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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의원면직 절차(2)-헤어지기로 해요, 우리

팀과 인사담당자에게 퇴직 의사 전달하기, 내 생애 가장 길었던 하루

by 글임자

금요일 밤에 내가 의원면직을 결정하고, 주말에 남편과 합의 보고, 그다음 주 월요일 아침 바로 사무실에 이 사실을 알렸다.

출근한 후 할까 퇴근할 때 할까 하다가 퇴근 때까지 도저히 못 기다릴 것 같아 출근하면 말씀드리기로 결정했다.

안 좋은 일일수록 한시라도 빨리 알려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물론 월요일 아침부터 모두들 혼란스러운 기분에 유쾌한 하루가 될 수는 없을 것이 뻔했지만.

그 점에 대해선 나도 진심으로 유감이지만.


8시가 조금 넘은 시각, 벌써 팀장님이 와 계신다.

거의 매일 일찍 출근하시는 편이다.

그날은 나도 좀 이르게 출근을 하고 마음 단단히 먹고 팀장님께 조용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산속 절간처럼 조용하기만 한 사무실이다.

다행히 다른 직원들은 아무도 없다.

단 둘뿐이다.

세 번째 출근자가 도착하기 전에 일을 해치워야 한다.


"팀장님, 저 사정이 있어서 일 그만두겠습니다."

휘둥그레진 팀장님의 두 눈.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개인 사정으로 퇴직하려고요."

"아니, 갑자기 왜 그래? 복직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지, 다들 '복직한 지 얼마나 됐다고?'라고 이 소리부터 시작하더라고요.


충분히 들을 법한 얘기, 예상 가능한 반응이다.

복직한 지가 얼마나 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의원면직을 하겠다고 결정을 했으니, 설사 복직한 지 하루밖에 안 지났다 하더라도 도저히 상황이 안 좋다면 일을 그만두는 수밖에 달리 다른 방법이 없지 않겠는가.

"느닷없이 무슨 일이야? 설마 공무원을 아예 그만둔단 말이야? 휴직이 아니고?"

"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너무 황당하다."

"죄송합니다. 복직하자마자 이런 말씀드려서. 하지만 지금 제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 일단 알았어. 과장님 오시면 다시 얘기하자."


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인데 당연히 팀에 피해를 주리라는 것은 잘 안다.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처럼도 보일 것이다.

내가 다른 직원들 입장이었다 하더라도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으로 생각될 것이다, 처음에는.

이제 새로 업무분장 다 하고 미칠 듯이 일에만 매달려도 바쁜 시기에 생각지도 못한 '퇴직'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하지만 오히려 차라리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결과가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되면 최대한 빨리 이 사실을 알리고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었다.

내 판단이 틀린 것일 수도 있고 이에 반대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 내린 결론은 그랬다.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이건 호랑이 장가가는 날도 아닌데 팀장님 입장에서도 정말 마른하늘 아래서 우르르 쾅쾅 날벼락 떨어지는 소리를 온몸으로 들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정년퇴직이 몇 년 안 남아서 명예퇴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3년간 육아 휴직하고 엊그제 복직해 놓고는 벌써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으니 어이없고 경황도 없었으리라.

정말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과장님께 말씀드려야 하는데 넘어가야만 하는 그 큰 고개가 배는 더 높아 보인다.

월요일이라 간부 회의 참석 차 군청에 가시고 사무실로 오시려면 아직 멀었다.


그렇게 사람 좋다고 직원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해 마지않았던 분인데, 내 공무원 인생에서 언제 또 저런 분 만나 볼 수 있나 싶게 기대됐던 분이기도 한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고, 남에게 싫은 소리 들을 수도 있는 건 당연하다.

과장님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첫아기 출산에 임박해 진통을 겪는 시간만큼이나 초조하기도 하고 걱정됐다.

그날 난 세 번째 진통을 혹독하게 겪은 셈이다.


9시가 좀 넘어 과장님이 오셨다.

팀장님이 간단히 내 '망언'을 과장님께 전달하고 나를 부르셨다.

곧바로 진심인 내 의사를 전달했다.

"과장님. 제 사정상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오자마자 분란만 일으키는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과장님 또한 어리둥절해하시고 황당해하시기는 마찬가지다.

