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었다.'라고 하고, 너는 '살쪘다.'라고 한다
부기와 살 사이 어드메쯤
23. 2. 2. 8년 전 어느 계장님의 선물<사진 임자 = 글임자 >
"요즘 얼굴 좋아졌다. 살 좀 찐 것 같은데?"
"누가? 내가?"
"응. 진짜 얼굴에 살쪘어."
"별소릴 다 듣겠네."
나는 태어나서 얼굴에 살이 쪘다는 말을 남편에게서 처음 들어봤다.
"얼굴이 왜 이렇게 상했어? 무슨 일 있어?"
이번 설 연휴에 시가에 갔을 때 둘째 시누이는 나를 보자마자 대뜸 이렇게 말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며칠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그 시누이의 동생이란 사람이 내게 얼굴이 좋아졌다는 둥 얼굴에 살이 쪘다는 둥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나를 누군가와 혼동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얼굴에 살만 좀 더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남편이 내게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저것이다.
"안 그래도 광대도 안 나오고 얼굴도 밋밋한데 그 광대뼈 좀 나한테 줘 봐. 두 개니까 하나는 좀 이식해 줄 수 있잖아."
내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는 또 이것이다.
예로부터 부부는 '이식동체'라 하지 않았던가.
나는 얼굴에 굴곡(?)이 그렇게 있는 편은 못 되는 반면 남편은 광대가 좀 나온 편이라 그게 늘 부러웠었다.
나에 비하면 그의 광대는 태산만큼이나 높다.
여간해서는 남의 외모를 부러워하지 않는 성미지만(부러워한다고 해도 내가 그 사람이 될 수는 없는 법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남편의 그 광대만은 종종 탐이 났다.
그러나 자고로 아내의 굴곡 없는 밋밋한 얼굴을 못마땅해하는 남편은 있어도 자신의 광대뼈를 깎아 아내에게 이식해 주는 남편은 여태 보지 못했다,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이래로 말이다.
"살이 찐 게 아니라 부은 거야."
"아니야. 진짜 전하고 달라. 정말 살쪘어."
"내가 독감 때문에 물을 하도 많이 마셔서 부은 거라니까!"
"거울 봐봐."
"아니, 나보고 얼굴에 살 좀 찌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젠 살쪘다고 타박이야?""
"살찌니까 보기 좋다고."
얼굴에 살이 찌는 법도 있다던가?
경험한 지가 하도 오래돼서 전혀 모르겠다.
오랜만에 저울 위로 올라섰다.
그 저울은 친절하게도 음성지원까지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어느 계장님이 선물해 준 것이다. 아이들보다는 내가 몇 배는 더 자주 올라간다.
우리 집에 놀러 왔던 직원들이 무심히 올라섰다가 우렁차게 폴리 또는 로이가 발표하는 몸무게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내려오곤 했던 것이다.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몸무게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공시생 시절 무조건 먹고 자고 공부했을 적에 순식간에 7KG 이 쪄서 답답했던 때가 떠올라 몸서리쳤다.
물론 '순식간에 쪘다.'는 말은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무분별한 음식 섭취가 시나브로 나를 살 찌웠을 것이다.
10년 만이다.
결혼 후 첫째를 막 임신했을 때의 그 몸무게와 비슷했다.
그러고 봐서 그런지 정말 얼굴에 살이 찐 것도 같았다.
남들은 밤늦게 라면 같은 것을 먹고 자면 다음날 얼굴이 붓기도 한다는데 나는 라면을 두 봉지나 끓여 먹고 바로 기절해도,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한 그릇 먹고 다시 잠들어도 얼굴이 붓는 그런 축복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물을 많이 마셔서 얼굴이 부은 것이 아니었나?
참,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해서 맹물은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아(평소에도 비위가 약한 편이고 아프면 더 요란스러워진다.) 요령껏 먹는다는 게 생강차, 자몽차, 레몬차, 모과차 등 가내수공업으로 비치해 둔 것들을 모조리 먹어 치우긴 했다.
각종 차를 만드느라 설탕을 꽤 썼다.
그래도 몸에 흡수가 덜 된다는 '자일로스'를 믿었었는데, 그 요사스러운 것이 배신이라도 했단 말인가.
그럴 리는 없다.
자일로스 설탕은 무죄일 것이다.
태곳적부터
"나는 물만 먹어도 살쪄."
라고 말하는 보통의 여성들이 하는 양심선언의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내가 남편에게 했던 말마따나 다만 물이 얼굴의 부기에 적잖이 이바지했을 것이다.
평생 살이라곤 찔 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한 달 만에 1KG이 쪘다.
나는 더 이상 남편에게 광대뼈를 깎는 고통 같은 것은 강요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자기는 지금 상태에서 5KG까지 더 쪄도 돼."
라며 심심찮게 말하는 남편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소리에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졌을 때 과연 그가 언행일치의 태도를 보일 것인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근데 자기는 5KG까지 가기도 전에 살찌면 답답해서 못 살 사람이야."
라고 정확히 내 성향을 꿰뚫는 그 사람,
10년 넘게 살았다고 이젠 나를 좀 안다, 고 생각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