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그 얘기는 없었던 걸로

정 뜻이 그러하시다면 조용히 따르리오.

by 글임자
23. 1. 3. 널 보면 나도 보내줘야 할 것만 같아

< 사진 임자 = 글임자 >


"거기 떡 같은 거 보내도 되나?"

"떡 보내게? 안 보내도 돼."

"얻어먹기만 하면 안 되지."

"사방에서 떡 들어오고 있어서 티도 안 나."

"누가 티 나라고 보낸대?"

"지금 보내봤자 누구한테 뭐가 왔는지도 몰라. 그냥 놔둬. 근데 웬일로 떡을 다 보낸다고 그래? 처음 있는 일이네. 나 승진할 때도 화분 하나도 안 보낸 사람이."


내가 임신했을 때 느꼈던, 저승에 가서까지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서러움, 그 사람은 승진 때 내가 화분도 하나 안 보내준 그 서운했던 마음이 그와 같았나 보았다.



엊그제도 그 사람은 손바닥만 한 이바지를 하나 들고 오셨다.

"새로 온 직원한테 들어온 거야. 애들이랑 먹어."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남편네 부서로 전입 간 직원에게 보내준 쿠키였다.

또 자기 몫을 안 먹고 챙겨 왔나 보다.

가만 보면 어쩔 때 그 사람은 자기 몫의 먹을거리를 안 먹고 챙겨서 퇴근 때 들고 오는 재미에 출근을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장면만 본다면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기침이 심해서 목이 찢어질 것 같은데 그 수분감 제로인 바삭바삭한 쿠키라니, 딱 안성맞춤이다.


동료들끼리 서로 승진하거나 발령을 받으면 으레 저런 아기자기한 것들을 보내주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잠깐 깜빡하고 있던 일이 생각났다.

남편도 새로운 근무지로 갔으니까 이번엔 내가 나서서라도 떡을 보내려고 마음먹고 있던 차였다.

새해부터 지독한 독감에 앓아누워 아무 정신도 없어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제는 작정을 하고 사무실에 보낼 떡을 어떤 것으로 할지 한동안 고민했다.

그런데 대충 거기 직원이 몇이나 되는지 그것도 아직 파악 못했다.

그 사람 몰래 주문해서 보내려고 했는데, 콩 한 조각은 나눠 먹을 수 있지만 인원수에 모자라게 보낸 떡 한 조각을 직원들끼리 나눠먹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인원 파악이 먼저였다.

화분은 좀 거추장스럽고 거기서 장수할 성싶지 않아 일단 화분은 제쳐두고 떡이 당첨된 것이다.


집 근처 떡집을 수소문했다.

그 옛날, 그 사람도 내가 근무지를 옮기거나 승진을 했을 때 떡도 보내주고 화분도 보내주곤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진심으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극구 말렸지만, 혼자 김칫국 들이키며 선수 쳤지만,

"알았어. 안 보내. 신경 쓰지 마."

이러면서 저런 것들을 보내온 것이다.

다른 직원들은 동기라도 여럿 있어서 동기들이 서로 챙겨서 꼬박꼬박 화분도 보내주던데, 나는 동기도 없으니 풀 한 포기도 못 받을까 봐 그 사람은 매번 그렇게 했다.


나도 전 근무지에서 고맙게도 같이 일하던 분이, 혹은 향우회에서라도 화분을 보내주시기도 했었다.

그런 거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받고 나면, 그래, 솔직히 안 받은 것보다야 기분이 좋긴 하다.

정말 승진한 실감이 나고 근무지를 옮겼다는 사실이 비로소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품앗이하는 셈이고 결국엔 다 빚이다.

가장 최근에, 그러니까 2018년에 승진을 했을 때 받은 화분들이 여태 무사히 생존해 있다.

그중에 남편이 보낸 것도 물론 있다.


"아무것도 안 들어오면 울어버릴지 모르니까 내가 화분이라도 하나 보내 줄까?"

"됐어. 언제부터 그런 거 했다고."

"이번 한 번만 하려고."

"됐어."

"집에 화분도 많은데 내가 하나 들고 가지 뭐."

"뭐야? 아서라 아서."

