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숍이라는 비상근무
술, 커밍아웃, 외부인 출입금지
23. 2. 10. 본인은 위 회사와 무관함< 사진 임자 = 글임자 >
"진짜 어떡하지?"
"벌써 걱정이야?"
"저녁에 모여서 술 마실 거 같은데."
"그냥 술 취한 척하고 다 엎어버리라니까?!"
"정말 그렇게 할까?"
"내가 따라가 주리?"
"오긴 어딜 온다는 거야?"
"왜? 내가 창피해? 부인이라고는 절대 안 할게."
"아이고 됐네, 이 사람아."
몇 주 전에 남편은 곧 워크숍이 있을 거라며 미리 통보해 왔다.
이렇게 듣기에 아름다운 통보가 또 어디 있을까.
하느님이 보우하사, 부처님의 자비가 있으신 결과, 자그마치 1박 2일짜리였다.
남편은 그날이 오지 않기를 바랐고, 난 그날이 어서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근데 몇 명이나 가?"
"우리 팀은 거의 다 가."
"그럼 일은 누가 하고? 하긴 거긴 민원인이 오는 데가 아니지 참."
"아무튼 거의 다 간다고 보면 돼."
"그래도 필수요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과거 나는 걸핏하면 필수요원이었다.
말이 좋아 필수요원이지 그리 대단한 요원은 못된다.
그냥 만만한 게 필수요원이었으니까 말이다.
전 직원들이 거의 다 가는 교육에 필수요원이라는 굴레 때문에 사무실을 지켜야 했고, 옛날 옛날(임용된 후 처음 몇 년 정도) 종무식이나 시무식 때도 그런 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과거 생각을 하며 그곳도 필수요원이 남아서 사무실을 지켜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쓸데없는 남의 직장 걱정이다.
"거의 다 간다고? 그럼 사무실이 텅텅 비겠네?"
"그렇지."
"그래?"
"응. 그건 왜?"
"평소에 거기서 못살게 굴거나 힘들게 한 사람 없어? 누구야? 말만 해."
"그런 사람?"
"어차피 다 교육 가고 없다면서. 이참에 내가 그 자리 정리 좀 해 줄까?"
남편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대답 대신 온 얼굴로 화답하는 이 남자,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은가 보다.
그러면서도 끝내 그 누구라고는 지목하지 않았다.
대신 곧 닥칠 그 워크숍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오래간만에 바깥바람도 쐬고 좋지 왜 그래?"
"가면 저녁에 또 술 마실 것 같으니까 그렇지. 다들 술을 얼마나 잘 마시는지 몰라."
"적당히 시늉만 해."
"그게 그렇게 되나 어디. 자기도 일해 봤으면서 그러네."
"난 안 먹겠다고 하고 안 마셨는데? 요즘 누가 억지로 권해?"
"여긴 또 달라. 그리고 자긴 여자잖아."
"그럼 하는 수 없지. 이참에 사실대로 말해.드디어 때가 왔어."
"뭘?"
"커밍아웃하는 거야."
"무슨 말이야?"
"나 사실은 여자다. 이렇게 밝히라고."
"하여튼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그래도 여자한테는 좀 덜한 것 같더구만. 옛날에 나 근무할 때도 보면."
"하여튼 가끔 보면 자긴 이상한 소리 잘하더라."
"그러니까 잘하라고. "
"사람들이 다들 술 좋아하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럼 술 마시고 취한 척하고 행패 부려버려. 미친 척 한 번 해.(사실 미친X 아닌가 하고 때마침 의심하고 있던 차였을지도 모르잖아?) 술상 다 엎어버려! 못 볼 꼴을 보이는 거지. 다시는 같이 술 마시자고 못하게 말이야. 대신 한 번 할 때 제대로 잘해야 돼. 어설프게 했다가는 역효과만 나니까."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고역이라니, 말해 무엇하랴.
나나 남편 모두 술을 멀리하는 사람들이라 애주가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굳이 이해랄 것까지도 없다.
정확히는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서 술자리를 만들고 그 자리에 굳이 끌고 가는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야 맞겠다.
"근데 또 무슨 택배가 왔더라. 그건 뭐야?"
"응. 이거 숙취해소용이야. 하나씩 드리려고."
"아이고, 술 마시기 싫다면서 다른 사람들 숙취해소까지 생각해 주시는 거야?"
졸지에 운전기사가 되어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목캔디를 잔뜩 사들인 데에 이어 이번엔 저 물건이다.
술 마시는 건 싫지만 숙취해소는 해야 한다.
술자리에 부르는 분들은 싫지만 그들의 속은 달래주고 싶다.
뭐 그런 마음일까?
이거 너무 충직한 거 아닌가? 혼자만 생각한다.
큰일이다.
이러다 너무 총애받는 거 아니야?
그러다가 맨날 술자리에 부르면 어쩐담?
그나저나 정리해 주겠다고 큰소리(=세상 쓸데없는 소리) 쳐놓고 1층 출입구에서부터 제지당하게 생겼다.
그곳은 신분증 없이는 '외부인 출입 금지'라 했는데.
나도 부인은 부인인데 말이지.
출입을 제지당하는 외부인과 어느 부인의 동병상련.
그리고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 없고 오로지 어느 때보다도 비상사태가 안타까운 그 부인의 남편이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