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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에 불 떨어진 공시생 남편에게 합격이의 의미

곧 나의 전부, 그의 전부

by 글임자

나는 이제 '합격이'를 품었고, 남편의 교육행정 시험 일정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저 사진은 딸이 태어나기 약 두 달 전 찍은 초음파 모습이다.

합격이는 병원에 가도 좀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남편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얼굴이 너무나도 보고 싶어 병원 가는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저 낙이라면 그 당시는 병원 다니는 일뿐이었다.

병원도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다니.


남편의 교행 합격 소식보다도 우선 내 아기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만 있다면.

첫아기이고 보니 모든 게 다 신기하고 궁금하고 기대되고 설레던 시절이다.

공시생 남편의 앞날은 이제 안중에 없고 저 아기 하나 잘 길러보자, 그 마음뿐이었으니.

합격이 덕분에 그 세월을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놀라운 사실은 저 모습 그대로 태어났다는 거다.

더 놀라운 사실은 나와 똑 닮았다는 것이며, 그보다 더 깜짝 놀라운 사실은 우리 엄마 옆에 있으면 나이 든 '합격이'가 보인다는 거다.

한마디로 외할머니, 엄마, 합격이 이렇게 셋이 있으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외가 3대가 완성된다.

이름하여 미녀 3총사라고나 할까?


가장 선명한 얼굴로 찍힌 저 태아 사진을 얼마나 보고 만지고 또 봤는지 사진이 좀 닳았다.

구김도 많이 생겼다.

요즘도 한 번씩 내가,

"이 사진은 누구의 사진일까요?"

이렇게 퀴즈를 내면 아이들은 서로 자기는 아니라고 한다.

엄마 눈엔 딱 보이는데 말이다.


어쨌거나, 남편의 교행 시험일을 두 달도 채 안 남겨 놓은 상태에서 나는 미친 듯이 입덧을 해가며 직장 생활하며 남편 뒷바라지(남들은 그것을 뒷바라지라 불렀다.)까지 하느라 정말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몸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온전치 못한(공시생이 있는 집안이니까) 상태라 그랬는지 힘들기만 한 나날이 이어졌다.

나의 임신 소식이 사무실에 알려졌고(그렇게 요란하게 입덧을 하는데 귀가 막히지 않은 이상 모를 수도 없다.) 그들의 간섭은 시작되었다.

그들은 '관심'이라 하고, 나는 '간섭'이라 한다.

그러니까 '관섭'이었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직원이,

"언니, 어쩌자고 임신했어? 형부 지금 공부 중이라며? 우체국 그만뒀다며? 대체 어쩌려고 그래?"

전 세계가 인구감소로 심각한 마당에 애국자라고 칭찬은 못해줄 망정, 산아제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닌데, 중대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 태교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니라.

내 중학교 친구의 친구의 여동생이다.

정말 좁다 좁아.


"남편은 공부하고 나는 아기 낳고 키우면 되지. 뭐가 걱정이야?"

"그래도 시험에 바로 붙을지 안 붙을지도 모르잖아."

맞아. 정말 그렇지.

하지만 그건 남편 인생이잖아.

"언니 혼자 벌어서 어떻게 애 키우고 형부 공부하는 거 뒷바라지하려고 그래? 내가 더 걱정이다. 언닌 걱정도 안 돼?"

"응, 난 걱정 안 돼."

"이 언니가 진짜 대체 어쩌려고 이러는 거야?"

"너 사무 분장표 좀 보자. 새로 추가받은 업무 있어? 내 일 간섭하기 끼워 넣어 놨어? 읍장님 결재까지 다 받은 거야? 나한테 협조 공문 요청하고 나도 경유하게 했어야지!"

이건 흡사 내가 결혼식 일주일 전까지도 살 집을 못 구해서 주위 사람들이 더 한숨 쉬던 그 사태와 비슷했다.

당사자인 나는 크게 걱정 안 하는데 남들이 더 걱정을 해 준다.

아무리 공짜라고 하더라도 어쩜 남의 걱정까지 그리 사서 하신답니까?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공부는 남편이 하는 거지."

그 직원 표정은 마치

'저 언니 대책 없는 것 좀 보소.'

하는 그런 얼굴이었던 것도 같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다들 그랬을 것이다.

보통의 새댁이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보통의 새댁도 아니고, 보통의 남편과 사는 사람이 아니다.

내 환경은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다.

결혼 일주일 만에 국가직 의원면직하고 지방직 교육행정 시험을 보겠다고 큰소리치며 자신 있게 수험생활로 뛰어든 공시생을 남편으로 둔 새댁이다.

저 남편과 살다 보니 그렇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래서 가정환경이 중요한 거다.

특히 신혼 환경 말이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보호색을 띠는 동물처럼, 남편과 생활하다 보니 그의 온갖 행태를 지켜보다 나도 보호색을 입을 것뿐이다.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짝 안 할 만큼 단련되어 있었다 이미.


"근데, 이제 합격이 태어나면 나는 찬밥 신세되는 거 아냐? 아기 태어나면 부인들이 아기만 신경 쓰고 남편은 완전 찬밥 신세가 된다던데? 설마 자긴 안 그러겠지?"

