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19. 잎 모양이 닮았다.<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 이거 혹시 아빠가 다 뽑았수? 뽑으면 안 되는데, 이거 허브라고!"
"뽑기는 누가 뭣을 뽑았다고 그러냐?"
"여기 내가 저번에 허브 심었다니까!"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겄다."
며칠 전 친정에 갔다가 나는 그만 절망하고 말았다.
4월 초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세 종류의 씨앗을 심었는데 가서 보니 내가 거사를 치른 그 자리,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 자리에 자잘한 연두색(내 눈에는 허브가 틀림없어 보이는) 싹들이 무참히 뽑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가뭄에 말라비틀어진 농작물을 보는 농심이 이러할까?
부러진 바늘을 보며 애통해하던 유씨부인의 심정도 이보다 더 처참할 순 없었으리라.
"그때 절대 뽑지 말라고 분명히 말하니까 왜 다 뽑아 버렸어? 지금 막 돋기 시작한 것 같은데."
뿌리까지 뽑혀 땡볕에 마르고 바람에 시들어버린 그것들은 회생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풀인지 허브인지 분간은 되지 않더라도 파릇파릇하니 (직접 씨앗을 심은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싹이 하나 둘 나고 있었다.
아직은 정체가 확실하지 않았으나 나는 돋아난 것들 중 대개가 허브일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그렇게 내가 신신당부했건만 땅 주인에게 한낱 풀로 비쳐 다 뽑혀 버렸단 말인가?
"저번에 내가 분명히 말했는데. 뭐가 나든 그냥 그대로 두시라니까..."
"너는 계속 뭔 소리 하고 있냐? 내가 뭣을 어쨌다고?"
"저거 다 아빠가 뽑은 거 아냐? 딱 보니까 허브구만."
아빠는 계속 어리둥절해하시며 도통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셨다.
처음 그 광경을 목격했을 때 나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작년에 허브를 사서 키우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정말 잘 키워보고 싶었는데 가족끼리 이렇게나 협조가 안되다니.
"봐라, 봐! 이것이 니 눈에는 허브로 보이냐?"
"허브가 아니면 뭔데?"
"너는 풀하고 허브도 구분 못하냐?"
"이게 풀라고? 허브 같은데?"
나도 처음에 확신에 찼던 그 무엇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아무렴, 나보다는 아빠가 더 잘 아시겠지.
"이게 어딜 봐서 허브냐? 마당에서 풀 뽑아서 여기다 버렸구마는."
"그럼 이게 진짜 풀이라고?"
아닌 게 아니라 듣고 보니 그 순간부터 딱 '풀'로 보이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아이고, 풀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것이 허브는 무슨 허브를 키운다고."
간사한 딸은 안도하면서, 과연 그것은 허브가 아니라 풀이 확실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마당에 흔해 빠진 그것이 주인의 손길에 뽑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풍경 앞에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풀인지 허브인지 구분도 못하면서 감히 허브 농장을 꿈꾸었다니...
하지만 원래 모든 싹들은 처음엔 대개가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법이니까.
다짜고짜 아빠를 오해한 나도 문제지만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아빠가 애초에 만들지 않았더라면 이런 오해는 없었을 것, 이라고 치사한 변명을 찾는다.
왜 하필 풀을 거기다 갖다 버리셨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빠를 의심했던 죄,
다행히 내 잘못을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몰라서 오해하니까 비농업인이다.
남편에게 쪽파와 대파 모종을 구분 못한다고(굳이 그걸 구분해서 뭘 어쩌자는 건지), 마늘 줄기와 양파 줄기도 구분 못한다고 나는 얼마나 그를 몰아세우며 구박했던가. 신혼 초에 유치한 농산물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며 그가 틀린 답을 댈 때면 얼마나 통쾌해하며 그를 비웃어줬던가. 나라면 모를까, 나는 지금 당장 밭에 투입돼도 모범 경작생으로 살아남겠지만 당신은 퇴직 후에라도 시골 물정을 몰라서 결코 농사 같은 것은 못 지을 사람이라고 얼마나 어리석게 단정해버렸던가.
역시 세상은 공평한 것이로구나.
남의 무지를 비웃은 자, 언젠가는 똑같은 방식으로 비웃음을 당하게 되리라.
그나저나 페퍼민트가 잘 자라나면 차를 끓여 제일 먼저 아빠께 대접해야지.
꿈은 야무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