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야, 이제 남편에게 비밀은 없어.
그 남자의 반격과 과태료 배틀
23. 2. 17. 비밀을 숨겼다 하되 히늘 아래 뫼이로다.< 사진 임자 = 글임자 >
"내가 말 안 해서 모르고 있는 줄 알았지?"
"뭐를?"
"저번에 자기도 딱지 끊었지?"
"언제?"
"그때가 언제더라? 비싼 것도 걸렸던데?"
죄인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나는 이쯤에서 멈춰야만 한다.
그를 자극해서는 안된다.
확실한 덜미를 잡힌 이상 괜히 변명의 말을 늘어놓았다가는 내게 이로울 게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나의 숱한 비리(?)들이 소시지 딸려 나오듯 줄줄이 고개를 내밀 것이었다.
남편이 잡은 물증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보고 뭐라고 하지 마. 자기는 나보다 더 비싼 거 걸렸었잖아."
"어떻게 알았어?"
"내가 모르는 줄 알았지? 다 알고 있어. 알아도 말 안 했을 뿐이야."
아내의 잘못을 알고도 비밀에 부쳐주는 이 남자,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터뜨릴 때를 기다려왔던 것일까.
과태료에 있어서만큼은 남편에게 비밀은 없다.
비싼 과태료 고지서를 받고 행여 누가 볼 세라 빛의 속도로 납부를 하고 고지서는 마음이 쓰라린 만큼 비례하여 갈기갈기 찢어 증거 인멸을 시도했으나 요즘같이 살기 좋은 세상에 알려고 마음먹으면 차 주인은 언제든 과태료 내역을 알아볼 수 있는 잔인한 세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남편 명의의 차를 단지 운전만 하고 다니는 아내에게는 이 정보화 사회가 이보다 더 불리할 수는 없었다.
차는 남편의 것, 과태료는 아내의 것일뿐이었다.
그 비싼 것을 처리하면서 얼마나 나는 마음 쓰라려했던가.
평소 가끔 남편이 선사하는 과태료 고지서를 받게 되면 득달같이 몰아세우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나였다.
이번엔 정말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인정해야만 하리.
내가 잘못한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운전을 하면서 다짐한 게 있다면(물론 다짐한다고 해서 행동도 그에 따라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결코 운전과 관련해서는 과태료 같은 것은 내지 않겠노라고, 세상에 가장 어리석은 일이 부주의로 인한 지출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남편이 그 어떤 질서행위를 위반했을 때 가장 최고조에 달했었고, 내가 최초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자
'운전을 하면 어쩔 수가 없어.'
이렇게 한없이 내게만 관대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운전자의 '내로남불'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내가 하면 실수, 그럴 수도 있지, 이러면서 남이 하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못된 심보다.
결정적으로 남편에게 꼬투리를 잡힌 나는 이번 남편의 과태료 사건에서 일찌감치 손을 떼야만 했다.
내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남편도 가만히 있지 않을 기세였다.
그러면서도 치사하게 변명의 말 한마디는 잊지 않았다.
"전에도 같은 자리에 주차한 적 있었는데 그땐 안 그랬는데 최근에 바뀌었나 봐. 내가 몰라서 그랬지 알고 그랬겠어?"
거짓말은 아니다.
여러 차례 같은 자리에 주차하고 볼 일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딱 한 번만 걸린 거였다.
세상에, 참 각박하기도 하지. 그리 오랜 시간 세워놨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제 진정으로 내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호랑이, 마마, 불법 비디오 테이프가 아니라 지체없이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하는 성실한 단속반이었다.
남편과 나, 이로써 우린 1대 1로 비긴 셈인가?
가끔 나에 대해 남편이 모르는 것이 많다고 착각하고 산다.
그러나 그는 나의 예상을 늘 뒤엎는다.
나도 그의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많은 부분을 알고 있다고 자만하지만, 10년을 넘게 같이 살아왔어도 모르는 것 투성이다.
물론 다 알고 싶은 마음도 없거니와 다 알 필요도 없으리라.
가끔 눈도 감아주고 모르고 지나가야 이 가정이 평화로울 테니까.
"나도 그때 20% 경감받았어. 그거라도 덜 낸 게 어디야? 그치?"
이렇게나 천생연분인 부부가 또 있을까.
나 한 번 너 한 번, 사이도 좋지.
그러나 이런 식의 천생연분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가끔, 남편이 나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진심으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