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다정한 남매처럼.

건망증도 뛰어넘은 모정

by 글임자
23. 1 18. 아직은 소박한 아이들

< 사진 임자= 글임자 >


"난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나 봐, 엄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이렇게 착한 엄마한테서 태어났잖아."

"어머나. 세상에 만상에! 우리 아들은 어쩜 말을 그렇게 예쁘게 할 수 있지?"

"정말이야 엄마, 우리가 엄마한테 태어난 건 정말 복 받은 거야."

"우리 딸이 그렇게 얘기해 주니까 엄마가 더 행복하다."

"내가 엄마 자랑을 친구들한테 얼마나 많이 한다고."

"그래? 친구들한테 엄마 자랑을 다 했어, 우리 아들이?"

"응. 날마다 해."

"엄마야말로 우리 아들 딸이 엄마 자식들이라 정말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워."


느닷없이 전생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복 받은 사람임을 확신하는 아이들 덕분에 어제도 우리 집 점심 식탁은 한층 더 화기애애했다.


그러니까, 저렇게 말을 하게 된 데에는 원인이 있었다.

며칠 전 딸이 먹고 싶다던 빵을 마침 내가 생각나서 사 왔고, 그 빵 위에 생크림을 바르고 딸기를 잘라 올려서 간식으로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어제 오래간만에 그 체험활동을 한 것이다.

세상 간단하며 어려울 것 하나 없고 큰돈이 들지도 않는다.

사실 재료만 제공해 주면 둘이 알아서 지지고 볶고 하기 때문에 나는 편하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가정 체험학습이란 명목하에 저렇게 길을 들였던 것이다.

나 좀 편하자고, 솔직히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이렇게 딸기를 직접 잘라서 생크림 위에 올려 먹는 게 정말 좋아."

딸이 선구자의 면모를 보이면 맹목적인 추종자가 언제나 뒤따르기 마련이다.

"나도 직접 한 번 잘라서 해 볼래."

떼려야 뗄 수 없는 원 플러스 원.

벤치마킹 하는 사이, (이럴 때는) 사이좋은 남매 사이.


"역시 엄마는 착해."

"엄마가 착한 것 같아?"

"응. 내가 그 빵 먹고 싶다고 말 한마디 했는데 엄마가 사 준 거잖아."

"우리 딸이 먹고 싶다는데 그까짓 거 하나 못 사주겠어? 엄만 만들어 줄 수 도 있어. 전에 엄마가 만들어 준 적도 있었잖아."

"맞아. 난 그냥 한 말인데 엄마가 안 잊어버렸잖아. 엄마는 건망증도 심한데. 나이도 많고."

"나이 얘긴 지금 이 상황에 꼭 필요한 것 같지는 않다마는, 엄마가 건망증이 심하긴 해도 우리 딸이 한 말은 잘 기억하고 있었지."

"그래서 엄마가 착하다는 거야."

"그런 거였어?"

"그래도 엄마가 내가 한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사 줘서 고마워요."

"엄마는 항상 우리 딸이 하는 말은 잘 기억하고 있어."

그거 빵이 비싸봐야 얼마나 한다고(사실 비싼 것도 아니지만) 마침 남편 이발을 해 주고 거금 15,000원도 받았겠다 아이들에게 선심을 썼다.


"누나, 엄마는 우리가 먹고 싶다는 건 다 사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사주고 만들어 주잖아. 그래서 엄마가 착하다는 거야."

"우리 아들도 엄마가 착하다고 생각해?"

"응. 그래서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과연 아이들이 착하다는 말의 정확한 뜻을 알기나 하는 걸까?

지금 이 상황에 어울리는 적절한 표현인 걸까?

얼마 안 가서 금세 여자친구 생기면 이 엄마는 금방 뒷전이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최소한 '소학'이라도 본 아이면 좋겠다는 케케묵은 소리는 아직 할 때가 아니다.

정확한 뜻을 모르면 어떻고 적절한 표현이 아니면 어떠리.

우리 세 사람의 진심이 서로 전해졌으면 그만이다.


부모와 자식 간, 나야말로 전생에 무슨 복을 그리도 많이 지었길래 저렇게 어여쁜 아이들을 둘이나 낳았단 말인가. 아마도 복만 짓고 평생을 살았나 보다... 하다가도 잠깐 한 사람이 떠올랐으니...

역시 신은 공평하시다.

모든 복은 다 주지 않으시는 것 같다, 고 혼자만 아이들이 눈치안채게 생각했다.

어차피 그 누군가도 동감이라고 외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비긴 걸로 치자, 서로.

이 두 아이들만으로도 충분히 복된 인생이다.

정말이지 더 무엇을 바라랴.

자식 키우는 재미, 이런 게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여기서 더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겠지.


금을 준들 너를 사랴,

은을 준들 너를 사랴.
먼 훗날 언젠가 질풍노도의 그들을 보며 아련한 기억을 더듬을 때, 가물가물한 지난날이 정말 있었던가, 꿈이었던가 헷갈릴 때, 그때 한 번 더 꺼내서 확인해 볼 증거자료, 그것을 또 하나 더 확보했다.


더불어 (지극히 아이들 입장에서만) 비록 나이도 많고 건망증도 심한 엄마지만 어젯밤에는 얼마 전 딸이 언급한 '휘핑크림'을 전리품마냥 또 사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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