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브 씨앗 3종 세트를 심고

난생처음 해 본 일

by 글임자
2023. 4. 3. 저 위치 그대로 잔뜩 돋기를...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 여기 무화과나무 아래 내가 허브 심어놨으니까 뭐 나면 풀 아니니까 뽑으면 안 돼요. 풀이 나든 뭐가 나든 그건 커봐야 아니까 일단 아무것도 뽑지 말고 그냥 놔두셔. 풀은 내가 나중에 다 뽑을게."


집주인의 허락은 맡지 않았지만 협조는 구해야만 했다.

게다가 아빠의 주특기는 풀 뽑기였으므로.

"또 뭐를 거기다가 심는다고 그러냐? 그런 것이 거기서 잘 나기나 하겄냐?"

무언가를 씨 뿌리고 수확하는 일에 베테랑인 전업 농부인 아빠는 나이롱 경작생을 티가 나게 못 미더워하셨다.


그러나, 나는 꿋꿋이 아기 돌보듯 허브 씨앗들을 알뜰살뜰 심었다.

너무 땡볕에 노출되면 어린싹들이 말라죽을까 봐 나름 머리를 굴린다고 물색한 곳이 무화과나무 아래였다. 그땐 가지만 휑하게 있었지만 싹이 새로 움틀 것이고 여름이면 잎이 무성해질 것이다. 그러면 그늘도 자연히 생길 것이고 그 아래라면 어린 허브들도 안전할 것이라 믿었다.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세심하단 말이야.


허브를 한 번 심어보겠다고, 갑자기 허브 욕심이 생겨 4년 전부터 계속 벼르고 있었다.

몇 년 전 화훼 단지에서 허브를 사 온 적이 있었다. 페퍼민트와 레몬밤, 또 하나는 라벤더였다. 고무나무, 스파트필름, 금전수, 산세베리아, 스투키 이런 식물들을 거실에서 아주 잘 기르고 분갈이까지 한 나는 개체수를 늘리는 신통방통한 재주까지 타고난 것 같았다.(고 혼자서만 착각해 왔다.) 그래서 한눈을 팔기 시작한 것이다. 감히, 허브도 '잘하면?'키워 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처음엔 몇 년 전에 모히또를 만들어 먹겠다고 라임을 사서 라임청을 만들고 인터넷에서 새끼손톱만 한 애플민트를 거금을 주고 사들였다. 공기보다도 더 가벼워 보이는 그것을 얻고자 나는 얼마나 (내 기준에서는 꽤) 많은 금액을 지불했던가?

그때는 미친 듯이 바쁘게 직장생활은 물론 살림과 육아를 혼자 도맡아 하다시피 할 때라 사놓고 평일 작업은 꿈도 못 꾸고 주말만 기다리다가 어영부영하는 사이 그마저도 물러져 요단강 저편으로 보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것을 버리기 위해 돈을 주고 산 거나 마찬가지였다.

애플민트가 처음 집에 도착했을 때 그 향 한 번 맡아보고 엄지와 검지로 살짝 건드려 본 게 다였다.

그때 느닷없이 욕심이 생긴 것이다.

차라리 허브 화분을 사서 자라면 잘라먹고, 자라면 잘라먹고, 화수분 같은 그것으로 세세생생 허브 인생을 누리리라.

얼마나 알뜰해?

이보다 더 경제적인 순 없어.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살림꾼이란 말이야.


작년에 애플민트와 페퍼민트를 사서 의욕이 넘친 나머지 급수 조절에 실패했는지 아니면 환기가 제대로 안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일조량이 문제였는지 어쨌거나 두 가지 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허브는 내 적성에 안 맞는 건가? 잠시 좌절도 했었다.

그러다가 올해 초 다시 근질근질해진 것이다.

화분째 사는 허브 말고 내가 씨앗을 구입해서 직접 씨를 뿌려보겠다는 야망을 다 가졌다.

잘 길러서 또 여기저기 보시해 줘야지.

언제나 그렇듯 꿈은 매우도 야무졌다.

수많은 영상을 뒤져 보고 고민은 108 번뇌 저리 가라 하게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이 하고, 심사숙고 한 끝에 3가지 종류의 허브 씨앗을 구입했다.

아무래도 야외에서 자라는 식물이 더 튼튼할 것 같아서 재배지는 집주인인 아빠의 허락도 없이 친정으로 정했다.

어차피 많은 면적이 필요한 것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것들이 무럭무럭 자라 번성하고 가지 쳐서 사방팔방으로 무성해진다면? 그땐 어쩌지?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으려나? 처음부터 넓은 공간에 심었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이미 허브 정원을 1만 평이라도 가진 이의 마음이 들었다

처음 시도해 보는 일이라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미래를 아주 낙관하면서 난생처음 허브를 심은 것이다.


일단 싹이 돋고 어느 정도 잘 자라면 그것들을 흙째 통으로 파서 화분에 옮겨 담아 우리 집으로 가져올 계획이었다.

원대한 포부를 안고 시작한 일이지만 앞일은 어찌 될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땅이 모래밭처럼 흙이 좀 거칠었고 땅 속을 파헤치니 공벌레가 다소 많은 것이 신경 쓰였지만 일단 과감히 일을 진행했다.

'설마, 저 공벌레들이 허브 씨를 다 먹어치우진 않겠지?'

설마 설마 하면서도 어느새 내 마음은 왠지 불길한 쪽으로 더 기울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허브 씨앗이 얼마나 작냐 하면, 그냥 먼지 같았다.

애초에 씨앗 하나하나 집어서 간격 맞춰서 골고루 돋아나게 해서 허투루 버려지는 씨가 하나도 없이 해야겠다고,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반드시 낱낱이 떨어뜨려 심고야 말겠다고 다짐했었다 한때는.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언제나 괴리가 있는 법이다.

손바닥에 그 먼지 같은 것들을 털다가 반 이상은 날아갔다.

민들레 홀씨보다도 더 가벼운 것들은 어디까지 날아갔는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냥 무작정 심고 나중에 돋으면 솎아내는 전략을 세우는 게 더 현명해 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공벌레들로부터 그들이 무사하기를 빌며 고운 흙으로 덮고 물도 조금 주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때가 4월 초였고, 당분간 비 소식이 없을 거라고 했다.

내가 매일 친정을 다니며 물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부모님의 관심을 받기엔 허브들이 너무 미약했으므로 일을 벌인 당사자인 나는 하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부디 싹이 하나라도 무사히 돋아 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출산을 기다리는 임신부처럼 태교라도 하는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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