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도 안 먹게 생긴 여자가 도대체, 누구랑?

과거는 들추지 마세요.

by 글임자
2023. 4. 17. 예쁜 것만 보고, 예쁜 것만 생각하자.

<사진 임자= 글임자>

"엄마, 곱창이 뭐야?"

"그거? 소나 돼지 작은창자야."

"그게 맛있어?

"응, 맛있던데?"

"엄마도 먹어 봤어?"

"응. 먹어 봤지."

"진짜 맛있어 보인다,엄마."


만에 하나라도,

"근데 엄마는 곱창을 누구랑 먹어 봤어?"

라고 묻기 전에 자리를 떠야 했다.

딸이 나의 과거를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지나간 것은, 지나 간 대로...

최소한 20년 전에 곱창을 사이좋게 나눠먹었던 이가 현재 내 딸의 아빠는 아니었으므로.


"엄마도 한 번씩 먹고 싶을 때가 있더라. 엄마 기억엔 맛있었던 것 같아."

"도대체 무슨 맛이지?"

"음, 약간 고기 같은데, 암튼 맛있어. 말하니까 먹고 싶네."

"나도 먹어 보고 싶어."

좀처럼 식욕이라고는 없는 편인 나지만 한 번씩 신들린 것처럼 특정 음식이 당길 때가 다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너무나도 생뚱맞게 아이가 들어선 여자처럼 뜬금없는 음식을 탐할 때 말이다.

평소의 변덕도 좀처럼 맞추기 힘든 마당에 갑자기 없는 음식을 내놓으라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남편을 몰아세울 때면 그는 진저리를 치며 학을 떼는 표정을 짓는다.

과연 나는 무슨 몹쓸 병에 걸린 것일까?

그나마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그는 견디고 있는 듯하다.


"오래돼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진짜 맛있었어. 거기가 맛있는 집이라고 해서 갔는데 진짜 맛있더라. 엄마는 그때 대학 졸업하고 간 것 같은데 태어나서 처음 먹어 본 거였는데도 비위도 안 상하고 먹을만하더라. 엄마 비위 약한 거 너도 잘 알지? 엄마도 그걸 그렇게 잘 먹을 줄 몰랐어. 얼마나 맛있게 잘 먹었는지 몰라. 꼭 몇 번 먹어 본 사람 같았다니까."

딸이 묻지도 않은 과거에 대해 낱낱이 곱밍아웃을 하며 회상에 잠겼다.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가 내가 먹어보고 싶다니까 수소문해서 데려간 곳이었어. 엄마는 곱창을 보면 그때가 생각나. 태어나서 딱 한 번 그때 먹어 본 게 다였거든."

라고 하마터면 남편이 들으면 가정불화를 일으킬 발언을 무심코 내뱉을 뻔했다.

다행히 딸은 동영상 화면에 빠져 내 얘기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고, 남편은 오랜 출장을 끝내고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곯아떨어져 버린 후였다.

어디까지나 곱창을 볼 때면 곱창을 먹었던 그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지 당시의 동행인을 반드시 떠올린다는 말은 아니다.


" 아빠한테 곱창 한 번 사달라고 할까?"

"그러자, 엄마. 나 먹어 보고 싶어."

내가 곱창이 먹고 싶어서 흘리듯이 '딱 한 번' 곱창 얘기를 꺼냈을 때 남편은 이렇게 말했던가?

"자긴 곱창 같은 거 안 먹게 생겼는데? 자기가 곱창을 다 먹어? 비위도 약한 사람이? 의외네. 그런 걸 다 먹고. 자긴 순대도 안 먹잖아?

그러면 나는 흠칫 놀라며 곱창 타령을 갑자기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뱉어 버린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추가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은 멈출 수 있다.

사실 비위도 약한 편이고 가리는 음식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가리고(뱀만 빼고 다 먹는다고 했지만, 따지고 들면 또 가리는 것들이 있다.), 보신탕으로는 닭백숙이나 오리탕, 장어탕 정도만 만들어 먹는 수준이다.

순대를 먹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됐다. 최근의 일이다.


남편 말마따나 나는 평소의 행실(?)로 본다면 '곱창 같은 것'은 전혀 안 먹게 생겼다.

괜히 딸이 곱창 영상은 봐가지고 20년 동안 묵혀뒀던 나의 과거가 드러날 뻔했다.

그나저나 이를 어쩐다?

"근데 그 곱창은 20년 전에 누구랑 같이 가서 먹었어? 당신이 혼자 가서 먹었을 리는 없고. 그런 건 전혀 안 먹을 것 같은 사람이 도대체 누구랑 간 거야? 누구랑 갔길래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거지?"

라며 남편이 추궁해 대면 어쩐다지?

"다 지난 옛날이야기 가지고 뭐 하는 거야 지금? 내가 이제 와서 외간 남자랑 곱창 먹으러 나가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는 당신은 옛날 공시생 시절에 여자친구도 같은 공시생이었다며? 같이 공부하고 다녔다며? 같이 다닌 곳이 독서실뿐이었어? 딴 데는 맹세코 간 적 없어? 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 날 허술하게 생각하면 안 될 것이야! 솔직히 말해 봐. 그때 '공부만' 했어?"

라고 치사하게 반박할 마음의 준비라도 든든히 해둬야겠는걸.

확실히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가지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가상 시나리오를 작성한다.

재난 대피 훈련하듯, 내게 닥칠지도 모르는 급박하고도 중대한 (나에게만) 재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잘 대응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과거 있는 엄마는 딸 옆에서 한참이나 머리를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혹시라도 우연히라도 이 글이 남편에게 발각된다면,

그땐 좋게 좋게 넘어갑시다~

다 지난 일 들추면서 남의 과거 파헤치기 있기 없기?

지난 일 가지고 시시콜콜 따지면 피차 본전도 못 찾을 게 뻔할걸?

적당한 선에서 원만히 합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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