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공개수업에 드레스 한 벌 어때?
어떻게 안될까?
2023. 4. 13. 학부모 공개수업 예고<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휴, 학부모 공개 수업에 간다고 했는데 입고 갈 드레스가 없네. 어쩌지?"
"무슨 소리야, 또?"
"이참에 한 벌 장만해 줄 생각 없수?"
"옷장에 널린 게 자기 옷이잖아."
"솔직히 널리진 않았지. 걸리기만 했지. 안 그래?"
"자기 옷 많잖아!"
"어떡하지, 간다고 했는데 옷이 없어서 못 가게 생겼으니..."
"출근도 안 하는 사람이 무슨 옷이야?"
내 그럴 줄 알았다.
다 알면서도 그냥 해 본 소리다.
일종의 '밑져야 본전' 수법이다.
다만, 그 수법이 상습적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결코 그럴 리가 없겠지만,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옛날처럼 주책맞게 어떤 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어 찰나의 실수로,
"그래. 그까짓 거 한 벌 해 입어!"
라고 그 양반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도 할까 봐 한번 해 본 말이다.
그가 전날 과음한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고, 아직 술이 덜 깼다면(과음한 아빠들이 숙취해소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들에게 용돈을 과감히 쥐여주기도 한다는 그런 선량한 미풍양속을 나도 '감히' 경험할 수 있지나 않을까 해서) 그 알코올의 힘을 교묘하게 이용해 이번 기회를 노려봄직도 하다, 고 나만 생각했다, 아니 착각했다.
일을 그만두고 나니 정말 돈을 쓸 일이 없어지다시피 했다.
무언가를 살 일도 없어졌고(엄격히 말하자면 사회활동과 관련된 그런 종류의 것 말이다.) 사고 싶은 마음도 사라져 버린 듯하다.
이렇게 지구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되는 건가.
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아무것도 안 사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사되, 굳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소위 예쁜 쓰레기라는 것들) 가능하면 안 사게 되는 것이다.
과거 별생각 없이 사들였던 못된 습관을 이제 와 참회한다.
그렇다고 해서 또 내가 무분별한 소비를 해왔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한때 나는 어떤 면에서 지구를 너무 많이 아프게 한 일에 무심코 동조했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이젠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더 신중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짐(정말 짐이라고 느껴지고 난 후부터는 사소하고 작은 것 하나를 들이더라도 무심히 사는 일이 현저히 줄었다.)이 늘어나는 것이 싫어서(짐이 줄어들자 청소하고 관리하는 일이 훨씬 편해졌음을 온몸으로 느낀 결과다.) 새로운 물건은 잘 들이지 않게 됐다. 정확히는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 없어도 되는 물건들 말이다.
그것들이 없어도 큰일은 나지 않았고 일상도 무탈하게 잘 굴러갔다.
옷도 그중에 하나다.
2009년에 임용이 돼서 주야장천(엄연히 그 양반의 표현에 의하자면 말이다, 물론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반박해 왔다.) 사들인 옷들(그렇다고 아주 무절제하게 산 것도 아닌데, 어디까지나 직장인으로서 필요에 의해, 때와 상황에 맞는 옷차림이 어느 정도 요구됐으므로, 무엇보다도 품위유지의 의무가 있었으므로 구색은 갖춰야 했다.), 그것만도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늘 그 양반에게 주장하듯이
"직장 여성이라면 다들 옷을 이 정도는 가지고 있어.내 옷들이 채널도 아니고 누이비똥도 아니고."
라며 근거도 없고, 나조차도 확신하지 못할 아무 말 대잔치를 했었다.
혹시라도 그 양반이 남의 부인네 옷장을 기습 점검하여 내가 10년 넘게도 주장해 왔던 그 허무맹랑한 소리가 과연 사실이 아니었음을 목격하고 따지고 들기 전에 적당히 주장하고 빠져야만 한다.
몇 년 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봤던가?
패션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그동안 예쁘다고 사고, 세일을 많이 한다고 사고, 상의에 어울리는 하의가 필요하다고 사는 등 별 경각심 없이 옷을 샀던 과거의 내가 진심으로 너무 부끄러웠다. 이젠 최소한 환경을 오염시키는 어리석은 짓은 줄이고 싶었다.
그 양반에게도 이런 내용의 말을 종종 하는데 아직 그에겐 시절 인연이 닿지 않았나 보다.
마침 나는 매일 출근할 직장도 없으니 현재 가진 옷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물론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이나 수많은 유혹의 손길이, 수미산보다도 더 높은 요망한 순간의 충동이 시시때때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하지만 용케 잘 물리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 옷이라는 게, 먹는 건지 아니면 공부할 때 쓰는 건지도 모르게 가물가물해졌는데, 요즘 그 양반은 오히려 정반대다.
택배 기사님은 거의 매일 우리 집을 방문하신다.
"옷이 너무 없어. 옷 좀 사야겠어."
그 양반이 올 초부터 일관성 있게 내게 말해왔다.
"지금 입고 다니는 옷은 거적때기야? 방에 걸려 있는 것들은 뭐야? 넝마 쪼가리야?"
소심하게 복수를 한다.
"그 옷들은 너무 오래돼서 요즘 스타일이 아니야. 한번 바꿔줘야지."
이 양반이 언제부터 소위 트렌드라는 것을 따지셨나?
트렌드가 변했다기보다 그 양반의 신체가 변했다고 해야 더 옳은 말일 것이다.
"음, 옷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게 문제가 아닐까? 잘 생각해 봐, 난 잘 알겠는데..."
나는 가슴속에 품어 왔던 진심을 전했다.
그러나 그 양반은 꿋꿋하게 쇼핑을 하셨다.
때론 진심이 통하지 않기도 하는 법인가 보다.
그래, 왕창 세일을 한다는데, 직장 생활해야 한다는데, 아무렴, 장만하셔야지요.
그 양반은 자랑스러운 우리 집 가장이자 기특한 직장인이니까.
그는 다행히도 멈추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다.
무분별한 소비를 하는 편은 아니니까 일단 믿고 새 물건이 도착해 그 양반이 패션쇼를 하며 거실 한복판에서 런 어웨이를 할 때면 냉정하게 평을 하는 것만이 아내의 몫이다.
나는 직장이 없으니까, 옷장이나 뒤적거려서 그동안 입었던 옷들이 혹시라도 썩어 문드러지지나 않았는지,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한지는 오래되지 않았는지,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있는 것 중에서 걸쳐야겠다.
사실, 나는 허울에 대해 특정 브랜드를 따진다거나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쓴다거나(언제나 작게만 신경 쓴다.) 하지는 않으니 머리 무거울 일도 전혀 없긴 하다.
옷은 선량한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때와 장소를 고려해서, 깔끔하고 깨끗하게 입으면 그만이라는 게 평소 신념이었으므로.
그저, 한 번 해 본 소리였다.
언감생심, 새 드레스는 무슨 새 드레스란 말이더냐.
이번에도 꽝!
다음 기회에!
아깝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노려봐야겠다.
이로써 나는 그 발칙한 호르몬이 그 양반의 체내에서 더 이상 분비되지 않는다는 안타까운 사실만 확인(혹은 확신)했다.
어디 가서 사 올 수도 없고.
하긴 그 호르몬을 사 오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 지구도 아픈데 반드시 새 옷을 한 벌 해 입어야겠다는 게 아니라 그 양반의 나에 대한 애정도(?) 내지는 관심의 척도로 종종 드레스 타령을 하는 것뿐이다.
이를 그 양반도 결코 모르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