저런 말을 심상하게 들을 사람은 이 세상에 없겠지.

"지금 나가면 어디 딴 데서 무슨 일을 다시 하기도 그럴 텐데. 어렵게 들어와서 왜 갑자기 그만두려는 건가?"

내가 다른 일을 하려고 그만두려고 하는지 오해라도 하신 걸까. 당시 오라는 데는 한 군데도 없었는데 말이다.

양반이시다, 역시.

붉으락푸르락 한 얼굴로 다짜고짜 화를 내며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 애들도 아니고 직장 생활 하루 이틀 해 본 사람도 아니면서 무작정 그만두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버리면 어쩌느냐고, 더군다나 이제 출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 하며 사무실 떠나가게 호통을 치셔도 다 감당해 내리라 마음먹고 갔던 차라, 계속 용기 내어 말씀드릴 수 있었다.

아, 대화란 게 되는 분이다.


"네, 지금 제 상황상 계속 출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하루 이틀 생각한 것도 아니고 충동적으로 결정한 것도 절대 아닙니다. 신중히 여러 번 생각하고 결정했고 남편과도 이야기 끝낸 상황입니다."

"그래? 오랜만에 출근해서 힘들 수도 있지. 그래도 하다 보면 차차 적응해 나가고 괜찮아질 텐데."

"일이 힘들다거나 그런 이유는 절대 아닙니다. 그런 이유라면 저도 시간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괜찮아지겠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고, 별개라서요."

사람들은 오해할지도 모른다.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일지도 모른다.

오랜 육아휴직 기간 끝내고 적응을 못해서 그러는 걸로 말이다.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걸로 오해하기 딱 제격이 시점이다.

그러나, 세상에 어디 안 힘든 일이 있다던가.

보릿고개보다도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 않은 공시생 시절도 다 지나온 사람인데 나도.

일이 힘들어서 그러느냐고요?

남들도 다 하는 일 저라고 못할 것도 없지 않겠어요.


닥치면 누구든 다 헤쳐 나가기 마련이다.

정말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라면 밤새워서라도 할 마음이 충분히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의 시간을 사서라도 일할 의향이 있다.

하지만 내 문제는 단순한 게 아니었다.

"오자마자 이런 말씀드리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직원들한테도 그렇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제 입장을 좀 이해해 주십시오. 저도 정말 괴롭습니다."

정말이다.

그 당시에 내 심정이 딱 그랬다.

당장 내 몸도 아파서 괴롭고, 이런저런 사정 일일이 다 설명해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직원들에게 불편한 얘기를 해야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내 마음은 해저 십 만리 밑으로 가라앉았다..

물론 이야기하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젠 서로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 될 텐데, 굳이 내 신상에 대해 다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저도 어렵게 공무원 합격해서 임용됐는데 이런 결정을 하기까지 경솔하게 생각했겠습니까?"

공시생 시절을 거쳐 여러 번 불합격도 해본 후에 합격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순간 충동적인 마음으로 그런 큰일을 결정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오해를 하든 말든, 그건 그 사람들 마음이니까, 당장 나부터 구해야 했기 때문에 충분히, 차분하게 내 입장을 전달했다.

"갑자기 이런 말씀드리게 돼서 팀장님이나 과장님, 직원들 모두 황당하시겠지만 이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제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도저히 결정을 바꿀 수는 없는가?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 어디가 아파?"

구구절절 다 말씀드리기도 그렇고,

"제 사정이 지금은 퇴직을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서요. 자세한 얘기는 드리기 곤란하지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몸이 아프면 일단 병가나 질병휴직 이런 거라도 좀 써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아니요. 저도 여러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팀장님은 옆에서 계속 한숨만 쉬고 계신다.

한숨에도 온도가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차디찬 서리가 내려앉은 한숨이었다.

살얼음까지 꼈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 마음.

하지만 지금 팀장님이나 과장님 입장까지 다 헤아릴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그분들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갈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가고, 그러고 남은 사람은 또 남은 사람들끼리 어떻게든 잘 살아질 것이다.

최대한 빨리 빠져주자.

질질 시간만 끌고 있다간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겠다 싶었고.

시간만 끌다가 어영부영 주저앉게 될 정도로 우유부단한 마음이었다면 애초에 의원면직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을 나였다.

