거를 한 번도 타지 않았다.
옷도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으면 그 옷은 안 입을 옷이라는데, 내가 보기엔 남편이 자전거를 탈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제발 처분해 버리자고 틈만 나면 내가 애원했었다.
"나중에 탈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놔두자."
남편은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이사 오고 한 번도 안 탔는데 과연 탈 일이 있을까? 저러다 썩겠는데?"
차라리 아들이 타는 게 더 빠르겠다.
자전거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같이 탄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지하게 고민될 거다.
딱 두 개 중에서 고르면 되는데.
탈 건지, 안탈 건지.
"태도를 분명히 해. 그게 서로한테 좋은 거야, 괜히 여지를 주지 말고, 오히려 솔직히 말하는 게 처음엔 서운해도 나중에 보면 그게 더 나을 수도 있어."
"그래도 어떻게 그래? 조직생활하는 사람이."
"입으로 말하라니까? 내가 대신 전화해 주리? 그냥 깔끔하게 한 번만 서운해하고 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 생각엔?"
"그래도. 어떻게 그러냐고. 조직생활하는데......"
"이 양반이 듣자 듣자 하니까 조직생활 엄청 신경 쓰시네. 결혼 생활도 그렇게 끔찍이 신경 써 보시구랴."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조직생활이 다 그렇지 뭐. 싫어도 좋은 척, 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이 해야 하고, 원래 다 그런 거야. 그게 조직 생활이야."
남편은 태어나 한 번도 조직생활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사람에게 훈계하듯 내 앞에서 '조직생활학'을 강연하셨다.
그동안 내가 한 건 조직생활이 아니고 무엇이었나.
그러나 그에게 아내의 과거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만 사는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단지 지금은 '직장도 안 다니는 사람'일뿐이다.
"자전거 탄다고 하지만 자전거만 타겠어 단순히?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자전거를 빌미로 만나서 술 마시고 놀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런 의도도 약간은 있을걸? 술 굉장히 좋아하신다며? 내가 단순히 자전거 타는 것만 가지고 그러는 게 아니야. 저런 거 다 감당할 수 있겠어? 그것까지 다 감안하고 생각해 보라는 거야. 안 그래도 술 마시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거기서 술자리까지 따라가면, 어쩌다가 회식 때 술을 억지로 마시는 것도 치를 떨면서 싫어하면서, 회식도 아닌 자리에서 그걸 견뎌낼 수 있겠냐고?"
"아니, 감당 못해.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 싫다."
"그리고 자전거 타는 거 절대 내가 뭐라 하는 게 아니야. 운동 삼아 타면 좋지, 적당히는. 나도 항상 그랬잖아. 집에만 있지 말고 바깥바람도 쐬고 운동을 좀 하라고. 그렇지만 취미는 취미이고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해야 할 일은 분명히 해야 돼. 무슨 말인지 알지? 할 역할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쓰든지 난 상관 안 해. 본인 할 일은 하고 취미생활도 즐기란 거지. 결혼을 한 이상 공동체 생활이니까.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