꽃집에서도 대충대충 성의 없이 기른 식물들이 있겠는가마는 몇 년간 내가 애지중지, 정말 온 정성을 다해 기르고 있는 우리 집 화분하고 달랑 돈 몇 만 원으로 해결한 배달되는 화분하고 어찌 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 사람만 괜찮다고 하면(그러나 결코 괜찮다고 허락할 사람은 아니다.) 나는 가장 그럴듯한 화분을 하나 골라 마치 내가 꽃집에서 배달 나온 것처럼 직접 전달해 줄 의향도 충분히 있었다.

어차피 얼굴만 가리면 누가 배달 온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의 근무지는 집에서 멀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입구에서부터 외부인은 출입금지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전에도 남편이 새로운 곳에 발령을 받으면 지인들이나 같이 근무한 적이 있고 조금 가깝게 지낸 직원들이 혹은 동기들이 개인적으로도 화분을 보내주기도 하는 것 같았다.

"어째, 화분이라도 하나 들어왔어?"

"응. 하나 왔어."

하나라도 와서 다행이네.

그럼 내가 떡을 주면 되겠다 싶어 꺼낸 말이었다.

코로나인데도, 옛날처럼 떡 돌리고 먹고 그러기도 하나, 괜히 잘 알아보지도 않고 섣불리 일 저질렀다가 핀잔만 듣는 거 아닌가 싶어 일단 사전조사부터 했다.


승진하고 발령받을 때 왜 화분을 보내주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그저 단순히 축하하는 의미인가?

전에도 직원들이 받은 화분이 사무실 여기저기에 넘쳐나고 둘 자리도 없어서 알게 모르게 방치되다가 결국엔 명을 달리 한 화분들을 꽤 봐왔던지라 새로운 화분이 도착할 때마다 그것을 마냥 이쁘게 볼 수만은 없었다.

축하 의미로 보내준 선물이 졸지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버린 느낌이랄까.

남의 앞으로 배달된 화분이라도 빛을 잃고 줄기가 꺾이면 내 마음이 다 아파지는 것이다.


그래도 생명이 있는 것이니 사무실에서 어정쩡하게 관리도 못 받고 시들해지느니 차라리 집에 데리고 와서 내가 책임지고 돌봐야겠다고 마음먹고 내 앞으로 들어온 화분은 무조건 집으로 챙겨 왔었다.

그 화분을 보내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성심껏 잘 돌봐야 할 의무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받은 화분들을 몇 년째 기르다 보니 잘 자라줘서 분갈이를 하고 또 해서 주위에 선물한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리고 지금도 그 화분들을 볼 때면 그것을 보내 준 그 사람 생각을 하는 것이다.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했던가.

어떤 여자는 (남자든 여자든) 화분을 제게 보내준 사람을 결코 잊지 못한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한 사람이 희미해지지 않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그 매개체가 화분일 때 나는 꽤나 강렬하게 그 사람을 내 기억에 새기는 것이다.


"진짜 안 보내도 돼? 나중에 안 보내줬다고 울지 마."

"괜찮아. 보내봤자 티도 안 난다니까."

이렇게도 강력히 만류하시는데 내가 어찌 그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나는 청개구리가 아닌 관계로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오래간만에 인심 좀 써 보려고 했더니 좀처럼 기회를 안 주신다.

안보내면 안보냈다고 뭐라 하고, 보내 준다니까 또 보내지 말라고 하고, 누가 뭐 티 내려고 보내나?

층층 시하 높으신 분들만 가득한 곳에서 최하위직에 속하는 그 사람 앞으로 배달된 떡 같은 것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또 한 번 어떤 기회를 잃었다.

다음에 떡 한 번 돌릴까 하는 그런 얘기는 승진 때나 나오겠지.

앞으로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나는 어제 떡을 주문하려다 말고 그런 생각을 했다.

'이거 한 번 배워서 직접 만들어 봐?'

그러나 잘 안다.

나의 충동 교육열에 망설임 없이 브레이크를 걸어 줄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쓸데없는 일 하지 마. 그런 걸 뭐 하러 배워?"

몇 년 전, 내가 '이미용'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자기가 집에서 머리 잘라 주니까 진짜 편하고 좋다. 기다리느라 시간 낭비도 않고 원할 때 바로 자를 수도 있고. 그때 배우길 진짜 잘한 것 같아."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발령이 나서 해가 바뀐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