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말 너도 그렇다.
꽃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23. 2. 24. 꽃 본 날<사진 임자 = 글임자 >
"합격아, 여기 봐봐. 드디어 꽃이 피려고 해!"
"어디 어디?"
"여기 말야. 스파트필름!"
"안 피었잖아?"
"자세히 봐봐. 여기 세로로 하얀색 보이지 여기서 곧 꽃이 필 거야."
"정말이네?"
"우와, 이제 엄마한테도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봐."
꽃이 피는 것과 나의 앞날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어떻게 꽃 한 송이가 나의 운세를 결정짓겠냐마는, 나는 믿었다.
기대했다.
어떤 희망(같은 것)을...
"작년에도 설 전에 꽃이 피더니 올해도 그러네."
"그랬나 엄마?"
"그럼. 작년에도 이렇게 추울 때 꽃이 피었지. 그러고 나고 다른 화분에도 줄줄이 꽃 다 피었잖아."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정말 자연의 신비는 대단해. 한겨울에도 이렇게 꽃이 다 피고 말이야. 다른 화분에서도 곧 피겠지? 금방 꽃이 필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엄마 기분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백조'라도 들어 볼까나. 식물들도 좀 같이 듣게."
삐쭉 흰빛을 보이며 고개를 내밀던 때가 거의 한 달 전이었다.
이제 온전히 한 송이가 다 피어올랐다.
한동안 봄볕처럼 따사로운 날들이 이어져 이렇게 봄이 갑작스레 오는가 싶었는데 중간에 한파를 겪어서 그랬는지 오므렸던 꽃망울이 활짝 터지기까지는 한 달이나 걸렸다.
"꽃이 피면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합격아, 넌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꽃 핀 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너희 엄만 별 걸 다 연관시킨다 그렇지?"
"난 합격이한테 물어봤지, OOO 씨한테 물어본 거 아니야. 우리 얘기하는 중이니까 내가 나중에 물어볼 때만 얘기해 줄래?"
한 중년 남성이 느닷없이 불쑥 치고 들어왔다.
단란하게 딸과 '희망의 앞날'에 대해 토킹 어바웃 좀 해 보겠다는데 눈치 없이 왜 끼어드실까?
물론 그의 말대로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억지로 내가 꿰어 맞췄을 뿐이다.
바야흐로 봄이 오고 있고, 내일모레가 3월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스럽지 않은 2월 말이었으며, 때마침 최근에 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나서 괜히 내 기분에 취해 충만함을 느꼈던 것이다.
나머지 화분들도 살펴보았다.
7년 전에 스파트필름 화분 하나를 들였는데 잘 자라줘서 분갈이를 해 여러 개로 늘어났다.
그동안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현재 우리 집 거실에는 다른 식물들도 있지만 스파트필름 화분이 아직도 네 개나 있다.
처음 입양 보낸 그것에서 봄에 꽃을 피우자 기쁨에 겨운 나머지 내게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는 이도 있었다.
그녀가 사진까지 첨부해 먼저 긴급속보를 알려왔음은 물론이다.
호들갑스럽게,
"꽃이 정말 피었어요. 예뻐요!"
라며 한껏 들떴던 그녀에게 난
"웬 수선이야? 여기서도 해년마다 꽃 잘 피었어."
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던가.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죽이지 않고 다행히 잘 길러줘서 내가 더 고마웠다.
나눔 한 보람까지 느꼈다 나는.
어차피 봄에는 생명들이 깨어나기 마련이다.
겨울이 아무리 매섭고 혹독해도 따뜻한 봄날은 기어이 온다.
우리에게도 봄이 집 1층까지 와 있는 느낌이다.
연둣빛 그 앙증맞은 새싹들이 땅 위로 고개 내밀면 그것이 남들 눈에는 대단할 것 없는 풀 한 포기라도 내 눈엔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원래 꽃을 피우던 식물은 때가 돼서 꽃을 보여주었지만, 당연한 일이었지마는 괜히 의미를 부여했다.
새 생명이 태어난 것이니까.
작년 1년 동안 내가 그래도 잘 돌보았구나.
자식 기르듯 돌보고 애정을 쏟은 보람, 이럴 때 느끼는 것이다.
늦둥이들이 있는지 다른 화분에 있는 것들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볕도 겨우내 쏟아지던 볕과는 달랐다.
기지개를 켤 때다.
은은한 향기마저 고마운 그 꽃 한 송이가 내겐 지극히도 소중하다.
그저 때가 되어 피었을 뿐인 그것,
오만 가지 이유를 대며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나에겐 대단하고도 확실한 행복.
시절 인연으로, 이렇듯 봄은 하얗게 오는 것이다.
은은하고도 굳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