남은 직원들도 다시 업무분장을 해야 할 것이고, 그렇기에 내가 얼른 가닥을 지어 줘야 했다.

갑자기 업무분장이 바뀌고 직원이 한 명 줄었으니 아마도 각자 맡은 업무가 하나라도 더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더 늦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이 일을 해결하고 싶었다.

직원들에게는 천하제일의 역적이 될지도 모르지.

나를 욕하고 물어뜯어도 이젠 어쩔 도리가 없다.


직원들 생각한답시고 내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가는 걸 알면서도 마냥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루 일하고 아프다고 쉬고, 나왔다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이도 저도 아니게 산다면 그야말로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정말 '버틴다'는 그 말, 버틴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그 힘이 나는 없었다.

당장 내 몸은 사그라져 가는데 단지 직원들에게 미안해서 꾸역꾸역 출근을 한다고 해서 그게 정말 직원들을 위하는 길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싶으면 일찌감치 선을 확실히 그어야 한다.


당시 그만두면서도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라고 말했지만 그런 말이 그들에게 무슨 소용이며, 그 무슨 위로가 되랴.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테고 그렇게 말하는 내가 밉기밖에 더하랴.

사람인데 그들도, 마음으로 나를 미워하고 욕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들은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도 다 감당하기 위한 자리는 마음 한쪽에 비워두었다.

각오한 일이니까, 어차피 한 번은 꼭 치르고 지나야 할 홍역이었으므로.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 그 마음을 그들이 조금이나마 알아주긴 하려나.

나는 나에게만은 한없이 관대했지만 남들은 내 맘 같지 알다는 것을 잘 안다.

새로 만난 직원들도 다 좋은 사람들 같았고 쭉 같이 일했으면 잘 지내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들과 불화가 있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도 아니니까 오해는 없길 바란다만.

팀과는 전혀 상관없이 순전히 정말 내 개인적인 사정이 원인이었으므로 남들은 쉽게 그 결정에 동의하기 힘들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래. 일단 알았네. 본인이 그렇게 원하는데 우리가 뭐라고 하겠어. 인사계에도 말해야겠네."

과장님은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딱 말씀하시고 더 이상 그에 관해 언급하지 않으셨다.

두 번째 큰 고개까지 넘은 셈이다.

한 고개 한 고개 넘어갈 때마다, 골 깊은 골짜기가 커다란 장애물이었다.

그래도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고개라 판단했으므로 그 고개에 들어선 것이다.

이젠 인사 담당자 차례다

팀장님을 거쳐 과장님께 말씀드리고 나니 마음은 한결 후련했다.

저런 얘기는 결코 꺼내기 쉽지도 않고, 어려운 윗분들만 대상으로 하는 법이니까.


자리에 돌아와 인사 담당자에게 메일을 띄웠다.

전화보다는 차분히 메일로 내 의사를 전달하리.

눈치도 없이 타닥타닥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침체된 팀 내 분위기 속에서 속절없이 경쾌하기만 하다.

바로 옆에서 팀장님, 과장님과 하던 대화 내용을 직원들도 다 들었으리라.

그렇다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다 결정이 되면 그때 정식으로 직원들에게 말하면 될 일이다.


서 너 줄로 요건만 확실하고 간단하게 작성해서 보냈다.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고, 같이 근무해 본 적도 없는 인사담당자에게 다짜고짜 보내는 첫 메일이 '그만두겠어요.'라니 파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이왕 시작한 거 망설이지 말고 하루에 다 마무리 짓자.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그래도 그렇지.

얼마 전에 내 복직 인사발령을 내준 인사담당자에게 단 며칠 만에 퇴직 처리를 요청한다는 일은 조금 가혹하긴 하다.

게다가 '최대한 빨리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라는 마지막 나의 간절한 마음은 어처구니가 없게도 보였겠지.

이제나저제나, 언제쯤 연락이 오려나.

13년 전 공무원 시험을 보고 합격자 발표를 기다릴 때도 이렇지는 않았다.


점심이란 걸 먹었다.

점심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그날의 점심시간은 영혼이 빠져나간듯했다.

입맛이 없다 없다 해도 그날만 했을까.

10분도 안 돼 대충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 들어갔다.

