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면 무조건 다 공개해야 하나요?
공직자 재산 등록
22. 12. 19.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재산 의무 공개라네."
뒤져봐야 나올 것도 없는 재산을, 그것도 내 것까지 조회하겠다고 했다.
'공직자윤리법상 재산 등록을 위한 정보제공 동의서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문자가 도착했다.
3년 전이었던가?
육아 휴직 중이었을 때도 군청에서 연락이 왔었다.
"주사님, 이번에 직원들 재산 등록하는데 주사님 동의서가 필요해서요. 동의서 보내드릴 테니까 서명해서 보내주세요."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지금까지 공직생활하면서, 그것도 육아휴직 중인데 저런 전화는 처음 받아봤다.
하도 흉흉한 세상이니 또 의심이 들었다.
요즘 사기꾼들은 하도 교묘하게 사기를 잘 치기 때문에 내 직장이 어디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다 알고 있을 거야.
빼내갈 것도 없는 재산이지만 혹시 모르니까 일단 알았다고 다시 연락을 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동안 한 번도 저런 경우가 없었는데 갑자기 왜 재산조회를 한다고 저러는 거지?
그렇게 따지면 남편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리 직렬이 다르다지만 여태 남편에게서는 저런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때가 마침 한창 공무원들(물론 아주 높으신 분들이 사고 친 결과로) 재산 조사를 하고 어쩌고 시끄러울 때였다.
아마 전 공무원들에게 들이닥친 바람이었던가 보다.
"나 연락 왔더라? 느닷없이 내 재산 조회한다고 동의서 보냈던데?"
"갑자기 왜?"
"나도 모르지. 거긴 그런 말 없었어?"
"우린 그런 얘기 안 하던데?"
"그래? 이상하다? 할 거면 다 같이 할 것 같은데."
"몰라. 아무튼 우린 별말 없었어."
남편도 모르는 얘기라 하고 나도 임용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 계속 찝찝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의심은 많아가지고 전화를 받고 곧장 동의서를 내지 않았다.
다음날인가 독촉 전화가 왔다.
"주사님, 어제 동의서 메일로 보내드렸는데 아직 안 보내주셔서요. 제가 좀 급해서요."
"아, 깜빡했어요."
일단 시치미부터 떼고 봤다.
"근데 왜 갑자기 이걸 하는 거예요?"
"최근에 뉴스에서 그럴 일이 있어서 전 직원이 다 하는 거예요."
역시 사기꾼은 철두철미하다.
시사성 있는 이슈를 절대 놓치는 법이 없다.
속아 넘어가기 딱 좋다.
하지만 귀신을 속이라지.
나는 쉽게 안 속아 넘어갈 테다.
회신해 달라는 메일 주소를 보니 공직자 메일이 맞긴 한데, 요즘 보통 무서운 세상이어야 말이지.
내가 그 사람이 누군 줄 알고 내 개인 정보를 다 보내준단 말인가. 이미 내 개인정보가 어딘가에서 다 줄줄 새고 마음껏 악용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마당이지만 확실하지 않은 일에 소중한 내 정보를 다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최근에 임용된 직원인지 정말 사기꾼인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었다.
내가 의심할 만한 정황은 충분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그 직원은 사기꾼이 아니라 멀쩡한 공무원이 맞았고 신규자였으며 과연 전 직원들 재산 조회하느라 한창 동의서를 받고 있다고 했다.
잠시이긴 하지만 애먼 사람을 의심했던 거 뒤늦은 사과를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지방직 공무원만 해당되는 사항이었는지 남편은 그 뒤로도 별말이 없었다.
뒤져봐야 내게선 실망스러운 결과만 나올 텐데...
그래도 재산이라고 하면 하다못해 적금 통장 하나라도, 아파트 공동 명의라도 있었으면 덜 민망했으련만.
육아휴직자까지 굳이 챙겨서 동의서를 보내고 돌려받고 하는 그런 수고로움이 무색하리만치 나는 너무나 청렴결백했다.
아니 무일푼에 가까웠다고 해야겠지.
이미 육아휴직 기간 동안에 받을 수 있는 1년간의 휴직 수당은 기원전 3,000년 경에 다 받아서 수입이라고는 1원도 없었던 때다.
전에 어느 직원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경리 업무 맡으면 나랑 배우자까지 재산 조회 다 들어가거든. 근데 보니까 남편이 나 몰래 대출받은 거 있지."
엉뚱하게 배우자의 대출 이력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재산조회라는 것이 어디까지 해당사항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뜻밖이었다.
투명 지갑이라고 하는 그 월급도 남몰래 어찌해 볼 수 없는 마당에 배우자의 비밀스러운 대출까지 알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되다니. 가정불화 일으키기 딱 좋다.
정작 샅샅이 조사하고 뒤를 캐봐야 하는 건, 힘없고 가진 것도 없는 하위직 공무원들(물론 하위직이라고 해서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이 아니라 저기 저 높은 곳에 계시는 그분들(그들도 모두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지만)이 아닐까.
없는 살림에 보태 줄 것도 아니면서 무슨 형식만 그렇게 갖추고 따지는지,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하는 그분들은 법대로 잘 따지고 있기는 하는 걸까.
이젠 어디서 내게 대출해 줄리도 만무하거니와 그전에라도 남편 몰래 대출 같은 걸 하지 않았던 게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저런 동의서 없이 갑작스레 내 전 재산을 조회한다고 해도 하나도 거리낄 것이 없는 내 처지를 떳떳해해야 하나, 민망해해야 하나...
내가 가진 것은 없지만 남편은 과연 뭘 얼마나 가졌는지 문득, 살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