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묻은 엄마가 O 묻은 남매를 나무란다.

남매의 벼락치기 혹은 방학 처세술

by 글임자
23. 1. 29. 아들의 벼락치기는 오점을 남기고

< 사진 임자 = 글임자>

"엄마, 어떡해. 이제 행복 끝이야! 내일이면 개학이야."

"축하해, 얘들아!(=이제 엄마의 행복이 시작될 때도 됐다.= 어서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그날이 오면' 이 엄만 기쁨에 겨워 정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련다.)"

딸은 어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울상이었다.

겨울 방학 마지막 날을 기념하여 실컷 게으르게 늦잠을 자고 9시가 되기 얼마 전에 일어나 호들갑을 떨며 제 동생과 '세월의 무상함'에 대하여 논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진짜 빨리 가, 엄마."

"그래도 지금은 천천히 간다고 느낄 거야. 정말 엄마 나이 되면 순식간이야."

"그래도 너무 빨리 지나갔어."

"그만큼 우리 합격이가 엄마랑 방학 때 재미있게 잘 지냈단 거 아니겠어?"

"그렇긴 하지."

"혹시 그런 말 들어 봤어? 10대 때에는 10km 속도로 시간이 가고, 20대에는 20km 속도로 가고 그 나이대별로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말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만큼 나이가 들면 시간이 점점 더 빨리 간다고 느껴진다는 말이지. 엄마도 요즘 그걸 자주 느껴."

"그건 말이 안 되지. 시간은 항상 똑같이 가는 건데."

"말이 그렇다 이거지."

엄마가 하는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는 듯, 이해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딸에게 나는 또 어떤 증거 자료를 남길 필요가 있어 보였다.


불과 한 달 전에 나는 방학 증후군에 벌벌 떨며 어떻게 저 남매들을 건사해야 하는가 고심했었다.

물론 아이들이 극성맞다거나 내게 무언가를 요구한다거나 내 손길이 시시각각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기저귀 뗀 것도 꽤 오래전 일이고, 이유식 끊고 사람 밥을 먹은 지도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 책임지고 자식들에게 꾸준히 해야만 하는 무엇이 분명히 있기 마련이다.

물론 동거하는 사람은 별로 알아채지도 못하는 그 어떤 것 말이다.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개학,

무엇보다도 점심 한 끼라도 덜 하게 된다는 점에서 무한한 자유로움마저 느끼는 바이다.

양심도 없이 '이왕 점심해 주시는 거 아침밥도 좀 학교에서 어떻게 안될까' 하며 터무니없는 욕심을 냈던 적이 있었다.

그러려면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급식실의 모든 분들께 조용히 사과합니다...

단지 생각만 해봤어요.

생각은 해 볼 수 있잖아요.

남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새벽부터 점심 준비를 하신다고 했다.

방학 중에도 한 번씩 출근을 해서 일을 하신다고도 했다.

세상 고마운 분들이 급식실의 모든 분들이다.


"얘들아, 방학 시작했으니까 앞으로 신나게 놀고 싶으면 숙제를 미리 다 해치워버리는 게 어때?"

"엄마, 천천히 합시다. 금방 할 수 있어요."

딸이 거드름 피우며 대답했다.

"그래, 엄마. 나도 숙제 별로 없어."

아들이 누나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응원했다.

이렇듯 남매는 언제나 원 플러스 원이다.


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아이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자신의 일들을 하도록 최대한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고 나는 생각하지만 아이들 입장도 들어봐야 하긴 할 것이다.

굳이 중간중간 언급하지 않아도 '스스로 어린이들'이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느슨하게 해 주었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어제저녁 7시가 훌쩍 넘은 순간까지도 느슨히 지내고 있었다.


"우리 아들, 내일이 개학인데 준비는 다 됐어?"

"무슨 준비?"

"숙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 그거? 아직 시간 남았잖아."

아들은 태평했다.

"엄마, 원래 방학 숙제는 마지막에 몰아서 해야 제맛이지."

딸은 동생의 방만함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래. 숙제를 안 해가서 선생님께 꾸중도 듣고 그러기도 하는 거지 뭐. 제 인생인데 내가 어디까지 다 간섭할 수 있겠어?'

이런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는지 방학 마지막 날이 몇 시간 남지 않은 시간에도 남매는 방학 숙제는 뒷전이다.

이젠 슬슬 벼락치기에라도 돌입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초조한 건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도 지난 나 한 사람뿐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일 챙겨가야 될게 뭐지?"

"난 아무것도 안 가져왔어. 가져갈 거 없는데?"

나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게 틀림없는 딸은 건망증이 좀 있는 것 같다.

"아, 맞다. 실내화! 실내화 빨았어야 했는데..."

방학식이 있던 날 아이들 실내화를 두 켤레 받은 기억이 있다.

내가 더 마음이 급했다.

"얘들아, 할 일이 있으면 미리 해 두면 마음도 안 급하고 편해.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일찍 해버리는 게 나아. 나중에 급히 하려고 하면 정신도 없고 실수도 하고 그런 법이야. 숙제도 미리 해 놓고 노는 게 어떨까?"

이렇게 말해 왔던 나였다.

역시 난 언행불일치의 대표적인 엄마임에 틀림없다.


방학식을 한 그날 바로 실내화를 빨아 두려다가(언제나 마음은 있으나 실천이 따르지 않아 문제인 것이다.) 한 달도 넘는 긴 방학 동안 그거 두 켤레 빨 시간이 없겠나 싶어 귀찮아서 미루고 계속 잊고 있었던 것이다.

신발장에서 부랴부랴 실내화를 꺼냈다.

한 달씩이나 더 묵혀두는 바람에 깊고도 구수한 맛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숙성이 아주 잘 됐다.

"참, 얘들아! 엄마가 너희 방학 동안 발이 커질지 몰라서 한 치수 더 큰 걸로 실내화 사 둔 거 있는데 그거 신고 갈래?"

어차피 새 실내화는 준비되어 있었고 발에 맞기만 한다면 나는 저 잿빛 투성이를 닦지 않아도 될 터였다.

나름 신선한 발상이라고 나 혼자만 만족하며 아이들에게 제안했다.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를 억지로 제 발에 꿰어보며 행여나 했던 새언니들만큼이나 나는 간절했다.

'제발 발에 맞았으면, 그러면 나는 실내화 빠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

하면서 은근히 바랐던 것이다.

"엄마, 이거 너무 크잖아. 그냥 옛날 실내화 신고 갈래!"

둘 다 실패다.

역시 꼼수는 안 통하는 게 세상사다.

그래, 얘들아.

너희는 숙제 마저 하거라.

엄마는 실내화를 세탁하련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함은 안타까우나, 방학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변함없는 진리는 반갑고 고맙고, 희망 그 자체다.


* 어젯밤 남매는 취침 시간에 임박해 숙제를 급히 마쳤고, 아들은 서두르다가 다가오지도 않은 2월 일정까지 선행학습해 버렸다.

더불어 나는 다가오지도 않은 봄방학을 두려워하고 있다, 벌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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