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많은데 워크숍은 무슨 워크숍이야. 진짜 가기 싫다. 무슨 워크숍을 1박 2일씩이나 가나 몰라."
워크숍 일정이 잡힌 그 순간부터 그 남성은 집에 와서 연거푸 볼멘소리였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10박 11일도 난 좋아. 그 많다는 일 내가 대신이라도 해 줄게. 걱정 말고 어여 다녀와. 사람이 마무리가 아름다워야지. 그런데 빠지면 쓰나? 어차피 내년이면 헤어질 사람들인데 기분 좋게 다녀오시오."
라고 말할 뻔했다.
그 남성이 외박해서 좋은 날,
이 은혜받은 느낌, 뭔가 충만해지는 기분, 마음까지 따뜻하게 전해져 오는 온기, 온 집안이 내 것 같은 착각, 세상이 내게 주는 선물, 전부 어젯밤 단 하루다.
일부이지만 자식들 다 키워놓고 나서 '빈 둥지 증후군'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이 있다고 한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앞으로도 그럴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난 저게 무슨 소린가 싶다.
결혼은 했지만, 자식들이 있지만, 정말 나만 혼자이고 싶은 순간들이 꽤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전에 지인들과 얘기해 보면, 특히 워킹맘 시절에 같은 워킹맘들은 그런 시간들을 절절하게 기다려왔다.
물론 쉽게 허락되지 않는 시간, 꿈만 꿔 보는 시간들 말이다. 그런 건 자녀가 어릴수록 비려했다.
그렇다고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여성들에게도 그런 바람이 없는 것은 아니란 것도 잘 안다.
꼭 여성뿐이랴. 남성들도 마찬가지겠지.
아빠들도, 남편들도 아이들 없이, 아내 없이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픈 갈망 누구에게나 있겠지.
어울려 사는 생명들은 누구나 살면서 느끼는 그런 혼자이고 싶은.
2 주 전엔가 그 남성은 내게 통보했다.
"다다음 주에 워크숍 두 번이나 있어."
"그래? 어떡해? 그런 거 안 좋아하는 사람이 두 번이나 있어서?"
"나 진짜 그런 데 가는 거 안 좋아하는데 마지막이라 안 갈 수도 없고 진짜..."
그다음 말은 굳이 하지 않아도 같이 살면서 내내 하던 소리가 있었으므로 내가 그의 말을 댕강 자른다고 해서 큰 화를 입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도 마무리가 좋아야지. 눈 한 번 질끈 감고 다녀 오슈."
"아니, 1박 2일씩이나 간다고? 이게 웬 횡재냐! 뭐가 무서워서 워크숍을 못 가? 조직생활하는 사람이 그런데 빠지면 못써요! 나보고 맨날 뭐라고 그랬어? 사회생활, 조직생활은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고 가기 싫어도 가야 하고 어느 정도 비위도 맞춰줘야 한다고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사람이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지. 아무렴. 어디 못 갈 데 가자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직원들끼리 하는 워크숍이잖수. 그냥 마지막으로 한 번 어울린다 생각하고 같이 가. 지금 안 간다고 그러면 '어차피 앞으로 같이 일 안 할 거니까 이제 막 나가네.' 그런 소리나 들을 거야. 그동안 잘해 왔으면서 막판에 이럼 안되지 않겠어? 솔직히 좋아서 가는 사람 얼마나 있겠어? 그냥 다들 마지못해 가는 거지 뭐. 그 이틀 사이에 애들 데리고 어디 밤도망 안 갈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잘 다녀와."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걸 꾹 참았다.
참을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아내가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합법적인 그 남성의 외박.
나는 그 남성이 집에 없는 날이 좋다.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이유로는, 정확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단지 없으면 좋다는 거다.
뭐랄까,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맛지마니까야' 중에서)
환희심에 불탄다고나 할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남성은 잔소리가 많아지고 길어졌다.
그에 대항해 나는 굵은 소리만 짧게 하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만 잘되지 않는 법, 내 뜻대로 되지 않아 나도 사람인 것이다.
가볍게는 느닷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젖히며 음식의 보관상태라든지 유통기한이라든지 반찬들의 배열 순서라든지를 핏대 올리며 일장연설을 늘어놓으실 때면 나는 그만 좀 더 치밀하지 못했던 나의 살림 솜씨를 뒤늦게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집안 살림살이에도 살뜰히 간섭하시며 나투시는 데는 나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 때가 있다.
정작 그 남성과 내가 반드시 나누어야만 하는 알맹이 있는 대화는 오간데 없고 불요불급한 한낱 물건의 위치라든지, 미처 처리하지 못한 채 현관에 자리매김한 재활용품들의 안부와 아내 되는 사람의 나태함(항상 나태한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에 대한 지적질 따위가 어찌 그리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한 마디로 그 남성은 온갖 간섭과 잔소리를 일삼는 분이시다.
저런 모든 것들에서부터, 비록 하룻밤이긴 하지만 나는 한량없는 방만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 밤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다, 고 감히 불가능한 염원을 품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역시 신은 모든 걸 다 주지는 않으신다.
어제 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 남성은 집에 들이닥쳤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시겠다고 일방적이고도 기습적으로 제집 가정 방문을 하고 한 숨 주무시고 3시가 넘어서야 집을 나섰다.
나는 다만 조금 울적해졌다.
게다가,
‘내일도 그냥 일찍 빠져나와야겠어."
라며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는 그 말은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평화로운 나의 일상에 그 남성이 끼얹은 찬물이 뼛속까지 얼얼하게 시리도록 차갑다.
저녁 7시경, 나의 진심이 어떠한지 전혀 알 턱이 없는 그 남성은 무슨 사진을 전송해 왔다.
읽는 대신 살짝 옆으로 밀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나 혼자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눈치 없이 끼어드는 그 불청객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다.
10년 전쯤, 시험 합격을 하고 발령이 나기 전에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제주도로 홀연히 떠난 그 남성의 만행을 떠올렸다.
그때도 딱 이맘때였다.
첫아이를 임신하고 미친 듯이 입덧을 하느라 밥도 제대로 못 찾아 먹는 아내는 민원실에서 별의별 민원들을 다 상대하며 태교라고는 눈곱만치도 못해보고 일하랴 토하랴 정신없는데 자꾸 사진을 보내왔다.
그것은 사진 세례였다.
내가 요구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는 제주도 풍경 사진, 게다가 더 끔찍한 건 내가 결코 원한 적 없는 그 남성의 셀카.
일하기도 바쁜 근무시간에, 한가하게 여행 떠난 그 남성이 보내온 사진은 차라리 나로 하여금 더욱 격하게 토하게 만들었다.
정작 떠나고 싶은 사람은 나였다.
결혼하자마자 수험생이 된 그 남성을 일 년 가까이 뒷바라지 한 아내가 꿈꿔봄직한 사소한 욕심, 그 정도는 무리가 아닐 거라고 나만 생각했다.
가고 싶어도 못 가고 출근했는데 누굴 약 올리나?
사진에 대한 답장이 없자 그 남성은 줄기차게 전화를 해대기 시작했다.
아, 그때 나는 스토킹 신고를 했어야만 했을지도 몰랐다.(그 상대 남성이 배우자라는 점이 문제없이 받아들여진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