마음을 좀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전 직원회의를 할 때 사용하는 기다란 테이블에 팀장님과 과장님이 계신다.

그냥 바람이나 쐬러 밖에나 나갈걸.

역시나 낯빛이 매우 어둡다.

나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이젠 피할 수 없다.

"이리 잠깐 와서 차 한잔하자."

팀장님이 호출하신다.

물론 전혀 차 마시고 싶은 기분 아니다.

가보지 않아도 얼마나 가시가 뾰족하게 박힌 따가운 방석을 내어줄지 뻔한데, 굳이, 왜?

이쯤에서 그냥 나를 좀 놓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 임자 씨 이리 와서 차 한잔하지."

과장님까지 거드시는데 차마

"저는 지금 차 마실 기분이 전혀 아닙니다. 혼자 있게 내버려 두세요. 저 그만둔다고 했잖아요."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순순한 호의(라고 생각하기로 한다)인데 내가 무슨 수로 거절하겠는가.

결국 한자리에 세 명이 무거운 침묵만 지키고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 눈치인데 두 분 다 선뜻 내비치지 않으시네.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얼른 하시어요, 속 시원히.

자, 얼른 매를 드세요.


"임자 씨, 고향이 어딘가?"

역시 윗분이 먼저다.

대한민국은 연장자 우대 사회다. 동시에 계급 사회다.

"네, 거기입니다."

"거기 누구 과장님 사시는 데 아닌가?"

"맞습니다."

"맞다. 그분이 친척 된다고 하지 않았어?"

팀장님께서 한 마디 툭 던지신다.

"그러네. 조카라고 했지, 참."

과장님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는 듯 대화에 박차를 가한다.

엉뚱한 방향으로 대화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서로 변죽만 잔뜩 올리고 있다.

결국에는 아무 쓸모도 없을 무의미한 대화를 굳이 띄엄띄엄 이어간다.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따로 있으신 것 같은데 말이야.

나도 그런 눈치는 있다.

거기서 난데없이 왜 그 친척분이 나오냐고요.

임용된 그 첫날부터 퇴직하는 그날까지 그 굴레를 결코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란 말인가.

그냥 나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면 좋겠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어야 했다.


팀장님이나 과장님이나 내가 처음같이 일해 본 분들이지만(일해 봤다고 해야 고작 며칠이지만) 좋은 분들인 것 같았다.

역시 마지막 가는 날까지도 내가 사람 복은 있었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 두 분 입장에서는 사람 복(직원)이 없는 것이 되는 셈인가?


이야기가 간간이 이어지고 끊어지길 반복하는데, 구세주가 등장하셨다.

한 직원이 명랑하게 들어서며 분위기를 전환시켜 준다.

이내 다른 과 과장님께서 합류하시고 속으로는 곪고, 겉보기에는 화기애애한 대화가 이어진다.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이런 분위기 정말 불편하다.

내가 살면서 정말 불편했던 상황 중 몇 안 되는 그런 상황이다.

하지만 이 또한 견뎌내야 한다.

이 정도도 각오 안 했어?

별의별 상황 다 생각해 봤잖아?

그래, 이 정도는 양호한 거야.

아주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니야.

평균 이상은 되는 거라고.


분위기가 싸한 게 심상치 않아 보였는지 다른 과 과장님이 재미있는 농담도 하시고 말도 걸어 주시는데 그 모습마저 처량하다.

그렇게 1시가 다 되어갔다.

휴~ 살았다.

공직 생활하던 동안은 저 작은 바늘이 숫자 '1'로 마구 달려갈 때는 묶어두고 싶을 만큼 야속하기만 하더니, 지금에 와서는 2배속으로 빨리 돌아가진 못할망정 저리도 더디기만 하더란 말이냐.

설마 바늘이 거꾸로 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속시원히 정작 원하는 얘기는 두 분 다 못한 표정인데 공무원이 정식으로 오후 근무를 시작해야 하는 1시가 되자 더 이상 붙잡지는 않으셨다.

저 작은 시곗바늘 하나가 나를 붙잡았다가 놓아주었다가 한다.

조그만 것이 재주도 좋다.


자리로 돌아와 그제야 살 것처럼 숨을 쉬는데 1시가 조금 넘어 내 자리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안 봐도 인사담당자다.

비로소 올 것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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