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즉문즉답-기승전'동안'

대화 칼로리가 '0칼로리'

by 글임자
23. 2. 24.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 살 좀 찐 것 같지 않아?"

"살이 찐 것 같은 게 아니라 쪘어."

"요즘 배가 좀 나온 것 같지?"

"배가 나온 것 같은 게 아니라 배도 나왔어."

"많이 안 먹는 편인데 그러네."

"하긴 아침에 밥 한 그릇 먹고 입가심으로 요구르트에 과일 좀 섞어 먹는 거면 많이 먹는 것도 아니지. 입맛 없을 땐 밥도 한 끼에 한 그릇만 먹잖아."

"근데 요즘 이상하게 배가 나오는 것 같단 말이야."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 배는 전부터 나와 있었어."

"아니야. 요즘 더 나온 것 같단 말이야."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기 쉽지 않아. 그나저나 배 나오면 안 좋다잖아. 빼긴 해야 할 텐데. 뱃살은 한 번 찌면 진짜 빼기 힘든데. 배 나와서 좋을 건 하나도 없어.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빼야 돼."

"자긴 다른 사람들 배 못 봐서 그래. 아저씨들 배 많이 나온 사람들도 많아. 밖에 나가서 봐봐. 나 정도면 하나도 안 나온 거야. 그리고 내 나이에 이 정도면 진짜 뱃살도 없는 거야. 중년 아저씨들 배 봐봐."

"남의 집 중년 아저씨들 배를 내가 왜 봐?"

"아무튼 배 많이 나온 사람들에 비하면 나 정도면 양호한 거야."

"요즘은 나이 들었다고 다 배 나오지 않았어. 다들 얼마나 몸매 관리 하는데 그래? 나이 들수록 더 운동하고 살도 빼고 그러던데? 내 주변에는 배 나온 중년 아저씨들은 없는 것 같아."

"진짜 뱃살 있는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나왔어."

"근데 나도 요즘 배가 좀 나온 것 같아. 신경 좀 써야겠어."


이쯤에서, 내 배는 내 배고 이젠 당신 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고 제안해 오기 전에 나는 미리 선수를 쳤다.

"그래도 자긴 나이에 비해 배도 안 나온 편이야."

라고 남편이 은근히 나를 추켜세웠으나( 내 또래의 기준이 되는 여성이 누군지 늘 궁금하다.) 나는

"자기야말로 그 나이에 그 뱃살이면 애교야 애교. 그 정도 살도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뱃가죽이 등가죽에 달라붙으면 못써. 아이고 생각만 해도 숭허다 숭해. 두둑하니 배 나와 있으니까 인간미 있어 보이고 얼마나 좋아? 그 정도면 아주 양호해!"

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설날 아침도 아닌데 서로

"자기 배는 양반이다. 그 정도도 없으면 인간미가 없어."

라며 덕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기엔 현실은 인정사정없었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고 했겠다?

서로에게 한 명쯤은 현실을 직시하게끔 할 수 있는 말을 해줄 필요가 있었다.

아이를 둘이나 출산한 경력을 강력한 무기로 삼아, '내 나이에 이 정도의 몸'은 충분히 그러려니 할 수 있는 거라고, 누구는 출산하고 바로 빼지 못한 살(임신 때 부은 몸이 그대도 유지되고 있다며)과 여태껏 함께하고 있다고, 주위의 극히 소수 사례의 예를 최대한으로 과대포장하는 것을 나는 잊지 않았다.

역시나 자신들에게만 관대한 부부다.


"그래도 내가 어려 보이긴 한가 봐."

"어디서 또 해괴망측한 소릴 듣고 오셨수 그래?"

"사람들이 다들 나 총각인 줄 안다니까."

"그건 본인 희망사항 아냐?"

"총각인 줄 알았는데 결혼했다고 하면 다들 놀라."

"노총각이라고 생각했나 보지."

"첫째가 올해 5학년 된다고 했더니 그렇게 큰 애가 있냐면서 깜짝 놀라더라니까."

"용케 결혼도 하고 자식까지 있다고 해서 놀란 거 아냐?"

"아무튼 너무 어려 보여도 큰일이야."

"전혀 어려 보이지 않으니까 큰일 아니야. 작은 일이야."

"사람들이 외모만 보고 나 40대로 안 봐."

"50대로 보지?"

"아니! 30대로 봐."

"아, 130대?"

"이렇게 젊게 보이면 안 좋은데. 일할 때 그래도 나이가 좀 있어 보여야 하는데."

"충분히 나이 들어 보여. 걱정 마."

"그런 의미에서 흰머리는 그대로 둬야겠어. 이젠 이발할 때 흰머리 정리 안 해줘도 돼."

"흰머리 난다고 염색해야겠다고 호들갑 떨 땐 언제고?"

"젊게 보이는 것도 피곤하네."

"남들은 별로 그렇게 생각 안 할 텐데. 남이 나이 들어 보이든 어려 보이든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 없다잖아."

"아니야. 일할 때는 어려 보이면 불리해."

"지금 자긴 그 누구보다 유리해. 아무 걱정할 것이 없어. 두 다리 쭉 뻗고 주무셔도 돼."

"앞으론 좀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해야겠어."

"거기서 더 나이 들어 보이면 곤란할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은 나를 어리게 보는 걸까?"

(진심으로 생각되지 않는) 남들의 달콤한 말 한마디에 날숨에도 갈대가 흔들리듯 남편은 어린애마냥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집에 사는 나만이라도 현실을 직시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남편은 자신을 한없이 관대하게 대하고 있다.

가끔은 나도 나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지만 너무 꿈속을 헤매는 것만 같다.

하루는 이건 배가 하나도 안 나온 거라 말하고, 다음날엔 뱃살을 빼야겠다고 변덕을 부리는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어서 빨리 깨어나기를, 그가 그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 뭍사람들의 말은 그저 별 뜻 없이 지나가는 말로 한 소리였음을 알아차렸으면...

그는 아마도, 사선으로 서서 거울 보기를 꺼리는 것이다.

혹은,

나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다.

어쩌면 그가 나 몰래 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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