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도 받고 과태료 고지서도 받고

멤버들의 계산법

by 글임자
23. 2. 17. 월급날의 부록

< 사진 임자 = 글임자 >

"오늘도 택배가 또 왔네. 그리고 고지서도 왔네."

"어디서?"

"어디긴 어디야? 죄지은 곳에서지. 거긴 왜 간 거야?"

"아, 거기... 그때 교육받으러 갔다가."

"오늘 월급도 받고 딱지도 받고. 이래저래 받은 게 많은 날이구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남편이 남의 지역에 세금(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헌납을 하신다.

물론 가끔은 거주지에도 하신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으나 널리 타 지역의 재정을 이롭게 하리라는 굳센 의지의 이타주의자인 남편은 올해도 가뿐히 4만 원짜리부터 시작하셨다.


이틀 전 외출 후 돌아오니 현관에 웬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우체국에서 등기 배달을 못해 남긴 메모였다.

등기는 어디서 받을 일이 없는데, 그리고 나는 그런 문자도 미리 받지 않았으므로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둘 중 한 명인데, 나 아니면 남편...

수신인이 남편 이름으로 된 것을 보니 일단 내 일은 아니었다.

"아, 그거요. 어디 경찰서에서 온 것 같던데요."

친절한 그분은 마침 내가 궁금해하던 찰나, 살며시 알려주셨다.

그렇잖아도 너무 궁금해 대강이라도 그 실체를 파악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전화를 하니 다음날 우편함에 넣어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문자로 그런 내용을 보내달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경찰서에서 남편에게 올 게 뭐가 있을까?

나 몰래 무슨 큰 사고라도 쳤나?

이젠 혼자서 가정 경제를 꾸려야 하므로 책임감이 막중하다며 매사에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자꾸 그러던 양반이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을까나.

다른 곳도 아니고 경찰서, 경찰이라는 말만 들었도 괜히 움츠러든다.

아마도 털어보면 미세먼지 저리 가라 하게 먼지 구덩이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 지었는지도 모르지만 왠지 지은 죄가 조금은 있을 것만 같다.

특히 남편은 더 그럴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에게 미리 알려야 하나? 마음의 준비라고 하고 있으라고?'


불안한 마음에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서에서 오는 등기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세상은 넓고 나처럼 지레 겁먹은 질문자들은 많고도 많았다.

여러 답변들이 있었다.

무슨 출석 요구서 이런 것도 있었고, 받아 봐야 아는 거지 받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또 어떤 이는 경찰서라면 일단 좋은 일은 절대 아니라며 나의 불안감을 더 가중시켰다.

퇴근한 남편에게도 그 일에 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자고 나면 알게 되겠지.

어제 우체국에서 다녀가는 시간이 지나고 우편함으로 내 불안의 정체를 찾아 나섰다.

어디서 많이 보던 행색이다.

남편은 기어이 해내셨다, 올해도.

주정차 위반 과태료 고지서였다.

내가 사는 지역은 그냥 일반 우편으로 잘도 오더니 다른 지역은 성실하게도 등기로 발송을 하는가 보았다.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대낮에 그 지역까지 누구랑(누구랑 과연 갔는지가 가장 관심사였다.) 뭐 하러 가서 엉뚱한 곳에 주차를 한 거냐고 긴급 속보를 알려주었다.

"교육 갔을 때야. 남들도 다 주차해 놨길래 나도 해도 되는 줄 알고 했지 뭐."

군중심리에 너무나도 치명적으로 영향을 받는 이 남성.

그러나 아내에게서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미스터리한 남자다.

"그러니까 내가 그때도 미리미리 일찍 준비하고 가라니까. 일찍 가야 주차할 자리도 하나라도 생기고 안전한 데다가 주차하지."


그날 일이 떠올랐다.

시간이 아주 넉넉히 있었는데도 미리 나서지 않고 여유를 부리던 한 남자가 있었다.

"미리 가 있어야 되는 거 아냐? 등록도 하고 하려면. 가서 기다리는 게 낫지. 급하게 가지 말고."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기어코 사달은 났구나.

"얼마짜리야?"

"4만 원."

"그래도 싸네. 어쩔 수 없지.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

조심해야겠다고는 했지만 미리미리 준비해서 가겠다는 말은 끝내하지 않았다.


"싸기는 뭐가 싸? 40만 원이라도 돼야 속이 시원하겠어? 세상에서 저런 돈이 제일 아까워. 차라리 어디에 4만 원을 기부했으면 기부했지 굳이 안내도 되는 돈을 내게 생겼잖아. 내가 말을 하면 좀 들어라 들어! 하여튼 내 말은 진짜 안 듣는다니까."

라고는 나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자진납부하면 32,000원이네. 별로 안 비싸네."

라고 말하는 그 양반 앞에서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점포 정리. 마지막 떨이 상품 20% 세일!'

고지서가 이런 전단지라도 되는 듯 퇴근하자마자 챙겨서 그는 그 기회를 놓칠세라 결국 잽싸게 성실 납부하셨다.

뉘 집 남편인지 성실성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얘들아, 아빠가 주차하면 안 되는 곳에 주차를 해서 돈을 4만 원 내야 되게 생겼네. 너희도 나중에 조심해."

"또? 그럼 아이스크림이 몇 개야?"

아들은 아이스크림을 계산하고 있었다.

"정말? 치킨이 두 마리는 되겠는데?"

딸의 아쉬운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러게. 엄마가 추어탕 두 그릇은 먹을 수 있겠는데 말이야."

각자, 이번 불미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놓쳐버린 무언가에 골몰했다.

"어쩌겠어. 이미 일어난 일인데. 속상해한다고 있었던 사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다음엔 안 그러면 되지. 그치 얘들아?"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 4만 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수 십 개의 아이스크림과 치킨과 추어탕과 맞바꾼 그것, 단란한 한 가정의 간식비를 앗아간 그것,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구나.


그 양반은 월급날 월급만 받을 수는 없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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