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도 하고, 사진도 찍고, 어떤 극한직업

세상에 쉬운 직업은 없다.

by 글임자
23. 3. 11. 남는 건 사진

< 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 아들이 여기 있네!"

"아빠, 어떻게 날 찾았어?"

"아빤 보면 바로 알지."


아들의 학교 소식을 받기 위해 개학을 하고 한 앱을 깔았다.

종종 내가 남편에게 아이들 학교생활에 대해 전달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 비효율성으로 말미암아(사실은 일일이 전달하는 일이 귀찮은 게 더 크다.) 아빠 자격으로 실시간으로 소식을 받아 볼 수 있는 비법을 전수했다.


"우리 아들이 오늘 밖에서 체육 했나 보네. 재미있었겠다."

"응. 아빠, 오늘 가위바위보 했는데 나는 한 번도 안 이겼어. 근데 우리 팀이 이겼어."

"그랬구나. 근데 사진이 진짜 많다. 선생님이 이거 다 찍으신 거야?"

"응, 우리랑 같이 체육 하시고 나중에는 우리끼리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셨거든. 그때 찍어 주신 거야."

"사진 찍기도 힘드시겠다."

이 양반이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걸까.

정말 사진이 많았다.

하긴, 반 학생이 모두 26명이니 (내 생각에는)골고루 찍어주어야 할 테니까.


그러니까,

사진은,

지금은 그렇게 간절하지 않다 솔직히.

처음에 아들이 어린이집에 갔을 때에나 신세계로 초대받은 것이지.

아들도 벌써 의무교육 3년 차다.

아들이 3살 반이 넘어 어린이집이란 곳을 다니고 본격적인 사회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중간중간 올려주는 사진들을 보고 얼마나 신기해했었던가.

워킹맘들은 일은 하기는 하면서도 어린이집이며 학교에 가 있는 아이들이 간혹 생각나기도 할 것이다.

특히나 난생처음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얼마 동안은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별 탈 없이 지내는지 별의별 게 신경 쓰이는 게 사실이다.

그 와중에 받아보는 실시간 활동사진들은 반갑고 기특하고 안심되며 믿음직스럽기까지 하다.


"요즘 세상 정말 좋아졌다. 이렇게 어린이집에서 사진도 다 찍어서 올려주고."

처음 어린이집에 보낸 티를 내며 내가 호들갑을 떨자 한 동료가 말했다.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왜?"

"선생님들이 아이들한테 더 신경 써야 하는데 어떤 선생님들은 사진 찍는데만 열중하고 아이들한테는 덜 신경 쓰는 것 같아서."

"그럴 수도 있겠네. 그래도 기본적으로 애들 돌보는 데 더 신경 쓰겠지. 사진 몇 장 찍지도 않았던데."

"너희 어린이집은 그런지 몰라도 우리 애들 다니는 데는 선생님이 하루 종일 사진만 찍나 봐. 무슨 사진을 그렇게 많이 올리나 몰라. 난 그런 거 싫더라."

"그래. 또 그럴 수도 있겠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선생님들에 대해, 그 방식에 대해, 이래서 좋고 저래서 좀 아쉽고, 나도 그 동료도 나름의 이유는 다 있었다.

'역시 선생님은 극한 직업이야.'

그 생각이 스쳤다.

'쟤 좀 예민한 거 아냐?'

나만 혼자 생각했다.


모든 부모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결코.

우리 애 얼굴이라도 좀 보게 사진 좀 많이 올려 주시라, 이런 부모가 있을 테고, 그건 됐고 사진 찍을 시간에 애들한테 신경이나 좀 더 써 주시라 이런 부모도 있을 것이며, 사진도 적당히 애들한테 소홀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지만 어떤 활동들을 하고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는 반드시 알고 싶으니(아마 가장 맞추기 힘들 것이다.) 이렇게 요구하는 부모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 봤으니 그런 모든 일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하고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딴에는 또 그렇다.

사진 찍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이들을 잘 돌봐주는 일이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솔직히 초반에 나는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퇴근 후에 사진들을 보고 또 들여다보고 하면서 그저 아들을 대견해하기만 했었다.

물론 가끔, 아주 가끔은

'왜 사진이 이렇지? 눈도 안 떴는데 눈이나 뜰 때 좀 찍어 주시지.'

이렇게 호강에 겨운 생각도 했었다.

일하는 나 대신 하루 종일 애들 봐주는 것만도 황송할 따름인데(물론 직업이니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나보고 하루 종일 아들과 지내보라고 하면 나는 정말 정말 자신 없고,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솔직한 마음에는.) 은혜를 몰라도 유분수지.


선생님들이 전문 사진사도 아니고 바쁜 일정 속에서도 보호자들에게 흔적을 남겨 주시는 것,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나보고 선생님 역할을 해보라고 하면 자신은 없다.

그 사진이 있어 덕분에 아이들이 집에 오면 또 대화거리가 생긴다.

요즘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흐릿하나마 교실 구경도 하고, 수업 현장도 살짝 알아보고(엄마의 가장 관심사는 자녀의 수업 태도이다.) 거창하게는 수업에 임하는 태도도 살펴볼 수 있다.


학교에 보낸 이상 선생님을 믿어야지.

어련히 알아서 잘 하실까.

맹목적이어서도 안되겠지만 그분들의 권위와 영역은 존중해 주어야 마땅하리.

그저 선생님들께 고마울 따름이다.

가끔 마주하는 흑역사로 남을 아이들의 증거자료는,

충분히,

감당할 의향이 있다.

이전 09화하니까 됐네, 정말.