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아들이 온 이유

내리사랑과 치사랑 사이에서

by 글임자
23. 1. 5. 치사랑의 진심

< 사진 임자 = 글임자 >


"밥은 먹었냐?"

"응. 대충."

"몸은 좀 더 낫고?"

"약 먹으니까 좀 나아졌어."

"아프다고 대충 먹지 말고 아플수록 더 잘 챙겨 먹어야 된다."

"아픈데 뭐 챙겨 먹을 정신이나 있수? 애들까지 아픈데."

"그래도 잘 먹고 푹 쉬고 그래야 얼른 낫지."


엄마는 며칠 전 내 전화 목소리가 전과 다른 것을 단번에 눈치채셨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자식의 사소한 목소리 변화조차도 절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나도 나지만 아이들까지 한꺼번에 아프다니 부모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외손주들을 그렇다 치더라도 마흔도 훌쩍 넘은 자식이 아프다니까 부모 된 마음에서는 어쩔 수 없는 근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 번 아프면 정말 호되게 앓는다는 것을 잘 아시니까.

진심으로 목소리에서 걱정스러움이 묻어났다.

그 옛날 10 년도 더 전에도 그랬었다.


2011년 첫째를 임신 중에 나는 급성신우염을 앓았다.

그렇잖아도 입덧 하나만 가지고도 미칠 것 같았는데 반갑잖은 손님이 들이닥친 것이다.

나는 태어나 그런 고통은 처음 겪어 봤다.

전에도 한 번씩 심하게 아플 때가 있긴 했지만 그때는 약이라도 독하게 써서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필 임신 중에 급성 신우염이라니 때를 잘 못 만난 것이다.


평소 나는 건강 관리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건강에 좋지 않은 생활은 가능한 한 하지 않는 편이었고 음식도 가려 먹는 편이었다. 게다가 임신 중이었으니 평소보다 더 조심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출근 잘하다가 갑자기 극심한 통증이 찾아와 결국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매일 울며 지냈다.

당장 죽을 만큼 아픈데도 임신 중이라 약도 함부로 쓸 수 없으니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의사 선생님께 제발 이 고통을 없애 달라고 애원했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체 모를 알약 한 알만 처방해 주는 일뿐이었다.

임신이고 뭐고 아기고 뭐고 그때는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아 내 아픔만 덜어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선생님, 이거 먹어도 아기한테 괜찮은 건가요?"

본능적으로 묻기도 했다.


남편이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며 먹어도 차도가 없는 그깟 약은 또 무슨 소용인가.

자식 대신 아프고 싶어하는 부모는 있을지언정 아내 대신 아프겠다고 나서는 남편은 없었다.

"아직 출산은 안 해봤지만 이건 출산의 고통보다도 더할 거야 아마."

내가 그렇게 고통을 호소하면 남편은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조금만 더 참아.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고통이란 게 참을 수 있는 한계란 게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참고 싶다고, 참으란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란 말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어."

아기를 가진 엄마란 사람이 저런 몹쓸 말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저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되고만 싶었다.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심정을 절대 모른다.

오죽했으면 저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을까.

그땐 정말 진심이었다.


매일 병원에서 아파 울고 있는 내 옆에서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그 고통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보다 못한 남편이 엄마를 모셔왔다.

그렇게까지 심각한 줄 몰랐던 엄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음은 물론이다.

평소 어지간해서는 아프다는 말도 잘 안 하는 나였고, 엄마였다.

그런데 그때는

"아파 죽겠다."

라는 저 말이 시도 때도 없이 나왔다.

아파서 주책없이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나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그 아픔이 눈물이 되어 자꾸만 흘렀다.

"엄마, 나 정말 아파 죽겠어."

"어쩔거나, 어쩔거나..."

뿌연 눈물 사이로 내 손을 꼭 붙들고 함께 눈물 흘리는 엄마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던가.


'세상에서 가장 마음 아픈 게 자식 아픈 걸 보는 것이다.'

태어나 처음 본 그날의 엄마의 눈물이 이를 증명해 주었다.

그리고 나도 두 아이를 키우며 때때로 경험하곤 한다.

그래서 차라리 엄마가 아팠으면 아팠지 자식만큼은 아픔 없이 크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엄마, 많이 아파? 괜찮아?"

다행히 아이들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듯했고 여전히 내가 맥을 못 추고 있자 아들이 조용히 내 옆에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이제 곧 나을 거야."

아들의 얼굴은 뭐랄까.

마치 아픈 자식을 내려다보는 근심스러운 부모의 그것이었다.

내리사랑만 안쓰럽고 위대한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어린 자식이 다 큰 어른인 엄마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그 마음이 나를 또 울컥하게 했다.


"엄마 며칠 잠을 못 자서 혼자 가서 잘게."

"엄마. 엄마 아프고 열나면 내가 간호해 줄게. 엄마도 나 아플 때 잠 안 자고 해 줬잖아."

"어린이가 어떻게 힘들게 간호를 해?"

"괜찮아. 어차피 방학이라 학교도 안 가잖아. 밤에도 할 수 있어."

아이라 가능한 말일까?

남편에게서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간호 백지 수표'를 받았다.

갑자기 억만장자가 된 기분이다.


신은 세상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보내셨다.

나는 깨달았다.

세상 모든 아내 옆에 항상 남편을 둘 수 없어서 아들을 보내셨다...남의 아들은 출근해야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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