정확히 미래를 예측한 알파고 남편이다.

어디서 또 들은 얘기는 많이 있나 보다.

자신에게 불리한 건 그래도 얼른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다.

"어마? 그게 무슨 소리야? 자기가 왜 찬밥 신세야?"

교행 시험일까지는 최대한 자제하는 아내.

나는 태교가 중요하므로 아무 말이나 막 하면 안 되는 입장이었다.

그냥 남편에게는 말을 최대한 아껴야 해.

합격이가 다 듣고 있잖아.

"그렇지? 자긴 그렇게 안 할 거지? 그럴 줄 알았어. 합격이 태어나도 나 무사한 거지?"

아직 분위기 파악 못한 남편.

'분위기 파악하기' 국어 시험에도, 영어 시험 긴 지문에도 잘 나오는데 큰일이다.

아직까지 분위기 파악도 못한다.

국어 과락만 걱정할 게 아니라 영어도 불안하다.

저렇게 분위기 파악을 못해서야, 원.

"걱정 마, 자기가 왜 찬밥신세야? 찬밥신세 아니야."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자기밖에 없다니까."

"자긴 냉동밥이야, 냉동밥."

시기적절하게 진심을 전하는 아내.

적재, 적소, 적량, 적기에 용건만 간단히.


찬밥 냉동밥 가릴 처지 아니다.

우선 밥이나 하고 보자.

시험이나 붙고 얘기하자.

시험은 내일모레고 합격이는 다음 해 5월에 나온단다.

왜 또 엉뚱한 데서 장래를 걱정하는 건가.

지금은 장래 따윈 없다.

현재만 있을 뿐이다.

장래도 교행 합격해야 생기는 거란 말이다.

그리고 나 입덧 때문에 괴로운데 말 좀 그만 시켜라.

긴 말은 필요 없다.

난 임신부이고,

넌 공시생이야.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 태교에 방해나 하지 말아 줘.


엄마 목소리보다 아빠의 중저음 목소리에 더 아기가 편안해하고 유대감도 느끼며, 아빠 태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맨날 책을 보고 또 보면서,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낸 아이가 나중에 성공할 확률도 높고, 사회적 지위도 높은 데다가 수입도 더 많다는 통계, 어차피 남의 집 아빠만 할 그 행동, 그런 거 다 알지만 지금은 내가 긴 말 않겠어.

교행 시험 끝나고 집에 오면 그때 진지하게 회포 풀어 보자고.

어쩌다가 또 내가 아기의 출산 예정일보다 남편의 시험날만 더 기다리게 되었나.

하루빨리 시험을 치러버리고 내 입덧 뒷바라지 좀 해 줬으면 좋겠다.


공시생이 신경 쓰는 게 많아도 어지간히 많아야 내가 말을 않지.

남편을 노량진으로 올려 보내고 내가 딴 데로 이사를 가버렸어야 하는 건데.

이렇게 또 나의 분기 부부의 꿈이 멀어져 갔구나.

공시생 배우자가 있는 집은 법으로 강제 별거라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불편한 법 바꾸기'에 제안 한 번 해 봄직하다.


그래도 나의 작전대로 나의 임신으로 말미암아 남편은 조금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처음엔

"내가 합격하면 아기 낳기로 약속했는데 갑자기 이러면 내가 너무 부담스럽잖아."

이러면서 잔뜩 흥분하더니 말이다.

응. 맞아. 정확했어.

공시생 남편 부담 팍팍 느끼라고 내가 임신 계획한 거야.

그것도 철저한 계획임신으로.

요건 몰랐을 거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배후에 철저한 계획이 있었어.

남자들은 가족이 늘면 책임감이 커진다고 나도 어디서 들은 소리가 있다.

사실 확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참에 증명해 보이면 돼 남편아.


어느 정도는 사실로 드러났다.

남편에게 합격이는 보통 합격이가 아니다.

남편의 공무원 시험공부 촉진제로 한몫 단단히 하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다시 찾는 중요한 매개체이고 졸릴 때마다 정신 번쩍 나게 하는 각성제이기도 하다.

그 당시 남편을 떠올려 보면, 아기도 곧 태어난다는 부담스러움에, 교행 불합격이라도 하면 상상도 하기 싫은 암울한 미래가 크나큰 불안감으로 다가와 잠시도 손에서 수험서를 뗄 수 없었고, 찰나의 순간이라도 인강 보는 시간에 한 눈을 팔지 않았다...... 고 믿고 싶다.


태아 적부터 이 엄마에게 효도를 다 한다.

합격아,

어차피 우린 한 몸이란다.

나는 남편의 교행 시험 날 때까지 그저 태교에나 전념하고 무사히 살고 있으면 되었다.

이 정도면 나는 아주 남부럽지 않게 사는 사람이다.


요즘엔 아기를 원해도 바로 가질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은데, 비록 남편이 공시생 신분이기는 하나,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일삼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마음먹은 대로 아기도 갖게 되었으니 복 받은 사람이다.

좋은 것만 생각하자.

이왕이면 좋게 생각하자.

나는 좋다.

아주 좋다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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