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니 이젠 나와는 상관없을 별나라 세상의 이야기가 되었고 그쪽 일에 점점 깜깜해지는 것 같다.
4년 전 통장에 찍힌 것을 마지막으로 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름도 어여쁜 그것, 한 번씩 남편이 이렇게 고해성사를 하지 않는 이상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불길함이 언뜻 스쳤다.
"생각보다 등급 잘 받았네?"
"나도 기대 안 했는데 잘 받은 거 같아."
"근데 왜 성과급 받았다고 이제 얘기해?"
"나도 어제 알았어. 너무 바빠서."
"그래? 좋겠다. 그럼 내 성과도 좀 쳐 줘야 하지 않겠어?"
"얼마면 돼? 10만 원?"
"아니, 하루 일당 말고 성과급 말이야, 성과급!"
"알았어, 보내 줄게."
그냥 냅다 지른 말이었는데, 얼떨결에 받았다.
한참 후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확인을 했다.
혹시라도 15만 원 정도가 입금됐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있을 법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감히 기대할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0'을 한 번 더 터치하는 자비를 베푸시사 100만 원이 잘못 입금됐다면,
"어머, 역시 자기가 최고야. 한 번씩 엉뚱한 소리 해가면서 내속 뒤집을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은 다 있었구나?"
라며 눈 한번 질끈 감고 이 남자가 세상 최고(당연히 유효기간은 있다, 물론 그 기간은 찰나겠지만)라고 추켜 세워줄 의향이 살짝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단 1원어치의 오차도 없다.
실수라고는 없는 매정한 사람, 어쩜 손가락 터치 한 번 한 번도 그렇게 정확하신지 대바늘로 찔러도 검지로 터치 한 번을 더 안 할 사람이다.
무정한 사람 같으니라고...
"나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고 고것도 사고 요것도 샀어."
"갑자기 뭘 그렇게 많이 사셨어? 무슨 돈이라도 벌었어?"
공무원 월급 뻔한 거야 나도 잘 알고, 사업하는 사람도 아니니 더 이상 어디서 추가로 나올 구석이 없다는 것 또한 빤히 잘 알고 있는데, 웬 쇼핑을 또 그리하셨단 말인가.
쇼핑에 언제나 진심인 그 남자, 우리 집 남자다.
"성과급 들어왔더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남편은 쇼핑 리스트를 읊어대다가 느닷없이 성과급 커밍아웃을 해버렸다.
"그래도 아빠가 작년에 열심히 일해서 등급도 잘 받고 이렇게 성과급도 많이 받았네. 고생했어."
나의 이 말 한마디가 봇물을 터뜨려 두 아이들은 성과급이 뭔지도 모르면서 열에 들떠 금액이 얼마냐, 그러면 우리 엄청 부자가 된 거 아니냐(설마 그럴 리가?), 아빠 진짜 대단하다(아무렴, 대단하시지, 성과급 들어오자마자 마구 물건을 사들이는 일에 솔선수범 하시어 이 나라 경제가 잘 돌아가는 데에 한몫 하셨으니) 등등의 말을 쏟아냈다.
물론 그곳의 근무평정 방식과 등급의 정도와 그에 따른 성과금액의 차이가 어떠한지를 (지금은 다 잊었지만, 물론 정확하지도 않지만 ) 어렴풋이 기억해 내서 설명해 주는 일은 내 몫이었다.
우리 집 가장이 그처럼 든든해 보이고 기특해 보인 적이 일찍이 없었다, 근래 100년 이내에는.
내게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와는 별개로(나는 공과 사를 구분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성실함 같은 것을 높이 산다. 그러려고 노력한다. 분명 그는 애쓰며(동시에 가끔 내 속을 박박 긁어가는 일에도 애쓰며) 살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어디까지나 가장으로서 말이다.
내게 성과급이라는 명목하에 입금해 준 그 금액이란 것도 그렇다. 시치미 떼고 안 줄 수도 있었으나, 흔쾌히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희망 비슷한 것을 보았다(고 나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