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말의 양심을 남편에게 요구한다.
< 사진 임자 = 글임자 >
"사진 바꿔야 하는데 말이야."
"조직도 말이야?"
"응."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설마 아직도 안 올렸어?"
"아니, 올리긴 올렸는데..."
"사기 쳤다고 항의 들어왔구만? 징계받아야지. 무기징역이면 좋겠다."
"응. 너무 나 같지 않다고 바꾸라고 해서."
"그럴 줄 알았어. 그 사진은 진짜 아니라니까. 예전에 10년 전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야."
"별로 차이 없는데?"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어쩜 그런 사진을 올렸어 그래?"
"얼른 새로 올려야겠다."
"사진 보고 사람 얼굴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절대 아무도 못 찾을걸? 바로 옆에 있어도 못 알아보고 찾고 다닐 거다, 아마."
외벌이인 만큼 '감봉'부터는 아니 될 말이다.
이건 무슨 '숨은 얼굴 찾기'도 아니고 사진과 실물이 어느 정도는 일치해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그 옛날 사진을 또 써먹었어?"
"뭐 어때?"
"어떻긴? 몹쓸 짓이지."
"나랑 비슷한데."
"벌써 10년도 훨씬 전이잖아. 어쩜 아저씨가 사람을 그렇게 얼토당토않게 다 뜯어고쳐 버렸나 몰라."
"아닌데? 비슷한데 그러네. 얘들아 이리 와 봐. 이게 누구 같아?"
철없는 어린것들이 급히 소환됐다.
아이들은 갸우뚱하며 선뜻 대답을 못했다.
"아빠, 근데 이 사람 누구야?"
"잘 봐봐."
"누군데? 음, 일단 아빠는 아니고."
그쯤에서 남편은 멈추었어야 했다.
을지문덕이 수나라 장군 우중문에게 보냈다던 '여수장우중문시' 비슷한 거라도 내가 한 수 지어줬어야 했으려나?
지나친 보정은 자식이 제 아비 얼굴도 못 알아보게 만든다.
"거봐. 애들도 못 알아보잖아."
"잘 봐 봐, 얘들아. 아빠랑 닮지 않았어?"
"아닌데? 아무튼 아빠 얼굴은 아니야. 이 사람 근데 누구야?"
"그래? 그래도 조금은 비슷하긴 하지?"
"전혀 아닌데? 아빠가 아는 사람이야?"
순수한 아이들의 양심 고백 앞에서 차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남편은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그 사진은 한 번도 OOO 씨였던 적이 없었어.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말이야."
"그렇게 안 닮았나?"
"안 닮은 정도가 아니라 그 사진은 다시 태어난 거야, 다른 사람으로."
" 그 정도야?"
"응. 그 정도야!그리고 인간적으로 10년 넘었으면 한 번 바꿔줘야 하는 거 아냐?"
이 정도까지 말했으면 현실을 직시할 만도 하건만 남편은 보정을 넘어 대수술에 가까워 보이는 그 사진 앞에서 세 멤버가 '그 사람은 이 사람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는 그 상황을 여전히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고 나는 느꼈다.)
동시에 나도 그런 말 할 입장은 못된다는 양심의 꿈틀거림을 직감했으나 굳이 남편에게 알릴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공무원에게는 실제 외모와 흡사하게 사진 찍을 의무는 없으렷다?
하지만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나는 남편의 옛 증명사진을 볼 때마다 느끼고 말해 왔다.)으로 전락할 정도로 너무 다듬은 사진을 사용하는 것은 그 여러 가지 의무 중에 그 언저리라도 위배되는 것이 있지는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내가 보정해 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아저씨가 알아서 해 줬어."
라며 관심도 없고 믿지도 않는 그 말을 남편은 내게 종종 했다.
사진관 아저씨의 지나친 친절이 빚은 참사는 서무의 '사진 반려'로 끝을 맺었다.
여태 나는 저런 사례를 본 기억이 없다.
전에도 임용 당시의 풋풋한 사진으로 공직생활 내내 조직도에 자리 잡고 있는 사진들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국가직 공무원으로 임용되고 공무원증에 당당히 그 사진을 올리는 그의 당돌함에 내가 다 당황스러웠다.
국가직을 그만두고 교육행정직에 합격했을 때도 전혀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예의 그 사진을 다시 소환하던 그의 대범함에 경악스럽기까지 했다고 하면 과장이 심하려나?
나는 언제나 말해왔다.
"제발 그 사진은 쓰지 마. 그 얼굴은 이 얼굴이 아니라니까!"
차라리 그 사진 속의 남정네처럼 현실에서도 그러하였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하고 간절히 남몰래 바라기도 했던 건 무덤 속에서나 고백할 나만의 비밀이다.
남편의 사진만 본 사람이 행여라도 나와 나란히 걸어가는 남편을 본다면 내가 외간 남자를 만나고 다니는 게 아닐까 하며 남편에게 급히 제보하기 딱 좋다면 말 다했다..
어지간해서는 반려되지 않을 증명사진이 먼 길을 돌아 원래 주인의 품으로 안전히 돌아왔으니 새로운 사진을 입력해야 했다.
새로 올릴 사진을 두고 고심의 시간을 보냈다.
무슨 탤런트 공채 시험을 치를 것도 아니고, 이미 결혼한 몸이니 선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 사진을 뿌리고 다닐 일도 없는데(혹시 모르지, 남편의 숙원사업이 그것일지도), 어찌하여 남편은 밤늦도록 사진에 저리도 집착하는가.
우여곡절 끝에 '그나마' 괜찮게 보이는 것으로 낙찰한 후 그 사진을 보고 또 들여다 보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자기랑 같이 하니까 금방 했네. 내가 이런 일로 자기한테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네."
"육아 휴직 때 컴 배우러 가서 알았어."
"아무튼 덕분에 빨리 끝났다."
"그런 의미에서 만두 어때?"
"좋지!"
기다란 시곗바늘은 9시 30분을 조금 넘겨 가리키고 있었고, 초저녁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남편이 컴맹에게 도움을 받는 날이 다 오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정말.
"근데 이것도 좀 이상하네. 다시 자기 핸드폰 줘 봐."
"나 배터리도 없어. 적당히 좀 해!"
매직아이도 아니고, 자꾸 들여다보고만 있으니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하겠지
그리고 잘 생각해 보시구랴, 사진이 이상한 걸까 원판이 이상한 걸까.
나는 왠지 알 것도 같은데...
천만다행으로 때마침 꼴딱꼴딱 숨넘어가던 배터리가 사진의 늪에서 나를 구해 주었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남편은 무언가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나의 이상형(은 결코 아닌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